35kg 감량.
기적같은 일이지만 비만인 거구들의 경우, 아주 드문 것은 아니다. 헬스클럽에서, 주변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그런데 그이가 만약 저명한 정치인이라면, 현역 정치인으로 정치활동을 하면서 이런 기적같은 일을 해냈다면 어떨까.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다.
독일의 전 외무장관 요슈카 피셔가 그런 인물이다. 112kg의 식탐 가득한 거구 정치인이 어느날 달리기와 식이요법을 시작해, 달리기를 인생의 변환점으로 만들며 무려 35kg을 감량한다. 그리고 그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되었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달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렸다. 그가 외무장관 겸 부총리 시절 한국에 왔을 때도 남산에서 달리기를 해 많은 언론을 통해 그의 달리기 사랑을 알렸다.
그가 쓴 책 <나는 달린다>는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들, 감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바이블 같은 책이다. 고통을 이겨내면서 달리기를 늘려가는 눈물 겨운 사연도 있지만, 인생의 정점에서 자신과 정치를 돌아보며 철학적 깊이를 쌓아가는 자성록의 측면은 깊은 감동을 준다.
첫걸음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참아야 한다. 참아내자. 다시 한 번 참아내자! 가면 갈수록 내몸에서 느껴지는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 시작을 맞는 나의 정신적 태도가 달라졌다. 나는 기분 좋게 아침에 일어났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항상 충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나의 전체적인 삶의 방식이 흔들리고 있다.
몸이 망가지고 있다고 느끼면, 이미 망가진 몸 때문에 자기 혐오에 빠져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날 것인가. 여기 한 사람의 정치인이 있었다. 독일인의 사람을 받는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 겸 부총리. 그는 더이상 자신을 방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달렸다. 바로 앞으로 뛰어가, 매일 조금씩 거리를 늘리며 열심히 뛰었다.
물론 힘들었고 고통스러웠지만 조금씩 해냈고, 충만함을 느꼈다. 삶을 바꿨다. 삶을 느끼는 방식을 바꿨다. 그저 달렸을 뿐인데. 그렇지만, 그냥 어려운 정도를 넘어서 이를 악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저 꾸준히 달리기 위해서도.
나는 새벽부터 이를 악물고 매일 나와 싸웠다. 이런 새벽운동을 하면서도 나는 나 자신에게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밀고 나가도록 만드는 내적인 힘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추어 마라토너인 기자로서도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매일 새벽 일어나 밖으로 나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를 달리는 것. 그것을 해내는 것은 처절한 노력이고, '내적인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간은 달리도록 진화했고, 잘 뛸 수 있게 만들어졌지만, 모든 이가 늘 잘 뛰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어떤 인간은 그렇게 잘 뛸 수 있는가를 연구했고, 그 결론은 하나같이 정신력, 의지였다. 피셔 장관의 망가진 몸을 움직이게 한 것은 바로 그 의지였다.
물론 모티베이션이 필요하다. 동기. 지금 나를 움직이는 동기. 그것은 사랑일 수도 있고 찬란한 희망일 수도 있지만, 현재의 비참한 내 모습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럴수록 아마도, 우리는 더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될 것이다.
배가 불룩하고 엄청난 몸무게를 짊어지고 맛있는 것만 찾아다녔던 나의 과거 삶은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 나의 완전한 개혁을 위해 엄청난 노력과 강한 의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몸무게와 외모의 변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빨리왔다. 이 모든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만든 가장 다행스런 결정은 내가 달리기를 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몸이 지쳐 힘들고, 복잡하고 스트레스 쌓이는 국정을 처리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삶. 언저 무너질 지 모를 경계에 선 삶을 살아온 피셔 장관은 달리기를 선택했고, 거기에 엄청난 의지를 더했다.
몸이 무거운 사람들은 안다. 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도저히 못 뛸 것 같다. 숨이 찬 정도가 아니라 속이 메스껍고, 하늘이 노래지고, 어질어질 머리와 다리가 헷갈린다. 이쯤되면 죽을까봐 무섭다. 조금 무리하게 다이어트용 달리기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그리고 그 대목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포기할 것인가, 더욱 달릴 것인가?
내가 여기서 조금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면 나는 꺾일 것이 분명하였다. 내가 스스로 오늘은 추워서 또는 기분이 안 좋아서 또는 너무 피곤해서 뛸 기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내 계획을 확실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가 나의 계획을 압도할 것은 분명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말했듯, 달리기를 중단해야할 이유는 한 트럭분만큼 많다. 그리고 달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나 자신. 딱 한 번의 포기, 딱 한 번의 걷기, 딱 한 번의 유예가 전체 플랜의 망가짐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달리기는 리듬이다. 생활의 습관으로서의 리듬도 있고, 지금 달리는 순간에 리듬을 타야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피셔 장관은 말한다. "어떤 리듬을 타려면 어떤 경우라도 예외를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새벽에 일어나 뛰러 나갔다. 날씨와 상관없이 항상 그렇게 했다. 나의 리듬을 발견하고 매일의 의식에 익숙해져야 내 안에 있는 치사한 마음을 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포기할 것인가, 더욱 달릴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였던가? 나는 생각했다. 나는 단지 나 자신을 위해 달렸을 뿐이다. 나는 달리기에서 이제 더 이상의 새로운 목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결심은 확고하다.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
나 자신보다 더 강력한 동기는 없다. 그러나 또한 나 자신보다 더 느슨한 동기도 없다. 그냥 남들은 모르니까, 남들은 별 신경 안쓰니까, 내가 잠깐 눈 감아주면 그만이다. 그냥 없던걸로 하고 편하게 살면 된다.
자신의 감시, 자신만의 감시. 그 감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그 감시에 복종할 용의가 있는가. 그래야 당신은 지속적으로 달릴 수 있고, 목표한 바를 이뤄낼 수 있다.
뒤뚱뒤뚱 간신히 일상을 유지하던 그가 마침내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리고 35kg에 이르는 엄청난 체중 감량을 성공했다. 무엇보다 인생의 활력, 몸의 열정을 되찾았다.
집에 도착했다. 나는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아, 내가 정말 해냈구나! 정확히 일년 전에 나는 몸무게가 110킬로그램 나갔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달리기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까무러쳤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몸무게가 35킬로그램이나 줄었다… 오르막과 더위와 먼지. 나는 이런 것들과 싸워 이겼고, 결국 해냈다.
이 자랑스러움이 이제 앞으로의 삶의 동력이 된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삶이 바뀐 경험이 새로운 삶의 자산이 된다. 그저 조금 뛰었을 뿐인데.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을 차례다.
건강과 새로운 삶, 다이어트를 꿈꾸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고통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리듬이 생길만큼 지속적으로 매일 해낼 의지가 있는가? 편안함에서 털고 일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고자 하는 내면의 힘이 있는가?
이제 당신이 말할 차례다.
"내가 정말 해냈구나!"
*이 글 속의 굵은 글자 인용문은 궁리출판에서 발행한 <나는 달린다> (요쉬카 피셔 지음, 선주성 옮김)에서 떠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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