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쿠짝 쿵쿠짝 쿵쿠짝....
한쪽 다리가 의족인 젊은 청년 테리 폭스가 달릴 때 나는 소리다. 왼 발을 한번 제대로 딛고 살짝 한번 더 디뎌야 오른발의 의족이 접혔다 펴져 다음 발을 디딜 수 있다. 그래서 이런 3박자 달리기를 개발했다.
뼈암의 일종인 골원성 육종으로 18살에 한쪽 다리를 잃고도 농구 게임을 하고, 지속적으로 달리기를 하던 청년 테리 폭스. 어느날 그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너무나 엄청난 도전을 결심한다. 저 거대한 땅 캐나다 대륙을 달리기로 횡단하겠다는 것. 8530km, 10개주를 지나가는 대장정. 캐나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매일 마라톤 풀코스 정도의 거리를 뛰는 대륙횡단 마라톤이다.
암으로 한 쪽 다리를 잃고 얻은 강력한 깨달음은 암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고, 암 연구기금을 마련하는 것은 수많은 암환자를 위한 자신이 할 수 있는, 해야 할, 인생의 사명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1980년 4월 12일, 이 역사에 남은 대모험을 시작한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거액의 암 연구기금을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을 불살라 미래의 희망을 만들겠다는 열망으로.
▶1980년 4월 12일, 역사적인 첫걸음
테리는 기자들을 뒤로 하고 세인트존스의 낡고 오래된 지역을 달리기 시작했다. 판자를 두른 가게들, 황량한 해안 산책길이 멀리 뒤로 사라져갔다. 이따금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테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왼 발로 두번 뛰고 다시 의족인 오른 발로 한 발을 뛰었다. 쿵쿵 따 쿵쿵 따 소리를 내며 달리는 그의 주법을 사람들은 '폭스트롯(Fox Trot)'이라 불렀다. 테리는 손을 굳게 쥐고, 속력을 더 내기 위해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인 채 서서히 달려나갔다.
이렇게 시작된 엄청난 마라톤은 고통 속에서 진행된다. 의족을 붙인 부분이 헐고 피가 나는가 하면, 폐의 통증도 나타난다. 뼈암의 전이에 대한 공포를 안고 있으면서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 내자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는 달렸다. 매일 마라톤 거리 42km 안팎의 거리를 달렸다.
잠깐 뛰는 것과 달리 장거리 달리기는 리듬을 타야 한다. 헐떡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갈 수 있도록. 그래서 테리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테리폭스트롯. 책엔 '쿵쿵따'라고 적었지만, 기자가 동영상으로 들은 느낌은, 이렇다. 쿵쿠짝, 쿵쿠짝!
그렇게 보통사람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방식으로, 보통사람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도전 자체가 큰 도전
"처음 1마일(1.6km)을 달릴 수 있었을 때 저는 30마일(48km)을 달릴 수 있었을 때만큼이나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거든요. 그 뒤로 저는 점점 더 강해지고 더 잘 달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테리는 엄청난 일을 해냈다. 훈련거리만 5084km. 이제 그가 달리게 될 8530km는 암환자들에게, 그리고 기적을 믿어야할 필요가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 될 것이었다. 그 8530km는 테리 자신이 아닌 바로 우리들을 위한 것이었다.
한 다리에 의족을 한 청년이 8000km가 넘는 국토횡단마라톤에 나선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나, 걷기도 어려운 몸으로 그런 도전에 나설 정도의 몸을 만드는 과정은 어찌보면 더 치열하고 눈물겨운 것일 듯하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의지가 있어야, 절뚝이면서 1.6km를 뛸 수 있을까. 그 거리를 점점 늘려 마라톤을 뛸 수 있을까. 그리고 마침내 8530km의 대장정에 나설 수 있을까.
뛰어본 사람들은 안다. 이 놀라운 거리의 두려움을. 200일이 넘는 날을 매일 마라톤 거리를 뛰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그래서 그의 도전 자체가 얼마나 큰 도전인지를 알게되면 전율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고통을 이겨낸 동력, 유머와 의지
"여러분 가운데 몇몇은 저를 불쌍히 여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러지 마세요. 의족을 한다는 것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어요. 저는 오른쪽 다리를 여러번 부러뜨렸는데 그래도 하나도 안 아프거든요." 라고 말해 왁자하게 웃음이 번지게 했다.
"사람들은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마치 제가 자신의 자아 실현을 위해 대륙을 횡단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저 개인의 도전이지요. 그러나 저의 목적은 더 많은 암 기금을 모으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테리 폭스는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냥 쓰러지더라도 자기 몫은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평소 긍정적인 마인드로 가득했던 그는 강연장에서 유머도 잊지 않았다. 위로를 받아야 할 당사자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테리가 더 훌륭하고, 그래서 그 어려운 일을 절반 이상 해낼 수 있었다.
테리의 목표는 심플하다. 그의 메시지는 항상 같았다. 암은 관리 가능한 질병이고, 치유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기금이 필요하다는 것. 자신이 달리는 것은 바로 이 연구기금을 모으기 위한 것이라는 것. 그래서 기금이 적게 모이면 실망하기도 했지만, 크게 보아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된 고통의 메시지
사람들은 테리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금세 알아차렸다. 말하자면 신체장애가 있다고 해서 살아가는데 불이익을 받아선 안되고, 암은 불치병이 아니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밴 자동차 창문으로 사람들이 자꾸만 돈을 밀어넣었다. 테리는 그들로 인해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테리가 달리는 것을 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충격을 받는다. 입은 악다물고, 얼굴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것은 고통 때문이라기보다는 집중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그의 눈은 반쯤 감긴 것처럼 보였는데 아마도 번쩍이는 빛이나 길가에 있는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들을 차단하기 위한 듯했다.
사람들에게 두가지 자극을 던져주었다. 달리는 동안 그는 다른 이들이 기부와 자선에 동참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암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방치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웠고, 그 고통의 상황을 참여로 바꿀 수 있음을 공유했다.
다른 하나는 투쟁의 인간정신이다. 고통 속에서 이를 악물고 뛰는, 그러나 결코 투덜거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벼리고 있는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리라.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어느정도까지 가능한 일일까. 거듭 생각하게 한 질주였다.
▶뼈암의 폐 전이... 그리고 죽음
"'엄마, 들으셨어요?' 그러자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네가 아프다는 뉴스가 나왔더구나.' 그래서 제가 '엄마, 그게 아니에요.... 다시, 암이, 폐에 암이 생겼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저는 3년 반쯤 전에 처음 무릎에 암이 생겼지요. 그리고 이제 폐에도 암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집으로 가야 합니다....."
테리는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테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암 병동에서 그가 봤던 수많은 아이들의 고통을 잊지 않았고, 위대한 꿈을 가진 한 청년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5374km를 달렸다.
테리는 1981년 6월 28일 숨졌다.
5374km를 달리고 난 뒤, 폐로 전이된 암으로 인해 그는 숨을 거뒀다. 달리기를 멈추고 약 6개월 뒤다.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다시 일어나 달릴 수 있기를 꿈꾸다 그는 짧은 생을 마쳤다. 그의 나이 스물둘.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라." 이것이 암에게 다리를 잃은 테리가 자신에게, 주변인들에게 한 말이다. 전하고픈 메시지다. 우리는 항암의 많은 교과서들에서 이 표현을 만난다. "암에게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주인이 되십시오." 그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그런 삶을 택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경험은 늘 감동이다.
▶테리의 죽음 이후, 진짜 큰 도전이 계속된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영혼이 그의 삶을 기념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극히 드문 일입니다.... 캐나다인들은 테리가 살아서 광포한 암과 맞서 싸워 이기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패배나 실패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역경을 이긴 인간 승리의 한 모범이자 우리를 감화시킨 인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가 테리 폭스의 죽음을 애도하며 한 말이다. 그는 캐나다의 국민 영웅이 되었다. 공원에는 그의 동상이 만들어졌고, 마을과 길과 다리와 학교들은 그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캐나다의 여권 안쪽면에는 그의 사진이 무늬로 찍혀 있다. 많은 이들에게 불굴의 정신, 도전 정신을 일깨워줬다.
무엇보다도 암 연구기금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실천하도록 자극했다. 기업이 나서서 지속적 지원과 연구를 약속했고, 세계 곳곳에서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움직임들이 이어졌다.
'테리폭스런(Terry Fox Run)'이라는 달리기 행사도 곳곳에서 열린다. 처음에는 캐나다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지구촌 방방곡곡에서 1년에 한번 진행된다.
테리 폭스가 캐나다 횡단에 나선 것은 1980년. 그가 숨진 것은 1981년. '희망의 마라톤(Marathon of Hope)'이 딱 40년 되었다. 올해는 40주년을 맞아 특별한 행사로 진행된다. 5월 20일부터 신청 접수되는 9월 20일 '테리 폭스 런'은 세계를 휩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버추얼 런으로 진행된다. 캐나다의 테리폭스재단에서 기부와 참여를 신청할 수 있다.
(이 글의 굵은고딕 인용문들은 동아일보사 간행 <스물 둘에 별이 된 테리>(레슬리 스크리브너 지음, 용호숙 옮김)에서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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