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만들어진 착하고 감동적인 영화인데 500만명이 보았다. 기적같은 이 영화는 기적같은 실화를 담은 영화 <말아톤>이다. 영화 주인공 초원이는 '마라톤'을 '말아톤'으로 쓴다. '마라톤'은 그리스의 병사가 승리의 메시지를 안고 달리고 숨진 비장함을 담고 있는 말이지만, '말아톤'은 자신의 모습을 달리기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자폐아의 애잔함을 담고 있는 말이다. 

영화 <말아톤>은 한 자폐아가 달리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를 담은 실화다. 어린이용 책 <달려라, 형진아!>가 원작이다. 배형진. 실제로 이 놀라운 일을 해낸 청년의 이름이다. 영화 속 초원이 역할은 조승우가, 그의 엄마는 김미숙이 맡았다. 두 사람은 인생에 남는 명연기를 했고, 두 역할은 그들의 새로운 면모를 보인 놀라운 연기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 <말아톤>을 짚어보며 마라톤과 인생이야기를 해 보련다.

달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5살 지능을 가진 청년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아톤' 포스터.
달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5살 지능을 가진 청년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아톤' 포스터.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5세의 지능에서 멈춰버린 20세 청년. 초원이다. 윤초원. 그에게는 놀라운 재능 한가지가 있다. 달리기다. 어찌 어찌 알게된 그의 재능. 10km 대회에 그냥 나갔다가 무려 36분의 기록으로 골인한다. 현장에 있던 한 기자가 놀라며 묻는다. "36분이라고요?" 그리고 덧붙인다. "써브쓰리도 하겠네요." "서브3(Sub-3)가 뭐예요?" 엄마가 물었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마라톤 42.195km를 3시간 안에 우리 초원이가 달리는 것. 엄마의 목표일까, 초원이의 목표일까?

영화 내내 반복되는 대사가 있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아이의 재능을 알게된 엄마는 아이에게 이 말을 주입시켰고, 아이가 힘들 때마다 이 말을 되풀이해 묻고 대답을 듣는다. 그리고 진짜로 아들이 마라톤 풀코스를 뛸 때, 엄마는 아들이 다칠까봐 못 뛰게 말릴 때, 아들이 이 말을 엄마에게 되묻는다. "초원이 다리는?" 

누구에게나 좋은 점이 있다. 우리의 삶이 어떤 곤궁함에 처해있을지라도 애써 찾으면 찾을 수 있다. 내 안의 강점을. 그러나 애써 찾지 않으면 절대로 찾을 수 없기도 하다. 게다가 애써 찾았더라도 끝까지 믿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초원이가, 초원이의 코치 선생이, 그리고 엄마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믿음에 대해 말해준다. 나는 내 능력을 믿는가? 당신은 내 능력을 믿는가? 나는 나를 지지하는가? 당신은 나를 지지하는가?

운동장을 100바퀴 돌라고 해서, 진짜로 100바퀴를 돌았다. 그랬더니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그리고 그들은 교감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운동장을 100바퀴 돌라고 해서, 진짜로 100바퀴를 돌았다. 그랬더니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그리고 그들은 교감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100바퀴를 돌았더니... "가슴이 뛰어요"

실제로는 없었다는데, 영화에는 보스턴마라톤 우승자였던 코치가 등장한다. 좌절에 빠져 근신 중인 사람. 술이나 먹고 찜질방에서 잠이나 자고 싶은 사람이다. 남들은 귀찮을 뿐. 게다가 자폐아? 이 아이를 가르치라고? 장난해? 마음을 다잡고 뭘 좀 해주려 해도 통해야지 하지. 

그런데 조금씩 통하기 시작한다. 그냥 운동장이나 뺑뺑이 돌게 하던 코치가 조금씩 초원이가 착한 아이이고, 재능있는 러너이고, 무엇보다 끈기 있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 어느날, 귀찮다는 듯 툭던진다. "운동장 돌고 있어." "몇바퀴 돌까요?" "100바퀴!" 그리고 나중에 나중에 가봤더니 아직도 돌고 있다. 99바퀴째다.

쓰러지면서 100바퀴를 채우는 초원이. 그는 땀에 젖은 가슴에 손을 댄다. 그리고 말한다. "가슴이, 가슴이 뛰어." 코치 선생도 그의 가슴에 손을 댄다. "이럴 땐 이렇게 말하는거야. 가슴이 벌떡벌떡 뛰어요." 가슴이 뛰는 것을 함께 느끼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한 변곡점이다. 청각장애인이 선생과 함께 진동을 느끼며 음악을 배워가는 세계적인 명화가 있다. 이 영화의 이 장면은 그 영화의 그 장면에 필적한다. 함께 느끼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살다보면, 이런 순간이 있다.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 

'가을의 전설' 조선일보춘천마라톤. 가장 아름다운 코스라고 불리는 이 대회에서 초원이는 2시간 57분 7초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서브3' 목표를 이룬다. 무엇보다 달리는 동안, 진정한 환희를 맛본다.
'가을의 전설' 조선일보춘천마라톤. 가장 아름다운 코스라고 불리는 이 대회에서 초원이는 2시간 57분 7초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서브3' 목표를 이룬다. 무엇보다 달리는 동안, 진정한 환희를 맛본다.

햇살과 바람이 선물해 준 환희, 춘천마라톤

2001년 춘천마라톤. 이 기적적인 영화 내용이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지점이다. 흔히들 우리나라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코스를 달리는 대회로 불리는 조선일보춘천마라톤은 러너들 사이에선 '춘마'라고 줄여부르며 꼭 한번은 뛰어봐야할 대회로 꼽힌다. 초원이는 이 대회에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가한다. 마지막까지 엄마는 말리지만, 그는 꼭 뛰고 싶다. 놀랍게도 그 억척스런 엄마를 설득하고 그는 뒤늦게 뛰어나간다. 그리고 달린다. 

도중에 비가 주룩주룩 쏟아진다. 그를 위해 물을 뿌려주는 것이지만... 비가 와도 좋다. 지나가는 사람과 나누는 교감이 좋다. "비가 와요. 이런 날이 뛰기엔 더 좋지." 비가 그치고 가을의 정취가 물씬 살아날 때는 더욱 좋다. 햇살이 반짝이고 가을바람이 분다. 꼬물꼬물 손가락을 펼쳐 손바닥을 활짝 편다. 손바닥 가득 햇볕이 담긴다. 빛과 바람과 비, 가을이 듬뿍 담긴 달리기다. 빛을 만져 보았는가. 피부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온몸을 적시던 땀이 날아가고 몸이 뽀송, 따뜻해지는 경험을 해 보았는가. 이것이 환희다. 손가락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이 아름답다. 이것이 마라톤이고, 이것이 인생이다. 비와 바람과 햇볕과 달리기.

초원이는 한번 쓰러졌다. 그런데 지나가는 한 주자가 웅크리고 있는 그에게 초코파이 하나를 내민다. 뭐지? 아, 사람이 있었네, 내게도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네, 나는 그의 제안에 응답함으로써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네. 초코파이를 받아든 그는 다시 달린다. 마침내 골인, 2시간 57분 7초다. '써브쓰리'다. 꿈을 이뤘다. 그것이 엄마의 꿈이든 그의 꿈이든. 기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포즈를 요청한다. "스마일". 포즈를 잡을 줄 알 리 없는 초원이가 마침내 웃는다. 스마일. The End.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 씨가 현재 '캔서앤서' 발행인이고 당시 조선일보 기자로 '달려라 홍기자' 칼럼을 연재하고 있던 홍헌표 씨와 2006년 한 마라톤 대회에서 만나 함께 웃고 있다.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 씨가 현재 '캔서앤서' 발행인이고 당시 조선일보 기자로 '달려라 홍기자' 칼럼을 연재하고 있던 홍헌표 씨와 2006년 한 마라톤 대회에서 만나 함께 웃고 있다.

<달려라, 형진아!>의 배형진과 그의 엄마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윤초원의 모델 19세의 배형진은 2001년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 57분 7초의 놀라운 기록으로 서브3를 달성한다. 춘마는 '가을의 전설'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데, 이야말로 '가을의 기적'이며 '가을의 전설'을 만든 것. 배형진 씨는 다음해 2002년 철인삼종경기에 출전해 수영 3.8km, 사이클 180.2km, 마라톤 42.195km를 15시간 6분 32초에 주파해 국내 최연소, 장애인 최초 철인이 되었다. 놀라울 따름이다. 

춘마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조선일보는 초원이와 배형진 씨에게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의 '엄마' 박미경 씨를 인터뷰한 2005년의 월간조선 기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아들의 증상들이 하나하나 소개돼 좋았어요.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폐아들은 이런 행동들을 하는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잖아요.... 자폐라는 말 그대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한가지에만 집착하고 외부사람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하거든요."  

그리고 책에는 이런 대목도 등장한다. "남한산성 입구를 걷다 보면 항상 마주치는 장애인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고 돈을 달라고 구걸한다. 내가 없을 때 형진이 모습이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서글퍼진다. 아침저녁으로 기도한다. 형진이가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세상과 부딪힐 힘도 부족하다면 나보다 하루 전에, 아니면 함께 죽게 해달라고 간절히..." 

영화 속에서 두차례 변주되는 이 기도는, 비장하다. 애틋하다. 그러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냉정한 잣대이기도 하다. 나는 이타적인가, 이기적인가? 인생의 한 대목을 평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족 : 춘천마라톤을 이야기하면서 <캔서앤서>의 홍헌표 대표를 빠뜨리기는 어렵습니다. 조선일보 기자시절이던 2006년 '달려라 홍기자'라는 칼럼을 연재하면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고 훈련하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올림픽 취재를 포함한 바쁜 일상 속에서도 훈련을 이어갔고 마침내 5시간 4분의 기록으로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뛰어냅니다. 그 다음해에는 뉴욕마라톤을 뛰었고요.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그 고통을 이겨내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의 힘이 이때부터 익어갔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춘천마라톤이라는 인연으로 그는 배형진 씨와도 아는 사이. 춘마를 준비하며 작은 대회에서 그와 함께 달리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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