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그 힘든 것을 왜 해요?"

"이 힘든 마라톤, 다시 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이런 말은 달리기 좀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봤을 말이다. 마라톤은 힘들다. 달리기는 힘들다. 100m 달리기도 힘들다. 짧게 뛰는 단거리 선수들 훈련하는 모습을 혹시 본 적이 있다면,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훈련하는지 알 것이다. 근력운동이나 개인적으로 따로 하는 훈련들을 빼고 말해도, 운동장의 트랙을 돌고 또 돈다. 엄청 빨리 뛰었다가 천천히 뛰었다가 잠시 쉬고는, 또 전력질주를 한다. 보는 것도 힘들다. 

마라톤 훈련은 더 힘들다. 달리는 동안 "35km 지점을 뛸 때는 옆차선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로 뛰어들고 싶다"고 말하는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의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는 표현인데,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말을 하는 장면을 여럿 보았다. 그만큼 힘들다. 

그런데도 왜 뛸까? 프로 선수야 직업이니까 뛴다고 하지만, 아주 많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은 왜 42.195km라는 긴 거리를 고통스러워 하면서 뛰는 것일까. 보상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보상은 인간의 진화가 가져다 준 선물이다. 오래 잘 뛰어야 인간이 제대로 번성할 수 있기 때문에, 진화가 '달콤한 유혹'을 준비해 둔 것이다. 

마라톤 같은 장거리 달리기는 힘든 운동이다. 그렇지만 왜 자기 돈을 내면서까지 뛰는 것일까. 아주 놀라운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몸이 깨어나는 느낌, 몸의 활성화, 이것이 마라톤의 첫번째 선물이다.
마라톤 같은 장거리 달리기는 힘든 운동이다. 그렇지만 왜 자기 돈을 내면서까지 뛰는 것일까. 아주 놀라운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몸이 깨어나는 느낌, 몸의 활성화, 이것이 마라톤의 첫번째 선물이다.

보상1= 물리적 만족감, 몸이 살아난다

본투런. Born to Run. 인간은 달리도록 만들어진 몸을 갖고 있다. 그것도 장거리달리기를 하도록 만들어졌다. 인간의 몸체가 달리기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물리적 증거는 골격상의 특징만으로도 무려 26가지를 들 수 있다. 유명한 달리기 연구자 데니스 브램블과 대니얼 리버만이 '네이처'에 쓴 <장거리 달리기와 인류의 진화>라는 글에 자세히 나와 있다. 우리 몸은 200만년에 걸쳐 달리기에 적합하도록 진화했고, 마라톤 혹은 장거리 달리기는 현대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그 기능을 충실히 활용해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러니 뛰어보면 또 뛰게 된다. 몸이 활성화되는 기분, 뛰어봐야 안다. 

마라톤을 완주하고 난 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얻는 자신감, 자존감의 가치는 무한하다. 그래서 그 힘든 마라톤에 또 도전하게 되는 것이리라.
마라톤을 완주하고 난 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얻는 자신감, 자존감의 가치는 무한하다. 그래서 그 힘든 마라톤에 또 도전하게 되는 것이리라.

보상2= 정신적 만족감, I can do it!

흔히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고 한다. 기자는 마라톤은 인생과 같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쪽이든 물리적 이야기라기보다는 정신적 만족감과 관련된 표현이다. 사람은 달리도록 만들어졌지만, 어떤 인간은 뛰고 어떤 인간은 뛰지 않는다. 똑같이 달리기를 좋아해도 누구는 더 치열하고, 더 빠르고, 끝까지 간다. 왜 그럴까. 의지, 결의의 문제라고 진단하는 운동학자들이 있다. 마라톤은 강력한 의지로 완성되는 일련의 과정이고, 같은 재료인 비슷한 몸을 갖고 있더라도 그 의지력이 몸의 기능을 더욱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게되는 만족감도 그만큼 더 커진다. 우승자의 만족감은 더 크겠지만, 아마추어 러너라면,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이미 갖고있는 자존감을 더욱 강력하게 키워준다. 

영화 '말아톤'의 결정적인 한 장면. 자폐아인 초원이가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황홀한 표정으로 달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가 러너스 하이를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황홀함, 쾌감이 마라톤이 주는 선물이다.
영화 '말아톤'의 결정적인 한 장면. 자폐아인 초원이가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황홀한 표정으로 달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가 러너스 하이를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황홀함, 쾌감이 마라톤이 주는 선물이다.

보상3= 화학적 만족감, 러너스 하이 

러너스 하이. 믿을까 말까 의심스러운 어떤 현상이다. 짧게 달려서는 맛볼 수 없고, 너무 길게 뛰어서도 경험하기 어렵다. 마라톤의 3분의 2를 넘어선 지점에서 흔히 경험하게 되는 이 증상, 러너스 하이는 진화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러너스 하이는 중간 정도 강도에서 점점 강도 높은 유산소 운동을 하는 동안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천연 화학물질이 우리 뇌에 '쾌감'을 느끼는 영역에서 나타날 때 사람이 느끼는 현상이라는 설명이 있다. 미국 에커드대학의 그렉 거드만 박사는 "엔도카나비노이드는 뇌에 대마초와 같은 효과를 내는 물질로, 이 둘은 같은 세포 수용체를 활성화한다"고 했다. 활동적으로 달리는 사람 모두에게 이 물질이 생기지만, 그 농도가 충분히 높아져야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는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다. 

포식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초기의 인류는 지속적으로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려야 했다. 사냥을 하기 위해, 도망을 가기 위해. 초기 인류가 '러너스 하이'를 어쩌다 경험했다면, 그것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서라도 달리고 싶어졌고 달리기의 재미를 알게됐다. 결국 그것이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도움을 주었다. 

미국 하버드대 대니얼 리버만 교수는 "러너스 하이가 되면 모두가 강렬한 기분을 느낀다. 푸른색은 더욱 푸르게 되고, 감각은 더욱 예민해진다"며 뛰어난 사냥꾼으로 어느 순간 변신하는 인류를 묘사한 바 있다.

장거리 달리기가 주는 3가지 만족감이 모두 어우러져 '러너스 하이'가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진화의 결과물인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인간'에게 진화는 '러너스 하이'라는 선물을 준비함으로써, 혹시라도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유도했다. '오르가슴'이라는 선물을 준비해, 번식을 포기하지 않도록 유도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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