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구상에서 오래달리기에 가장 적합한 포유동물이다. 유인원 중에서는 당연히 인간만이 제대로 두 발로 뛸 수 있고, 다른 많은 포유류와 비교해도 인간의 달리기 능력은 탁월하다. 인간의 많은 기관들이 도대체 왜 있는거지? 궁금했던 그 기관들이 사실은 오래 달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다른 방면에서 보면 여전히 동물에게서 이런저런 지구력, 근력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연의 힘은 위대한데, 동물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그 놀라운 힘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오래달리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동물들이 갖고 있는 놀라운 힘은 진화의 방향, 각각의 동물이 선택한 기능의 진화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우리의 달리기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고.
세계적 동물학자이며 100km 울트라마라톤 러너인 베른트 하인리히의 <우리는 왜 달리는가- 동물들이 가르쳐준 달리기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사례 몇가지를 소개한다.
▶육상선수 개구리
개구리는 잘 뛴다. 우리가 달리는 방식과는 다르지만, 길고 튼튼한 뒷다리를 이용해 껑충껑충 잘 뛴다. 예로부터 개구리처럼 달리는 경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만큼 '달리기' 하면 개구리다. 껑충껑충. 그러나, 개구리 또한 사람처럼 오래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듯 힘을 발휘해 짧은 거리를 뛴다. 하인리히에 따르면, 개구리의 다리 근육은 에너지를 빠르게 폭발적으로 방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전력 질주하는 치타나 인간처럼 개구리도 직접 산소를 사용하지 않는 무산소 대사를 통해 탄수화물을 연소한다. 이 말은 아무리 껑충껑충 잘 뛰는 개구리라도 멀리뛰기 솜씨를 연속적으로 몇 차례 거듭한다면 곧 힘이 떨어지고, 뛰어오르는 거리는 점점 짧아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개구리들이 유산소로 장기전을 펼치는 때가 있다. 바로 수컷들이 짝짓기 노래를 할 때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울어대는 수컷의 울음은 유산소 운동이다. 밤새도록 울어대는 어떤 청개구리들의 합창은 최대 산소섭취량의 약 60퍼센트 수준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인간 울트라 마라토너와 비슷한 수준의 산소 소비다. 인간의 유산소 달리기가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가공할 지구력의 소유자, 낙타
지구력의 대명사 같은 동물이 바로 낙타다. 저 광활한 사막을 물없이 터벅터벅 걸으며 버텨내는 지구력. 상상할 수 없는, 상상하기도 싫은 지구력을 지닌 동물이다. 엄청난 기온과 건조한 날씨를 견디며 오랫동안 걸을 수 있는 낙타의 능력은 우리들에게 오래달리기의 통찰력을 던져준다.
낙타는 뛰어난 주자가 아니다. 그러나 더위와 심각한 탈수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뜨거워진 체온을 부족한 수분으로 해결해야 한다. 낙타의 최고속도는 시속 16km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낙타는 16시간에 걸쳐 160km를 갈 수 있다. 잘 뛰는 사람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인간은 수시로 급수 급식을 하면서 뛰지만 낙타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
비밀은 역시 등의 혹에 있다. 하인리히에 따르면, 그 혹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물탱크가 아니라 지방덩어리다. 운동의 원료인 지방을 등에 집중 축적해 걷는 동안 발생하는 몸통의 열은 쉽게 발산되고, 등의 지방이 태양의 열을 차단하는 방패 역할을 한다. 게다가 체중의 40%에 달하는 수분을 잃어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낙타는 타고난 장거리 선수인 셈이다.
▶'체열냉각' 기술 보유자 꿀벌
땡볕 아래서 달리기를 할 때 머리에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끼얹으면 더 달릴 수 있는 힘을 얻게된다. 곤충 중에 그런 방식을 활용해 장거리 비행을 하는 것이 바로 꿀벌이다.
벌들은 입으로 위의 내용물을 토해내고, 그 액체를 앞발을 이용해 온 몸에 펴 바른다. 그들이 벌통으로 돌아오면 무리의 동료들이 물이 증발하고 남은 잔여 고형물(설탕)을 깨끗하게 핥아준다. 비록 우리가 따라할 수는 없는 방식이지만, 열을 식히는 훈련방법을 배울 수는 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일부 황새와 독수리는 구토 대신 배설을 냉각방식으로 선택했다. 이들은 다리에 점액성의 똥을 배설한다. 이렇게 하면 새의 다리에 흐르는 피가 점액의 증발작용 과정을 통해 냉각되고, 몸 전체의 열을 낮출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체온을 섭씨 2도 가량 낮춘다고 한다. 요즘 코로나19로 체온 재는 일이 많다보니, 2도의 체온차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하늘의 울트라마라토너, 철새
자연의 신비함 중에서 아주 놀라운 것 하나가 철새들의 이동이다.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찾아가는 능력도 놀랍지만, 그 작고 가녀린 몸으로 수천km를 날아가는 능력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게 한다. 남쪽나라에 갔다 돌아오는 제비가 가장 흔하다면, 하인리히가 소개하는 흰궁둥이도요새는 극단적으로 대단한 철새다.
북극권에 알을 낳는 흰궁둥이도요새는 가을이 되면 먹이를 찾아 동쪽으로 이동하고, 에너지를 보충한 뒤 남하하기 시작해 남아메리타 북쪽 해안까지 날아간다. 총 1만4400km에 달하는 구간을 이동하고, 어떤 때는 3일동안 4600km를 날기도 한다. 이들은 정교한 스케줄을 갖고 에너지 보충을 챙긴다.
새들이 오래 비행하려면 엄청난 연료가 필요하다. 자연스러운 활공을 위해서는 높이 올라가야 하는데, 문제는 높은 곳엔 산소가 부족하다는 점. 산소가 희박한 데서 떠 있으려면 속도가 더 높아야 하고, 그러자면 또 연료가 필요하다. 몸무게가 무거워진다. 그것을 진화로 해결했다. 뼈를 가볍게 하고 , 속을 비우는 전략. 초식을 버리고, 과일과 곤충을 먹이로 선택해 옥탄가 높은 먹이를 통해 장거리 비행에 적합한 몸으로 변해갔고, 에너지를 유지할 길을 열었다.
동물들의 세계는 놀랍다. 인간의 몸의 진화를 이야기할 때, 동물에서 나아졌다고 말하기보다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진화의 방향을 더 잘 잡기 위해서 가끔은 동물의 진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더 잘 달리고 싶은가? 철새의 에너지 공급법, 낙타의 지구력, 곤충의 열 식히기, 개구리의 유산소 울기를 섞어서 도입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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