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꼭 필요한 이유, 겸손하게 표현해 몸에 좋은 이유는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기능을 실현시킨다는 점이다. 우리 몸은 달리기 좋도록 진화했고, 그 몸의 기능은 달릴 때 최대한으로 발현된다. 그러므로 달리기는 몸에 좋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고유한 움직임이고, 인간의 온 몸 기능을 다 활용하는 종합운동이다. 몸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더 잘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진화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원초적인 운동이고, 현재의 우리 몸을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인간 고유의 운동이다.
이런 논리를 주장하는 변형된 달리기 운동이 있다. 파르쿠르(Parkour)라는 것이다.
파르쿠르란 무엇인가?
몇 편의 영화가 있다. 건물을 기어 오르고, 높은 벽을 뛰어 넘고, 빌딩에서 뛰어내리고, 날듯이 줄을 잡고 옆 건물로 이동하는 놀라운 사람들. 마구 달리다 펄쩍 뛰면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신기한 운동. 영화에 등장하는 묘기같은 움직임이 파르쿠르다.
파르쿠르(Parkour)는 '길'을 뜻한다. 프랑스어 길(Parcours)에서 온 말이다. 영어식 발음 '파쿠르'라고 쓰는 사람들도 많다.
"파르쿠르는 수련자들이 주변 환경, 지형 지물들과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면서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개척하는 움직임의 예술(L’art du deplacement)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 강인함, 도전, 모험, 용기, 이타심, 한계 극복, 불굴의 의지, 자존감, 두려움, 확신, 위험감수, 겸손, 놀이, 행복, 상상력, 창조, 자유의지, 공감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삶으로 구체화된다. 즉, 파르쿠르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길을 만드는 삶의 태도이자 철저한 실천에 기반한 움직임 훈련이다." 위키백과
이쯤 되면, 곡예 같은 그 움직임이 사실은 엄청난 훈련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 곡예만을, 그 기술만을 해내는 것도 엄청난 일이긴 하지만....
파르쿠르 vs 야마카시
파르쿠르는 프랑스에서 출발했다. 파르쿠르가 포함하고 있는 움직임은 원시적인 것들이지만, 그것을 엮어 운동으로, 움직임으로, 예술로 만들어 낸 것은 파리 북쪽의 리스라는 작은 도시의 사람들이다. 1980년대말 움직임의 예술(L'art du Deplacement)이라 불리는 파르쿠르를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아홉명의 청년들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다비드 벨. 그들은 1997년 '야마카시(Yamakasi)'라는 그룹을 만들어 파르쿠르를 즐겼는데, 이 말은 아프리카 콩고의 링갈라어로 '강한 사람, 강한 정신'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비드의 아버지 레이몽 벨은 아들에게 프랑스 체육교육과 군사훈련 방식을 알려주었다. 그 방식을 이들은 길, 여정, 코스라고 말할 수 있는 parcours라고 불렀고, 이 말을 변형해 자신들의 운동, 파르쿠르(parkour)를 정착시켰다. 아프리카 원시부족에서 사용하는 자연적인 체력훈련 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이 운동의 동작법들은 몸을 기계적 분절로 강화하는 피트니스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온몸을 전체적으로 사용해 타고난 자연스러운 흐름의 움직임을 구현해내고 있다. 의식의 흐름처럼, 움직임의 흐름 상태를 추구한다.
이런 운동법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배경에는 2편의 영화가 있다. <야마카시>와 <13구역>이다. <야마카시>는 2001년 뤽 베송이 제작한 영화. 7명의 청년들이 빌딩을 맨손으로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야마카시라는 말이 퍼졌고, 동네에서도 건물과 담을 타고 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고로 이어지는 등 많은 파급력을 보였다. 이 영화가 파르쿠르의 창시자들인 야마카시를 다루고 있다면, 파르쿠르가 본격적으로 영화의 요소로 작동한 영화 <13구역>은 창시자 다비드 벨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파르쿠르의 참맛을 보인 영화다.
이 두 편의 영화가 파르쿠르의 기술에만 탐닉하도록 이끌었다고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아무도 모르던 파르쿠르를 현대 액션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묘기같은 움직임에 관심을 갖게 한 공로는 부인하기 어렵다.
파르쿠르의 인간 본연의 동작들
파르쿠르는 기능적인 힘과 체력, 균형감각, 공간 인식, 민첩성 등 움직임에 필요한 근본속성들을 개발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기술을 익히는 것과 함께 자기수양을 통해 용기를 얻어야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또한 여러 멤버가 함께 움직인다는 점에서 주변환경과 타인에 대한 존중, 자기표현, 공동체 의식, 놀이 같은 원시부족적 만족감과 함께한다.
파르쿠르가 실현하는 인간 고유의 움직임은 달리기, 뛰어넘기, 매달리기, 통과하기, 올라가기, 기어가기, 균형잡기, 구르기 등이다. 굳이 학습하지 않아도 아이가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움직임들을 극대화한 것이 파르쿠르의 움직임인 셈이다. 울퉁불퉁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거칠게 뛰어놀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두 익숙한 동작이다.
달리기는 다른 기술들을 활용하는 중간중간 거의 모든 구간에서 필수적인 동작이며, 도약의 추진력을 얻는 기본운동이기도 하다. 그외 파르쿠르에 활용되는 움직임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보자.
기어가기(Crawling)= 다양한 네 발 움직임과 기어가는 동작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파르쿠르 수련자들의 근력, 지구력, 가동성과 탄력 개발에 활용되는 자연훈련법(Methode Naturelle)에 기반을 두고 있다.
뛰어넘기/통과하기(Vaulting/Passing)= 올림픽 장애물 경기 ‘허들넘기’ 처럼 허리 높이의 장애물을 빠르게 통과하는 이동기술이다.
구르기(Rolling)=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 같은 야외환경에서 안전하게 충격을 통제할 수 있는 실용적인 낙법 및 구르기 기술들을 익힌다.
도약하기(Jumping)= 충격을 안정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착지 기술(Landing), 좁고 얇은 장애물에 정교하게 점프할 수 있는 프리시전 점프(Precision Jump) 등 장애물과 공간 사이를 도약하는 기술이다.
올라가기(Climbing), 매달리기(Swinging), 균형잡기Balancing)= 올라가기는 키 높이 이상의 높은 벽이나 장애물을 올라가는 기술들. 매달리기는 철봉을 비롯한 바 형태의 물체에 매달리는 방법이고, 균형잡기는 얇고 좁은 레일, 난간, 팬스 위에 서서 정확히 균형잡는 기술을 익히는 수련이다. 이들 모두 전신의 힘과 균형감각, 탄력 등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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