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기일을 기념하는 가족 모임에 가져갈 작은 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조금 힘들었는데도, 치즈를 젓고 있는 내 모습에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불현듯 20여 년 전 어느 여름날이 떠올랐습니다.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배달하러 오신 택배 기사님을 보시고 아버지는 고생한다며 수고비로 2만 원을 주셨습니다. 내가 주문한 물건은 만 원도 안 됐는데 말이죠...

6년여 전, 2019년 7월 12일 새벽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하늘이 떠나가고 온 우주가 빛을 잃은 듯 처절했던 날. 어둡고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흘러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는 지금도 온화하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수많은 교훈을 주시는 듯하다./사진=스토리텔러 이경숙
6년여 전, 2019년 7월 12일 새벽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하늘이 떠나가고 온 우주가 빛을 잃은 듯 처절했던 날. 어둡고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흘러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는 지금도 온화하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수많은 교훈을 주시는 듯하다./사진=스토리텔러 이경숙

무심하지만 강단 있는 표정으로 오른팔을 뻗어 돈을 건네시던 아버지의 행동에 택배 기사님은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상황인 듯 낯설어했습니다. 감사 인사조차 제대로 못 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듯 떠나는 모습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온 가족의 바람대로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가던 날, 들뜬 마음에 점심때가 다가오자, 메뉴를 고민하며 흥겨운 대화를 나누던 가족들을 뒤로하고 아버지께서는 이사업체 직원들에게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고 오라며 5만 원짜리 두 장을 그들에게 건네셨습니다. 그들은 환하고 반가운 미소로 그 돈을 받았지만, 세 사람의 식대로 10만 원이나 주는 아버지의 모습에 조금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볼멘소리를 했던 나의 불편한 표정이 떠오릅니다.

평소 정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 나였지만, 그때에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의 경제적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버지의 속정 깊은 마음 씀씀이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손익을 따지기에 앞서 다른 사람의 필요에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시던 분. 내가 택배 기사님의 손에 든 상품에 집중할 때, 아버지는 그의 고된 일과가 먼저 눈에 들어오셨던 모양입니다.

타인을 향해 단순한 계산이나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따뜻함과 배려, 공감과 나눔을 평생에 걸쳐 실천하셨던 아버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셨던 그 너그러움과 선함이 사무치도록 그립다./스토리텔러 이경숙 제공
타인을 향해 단순한 계산이나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따뜻함과 배려, 공감과 나눔을 평생에 걸쳐 실천하셨던 아버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셨던 그 너그러움과 선함이 사무치도록 그립다./스토리텔러 이경숙 제공

6년여 전, 2019년 7월 12일 새벽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늘이 떠나가고 온 우주가 빛을 잃은 듯 처절했던 날. 어둡고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흘러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는 지금도 온화하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수많은 교훈을 주시는 듯합니다.

타인을 향해 단순한 계산이나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따뜻함과 배려, 공감과 나눔을 평생에 걸쳐 실천하셨던 아버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셨던 그 너그러움과 선함이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를 대할 때 아버지가 보여주신 삶처럼 먼저 이해하려 애쓰고 그들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그게 아버지의 평생에 걸친 삶의 철학을 존중하는 것이며, 그분의 가르침을 길 삼아 살아가는 것임을 마음 깊이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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