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워 바디(Our Body).' 깔끔한 제목의 영화가 있다. 달리기 영화다. 혹은 청춘 영화다. 삶에 대한 영화이고, 아주 중요한 인간의 몸에 대한 통찰이 있는 영화다. 한가람 감독이 자신의 경험, 자신의 삶을 근거로 만든 이 영화는 우리의 삶이 목적을 잃고 방황한다고 생각할 때 뭔가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뭔가가 달리기일 때 놀라운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감동적인 여성영화로 잘 알려진 이 영화를 달리기의 관점에서, 영화 포스터에 담긴 3가지 문장을 화두로 인생과 달리기,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멈추고 싶은 순간, 달리기 시작했다"

영화의 주인공 자영은 힘들다.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보낸 긴 시간, 그녀의 삶은 피폐해졌다. 행정고시 8년차, 서른한 살이다. 자신감도 잃었고, 앞날에 대한 희망도 끊겼다. 가족의 믿음도 사라져간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날 우연히 달리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저희 지나갈게요." 이렇게 말하고 휙 지나가는 사람들. 그들이 자극이 되어 그녀는 먼지 쌓인 운동화를 찾아 신고 달리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멈추고 싶을 때, 망가져버리고 싶을 때, 전문가들이 권하는 건강상담의 정답은 소소하지만 똑 부러지는 것들을 하나씩 하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청소를 하고, 어떤 사람은 외국어를 배우고, 어떤 사람은 악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동안 수없이 강조해 왔듯, 달리기는 인간 본연의 운동이다. 우리 몸이 달리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달리면 우리 몸이 쉽게 반응한다. 원초적으로 몸 속에 들어있는 요소들이 반갑게 작동하면서 누구나 좋은 운동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고, 자신의 본성을 찾은 듯한 마음을 갖게 된다. 슬쩍 달리기 시작하면 바로 몸이 반응한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순간,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도 힘들던 그 몸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면, 달리기를 해보자.  가슴 속 답답함이 조금 시원해지지 않을까? 

 

"현주야, 달릴 때 무슨 생각해?"

시험을 포기하고, 나이 서른에 아무 것도 안하겠다고 결심한 자영은 '세상 안의 나는 내 맘대로 할 수 없지만, 내 안의 나는 내 맘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연히 마주친 달리는 사람들을 흉내 내다가 느껴지는 것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달리기는 나의 몸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점점 달리기가 좋아진다. 

"현주야, 달릴 때 무슨 생각해?" 자영은 잘 뛰고, 함께 뛰어주는 자신의 롤모델 현주에게 묻는다. 대답은 무엇일까? 달리기에 대해 수많은 작가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왜 달리는가를 말하고 썼다. 우리는 왜 달리고,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정답은 없지만, 어떤 궁극적인 합의는 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달려."

달리기는 그 자체가 목적이고, 달릴 때 하는 생각은 그냥 아무 생각도 아닌 생각이라는 것이다. 처음엔 주변도 보고, 풍경도 즐기고, 인생도 생각하고, 사업도 정리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을 잊고 그저 달리는 자신을 느낄 뿐이다. 그것이 묘한 중독성 맛이라고 하면 믿어질까?

갇혀 있던 청춘이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다. 무엇을 굳이 하겠다고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잊고 그저 달리는 것이 출구이고, 해방이고, 의미이다. 최저로 떨어진 자존감에서 벗어나 멋진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이다. 

 

"달리기가 힘들면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뛰어"

현주와 함께 뛰면서 혼자할 때는 늘지 않던 달리기 실력이 조금씩 늘게 된다. 운동으로 다져진 현주의 몸을 보면서 그 몸을 갖고 싶게 된다. 둘은 한마음으로 함께 달린다. 현주가 어느날, 자영에게 말한다. "달리다가 힘들면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뛰어. 내 기를 빼먹는다고 생각하고. 그러면 훨씬 덜 힘들어."

그리고 더 잘 달릴 수 있게 된 어느날, "자영아, 나 오늘은 네 뒤에서 뛰어도 돼? 달리면서 네 기 쪽쪽 빨아먹으면서 뛰어야지." 현주는 아주 좋은 달리기 멘토다. 그녀의 삶도 나름의 아픔과 무게를 갖고 있지만, 아주 좋은 벗이다. 홀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운동, 달리기가 실은 둘이 혹은 함께 하는 '우리 운동'이고, 그렇게 '우리 몸, 아워바디'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운동인 것이다. 

이 영화를 달리기를 잘 아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다른 이와 함께 호흡하면서 맞춰 뛰면 큰 힘이 된다. 기자가 처음 마라톤 대회에 나갔을 때, 옆에서 뛰면서 "초보자시네요. 잘 뛰시네요." 이렇게 다독여준 한 마라토너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와 함께 뛴 몇 km의 구간이 첫 완주에 큰 힘이 되었다. 

고시원에 박혀살던 사람에게 달리기는 자신감과 건강을 찾아주는 역할도 하지만, 의외로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우리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멘토가 되기도 한다. 

홀로 뛰는 자신과의 싸움이 달리기이지만, 세상에 열려있고, 가끔은 동반자도 있어 공존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다. 혼자이거나 둘인, 몸과 욕망의 어우러짐이 있는 영화 의 한 장면.
홀로 뛰는 자신과의 싸움이 달리기이지만, 세상에 열려있고, 가끔은 동반자도 있어 공존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다. 혼자이거나 둘인, 몸과 욕망의 어우러짐이 있는 영화 의 한 장면.

"몸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한가람 감독이 한 말이다.  "몸이 바뀌면 삶이 바뀌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 '아워 바디'는 진짜로 달리기에 관한 영화다. 삶과 인생, 여성, 사회 생활 등등에 관한 영화이지만, 진짜 달리기 영화다. 

연기를 아주 잘하는 것으로 두꺼운 마니아층을 갖고 있는 주연배우 최희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영화가 영화라 생각지 않는다. 물론 여성이 주축이 됐지만 제목이 '아워 바디'인데 사람이라면 몸을 쓰기 시작했을 때, 좌절한 상황에서 몸을 쓰고 운동을 하면서 근육 생기고 그런 자신을 바라볼 때 감정 등에 대해 남성분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극 중 자영은 운동으로 변화되지만, 그럼에도 갑자기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도 아니다. 여성이 주축이 된 건 기뻤지만 성별에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경험을 투영했다는 한가람 감독은 또 이렇게 말했다. "저도 20대에 미래가 불투명하고 취업 준비도 오래 했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낮에는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고 답답한 시간 보내다가 밤에 달리기를 하면서 고민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운동을 좋아했던 성격은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운동하는 게 좋다 생각했다. 그러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그러다 영화로 이야기가 출발하게 된 것 같다."

몸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달려보면 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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