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달리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종교인의 눈으로 본다면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달리기는 신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달림으로써 신의 창조원리에 적합하게 되는 셈이다. '달리는 신부님'이 있다. 스스로 운동으로 달리다, 그 의미를 알게 되고, 함께 뛰며 좋은 일하는 것의 행복을 실천하고 있다. 김성래 하상바오로 신부다. 

하상바오로 신부는 미국 유학중 시작한 마라톤과 세계 각지의 선교활동 중 달린 경험과 한국에서의 달리기와 봉사활동 등을 아름다운 글로 남겼다. 네이버 브런치북으로 만들어지고, 2021년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살아있다면 계속 달려야 합니다>. 분도출판사에서 발행했다.

하상바오로 신부의 달리기 이야기를 담은 브런치북과 단행본 책의 표지.
하상바오로 신부의 달리기 이야기를 담은 브런치북과 단행본 책의 표지.

"벽에 부딪쳤다. 심한 충격을 받고 비틀거리며 사력을 다했지만 달린다기보다는 빠르게 걷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나를 지나쳐 달려나간 사람들, 그 가운데에는 젊은이만이 아니라 노인, 심지어 의족을 찬 채 달리던 여자도 있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마침내 결승선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오히려 담담해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천천히 성호경을 긋는 것이었다. ... 3시간 2725초의 긴 기도가 끝나는 순간,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영혼을 흔들어대는 감동이 내몸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던 것이다." <클리브랜드 : 나의 마라톤 성소>

▶▶처음 마라톤을 뛴 사람의 체험과 감동을 극적으로 표현해낸 대목이다. 그래서 길게 인용했다. 기자의 첫 완주 체험과도 겹친다. 부족한 준비 탓에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골인, 3시간 48분 몇초의 고통이 끝났는데, 그 뒤에 찾아온 환희라니. 여기서 그 답을 찾았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던 것이다". 점점 뛰는 게 익숙해지면 다 쏟아붓는 것이 어려워진다. 뛰고 나도 뭔가 남아있는 느낌, 더 뛰었어야 하는 느낌... 처음 뛸 때만 가능한 이 독특한 체험이 그리워진다. 역시, 인간은 뛰어야 행복하다. 

"‘어떻게 매일 뛸 수 있어요?’ 사람들이 자주 묻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매일 달리지 않는다. 이틀이나 삼일에 한번 달린다.... 특히 겨울에는 달리기 어렵다. 밖은 우중충한데 날씨는 춥고 매서운 바람까지 불면 달리러 나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된다.... 나는 평지를 뛰는 것이 지루해지면 산에 가서 산길을 뛰는 트레일 러닝을 한다. 산에서는 평지에서 느끼지 못하는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매일 뛸 수 있어요>

▶▶달리기를 생활화하려면, 달리기에 짓눌려서는 안된다. 달리기 자체가 신이 되는 것은 좋지 않다.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몸을 만들거나, 달리기와 같은 효과를 내는 다른 운동을 함께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등산은 장거리 달리기 보완재로서 매우 훌륭하다. 겨울 같이 뛰기 힘들 때, 너무 위험하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은 삶의 기쁨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최고의 마라톤 지속주 훈련이 되고....

시카고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하상바오로 신부. / 브런치북 캡처

"마라톤은 철저히 개인 운동이며 기록운동이다.... 풀코스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은 완주가 목표지만 한번 완주를 하고 나면 기록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걸음씩 뛰어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는데 11초의 에누리도 없이 주어지는 결과가 개인 기록이다. 나는 일년에 한번, 가끔은 두번 반드시 그 세 시간 몇분의 일년 중 가장 밀도 있는 시간을 체험한다.... 너무 단순해서 때론 잔인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결과가 마라톤의 정직함이며 매력이다." <서브쓰리 : 벽에 부딪히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기록으로 남는다. 한걸음씩 1초씩. 1초의 무게는 달려본 사람만 안다. 100m에 1초 줄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1km에 10초 줄이는 것,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 마라톤 풀코스에서 10분을 줄이는 것은 경천동지할 경험이다. 피와 땀, 말그대로 피땀이 얼룩진 영광이다. 신부님이 또 가르쳐준다. "이런 결과가 마라톤의 정직함이며 매력이다."

"꿈을 꾸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꿈을 꾸기만 해도 안되지만 꿈에 대한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안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서브쓰리는 2005년 마라톤을 시작할 대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꿈이다. 꾸준히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갔지만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지금껏 내가 지불한 대가가 모자란 탓이다.... 서브쓰리는 달리는 자의 동물적 본성과 함께 용기, 정신력,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 도달할 수 있다.... 서브쓰리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 곧 유전자에 담긴 재능이 아니라 마음에 담긴 갈망에 달려있다." <나의 꿈>

▶▶서브쓰리는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게는 꿈이다. 모든 마라토너가 꾸는 꿈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도전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운동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꾼다. 그렇지만 결코 쉽지않다. 기자도 10여년전 꼭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 포기했다. 너무 힘들고 너무 한계가 뚜렷이 보였다. 그렇지만 서브쓰리는 여전히 희망으로 남겨두어 동력이 되고 있다. 

2013년 함께 뛰고 함께 봉사한 '살아있는 사람'들. / 브런치북 캡처
2013년 함께 뛰고 함께 봉사한 '살아있는 사람'들. / 브런치북 캡처

"‘피로사회에서 삶의 낙이 없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를 못 찾거나 사는게 너무 힘든 경우....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오는 무기력과 냉소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어쨌든 신발 끈을 묶고 달리러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승리가 거듭될수록 몸과 마음이 같이 건강해진다. 달리기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들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박사가 말한 몰입(flow)’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피로사회 : 달리기는 행복>

▶▶마라톤 같은 오래 달리기는 몰입이다. 삶이 힘들 때, 명상이 필요할 때, 달리다보면 모든 것을 잊고 그냥 달리는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요즘처럼 힘들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기다. 소소한 삶의 지혜다.  

 

"나에게 삶은 달리기며, 마라톤 안에는 사랑과 상상, 즐거움과 변화의 인생이 있다. 달리기는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며 가능하면 내 삶에 영원히 남기를 원한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달릴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삶이며 나는 아직 다른 것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첫발>

▶▶달리기는 어떤 사람이 인생을 걸만큼 소중한 것이다. 계속 달리면 행복하다.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달릴 것이다. 기자도 그렇고, 신부님도 그렇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김성래 하상바오로 Fr. H Paul Kim

1973~20**

사제이자 러너 Priest (and Runner)

달리기와 봉사로 살아있던 사람

Fully Lived in Running and Serving

 

신부님이 존경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묘비명은 유명하다. 하루키의 묘비명은 '그래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로 끝맺는다. 그것을 본떠 만든 신부님의 묘비명은 '달리기와 봉사로 살아있던 사람'으로 끝난다. 달리기에 집중해 칼럼을 쓰느라 신부님의 봉사와 헌신을 빠뜨렸다. 

이 책 <살아있다면 계속 달려야 합니다>에는 종교인으로서, 휴머니스트로서 헌신과 봉사의 기록들이 담겨있다. 달리는 목표 중 하나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뛰고 함께 봉사하는 것이다. 비슷한 달리기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는 기자가 절대로 신부님을 뛰어넘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하상바오로 신부를 알게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하상바오로 신부가 가르쳐 줬다. 달리는 사람은 신의 소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마라톤은 3시간 몇분의 길고 절실한 기도다. 

 

 

 

저작권자 © 캔서앤서(cancer answe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