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경험자와 가족들이 모여 만든 캔드림협동조합이 예비사회적기업인 후불제 상조회사 예담라이프(대표 신선철)와 함께 진행하는 ‘앎경험자 나의 이야기’ 공모전 2회 수상자로 난소암 경험자인 김예린 씨가 선정됐다.
‘앎경험자 나의 이야기’ 공모전은 예담라이프와 캔드림협동조합이 매월 암경험자나 가족 중 한 명을 선정해 캔드림협동조합 조합원 아티스트의 작품을 선물하는 나눔 행사다.
예담라이프가 구입해 선물하는 아트 작품은 황세정 작가의 '캔디'(아크릴 프린팅 한정판)다. 캔드림협동조합 네이버카페(https://cafe.naver.com/canfcoop/434)에 쓴 김예린 씨의 암경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예린입니다.
제가 26살때 처음 판정 받은 이야기와 제가 지금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두서없는 이야기이지만 잘 읽어주세용❤️
나는 26살의 첫 시작일 때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 나는 그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현실이 너무나 싫고 내 자신이 싫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입원 절차를 혼자 처리하고 수술하기 전 여러 검사 또한 무섭고 신기했다. 입원 당일 나는 마지막 타임 수술이었다.
3번째 순서였지만 앞 쪽 환자분들의 수술 시간이 길어져서 내 수술은 더 지연되었다. 수술을 하기 전 시크하신 주치의 쌤이 수술동의서를 받으러 오셨다. 그 내용은 혼자 듣기에는 너무나도 지옥같았다. 그렇지만 사인을 해야 수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 시간이 길면 심각한 거라고 같이 입원했던 분들이 말했다. 찬양을 들으며 나는 두려움을 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밤 11시쯤 되어서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수술방으로 이동했다.
수술실 입구. 환자 대기 라인에 휠체어를 세운 보조사님. 그 순간 수술방 간호사님께서 나오셔서 생년월일과 이름을 물으셨다. 나는 그제서야 현실을 느꼈다. 진짜 무섭다는 걸. 생년월일을 말하며 울어버렸다.
그 순간 수술실 문을 열고 환자 대기실로 나오시는 교수님은 한 손에 휴지를 들고 나에게 오셨다. 울고 있는 나에게 “지금 울면 안돼, 마취 풀리고 아플 때 울어야지. 지금 울면 체력 바닥나”라고 하시며 눈물을 닦아 주셨다. 수술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보조사님은 내가 타고 있는 휠체어를 수술실까지 밀어주고 가셨다.
수술실에서 바쁘게 움직이시는 간호사 선생님들, 마취과 쌤들의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에 나는 무서웠다. 계속 울고 있었는데 수술실 문을 열고 웃으며 들어오시는 교수님이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을거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안 난다. 수술은 약 1시간30분이 걸렸다고 들었다.
교수님께서는 수술 후 항암(치료)을 6차까지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항암을 받으면 완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치료를 거부했다. 항암을 여러 번 거부해 입원 기간도 늘어났다. 30분 간격으로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들과 주치의 쌤이 나를 설득하러 왔다 갔다 했다.
교수님의 #1 약속 : 항암 치료 1차만 받아도 된다.
그 말에 나는 혹하여~ 1차 항암을 아무 탈 없이 잘 받았다. 1차 항암치료가 끝난 후 피검사를 했더니 396이던 종양 수치가 10.2로 정상 수치로 떨어졌다. 다들 기적이라며 놀라셨다.
교수님의 #2 약속 : 더 건강하게 생활하려면 1차는 더 받아야 한다.
나는 두 번째 약속에 넘어갔다. 두 번째도 무사히 넘어갔다.
교수님의 #3 약속 : 진짜~ 1차만 더 받자, 나중을 위해 더 건강하려면 1차만 더 받자.
그 속임에 또 넘어가버렸다. 교수님의 선의의 거짓말로 3차까지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뒤이어 4~6차 항암도 교수님의 속임으로 무사히 마무리했다.
6차 항암까지 끝난 뒤 한 달 푹 쉬었더니 이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를 받는다고 1년을 쉬었으니 또래 친구들의 경제 활동이 부러웠다. 치료가 무사히 끝나고 두 달 정도 쉬다가 알바부터 시작했다. 주차장, 기념품 샵, 병원 등에서 방황하며 알바를 하다가 너무 규칙적이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2개월 반 뒤 지금 다니는 직장에 취업했다. 부산의 대표 베이커리(빵집)다. 처음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부담감이 들었다. 입사 후 한달 정도는 적응이 안 되어 포기하고 나가고 싶었다. 그 생각이 반복되다가 어느덧 5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5개월이 되었을 때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이 회사에 오랫동안 있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내가 어렸을 때 꿈꿨던 ‘멋있는 어른’의 모습인 분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멋진 분은 바로 우리 대표님이다. 내가 어릴 적에 꿈꿔왔던 멋진 어른의 모습. 나의 롤 모델인 대표님이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옆에서 조언을 해주시고, 내가 엇나갈 때 옆에서 나를 혼내 주시고, 내가 성장할 수 있게 늘 옆에서 응원해주시는 분...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 우울할 때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신다. 그게 암이긴 했지만,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분이다. 아프기 전에는 마음 힐링은 생각도 안 했고, 콘서트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프고 난 후로 스트레스 해소와 운동, 힐링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아프고 난 후 헬스를 시작했고, 최애 가수 콘서트도 갔다. 대표님께서도 콘서트는 무조건 가서 힐링하고 오라고 하셨다.
내가 암 경험자가 됐지만 내 생활이 바뀌고 그 덕에 좋은 분을 만나 더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암이라는 건 무섭고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의 롤 모델을 만나 더욱 더 버틸 힘을 얻게 돼 너무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