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얻고자 하면, 먼저 주어라.
태극권의 원류인 노장철학의 태두 노자가 한 말이다. 장욕탈지, 필고여지(將欲奪之 必固與之)다. 노자 도덕경 36장에 나오는 말이다. 36장은 미명편이라고 한다. 미명(微明)은 숨겨진 지혜의 비밀 같은 뉘앙스의 말이다. 은은한 드러남, 살짝 감추어진 밝음이다.
줄이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늘려줘야 하고
(將欲歙之 必固張之)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강하게 해야 하고
(將欲弱之 必固強之)
망하게 하려면 먼저 흥하게 해야 하고
(將欲廢之 必固興之)
빼앗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將欲奪之 必固與之)
이것이 미명이니,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이다
(是謂微明 柔弱勝剛強).
굳이 이렇게 길게 인용한 것은 태극권의 이치를 너무나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 원리를 생활과 전략의 측면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약승강강, 즉 부드러운 것이 강함을 이긴다는 마지막 표현은 우리의 모든 생각을 하나의 말로 집결한 절창이다.
태극권 대련, 상대가 당기면 끌려가 줘라
태극권의 자유대련은 밀고 댕기는 '추수'가 대표적인데, 이때 우리는 온몸의 힘을 빼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고, 의도를 읽고, 상대방만큼 움직이거나 조금 일찍 반응함으로써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킨다.
내가 공격해 오는 상대에게 역공을 펼치고 싶다면, 상대가 밀어오는만큼 뒤로 밀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응축된 기운을 모아 다시 쏘아내는 것이 바로 역공이다. 만약 상대방이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면, 역시 힘을 빼고 필요한 만큼 끌려가 주어야 한다. 끌려가면서 나의 기운과 상대의 기운을 내 몸안에 응축시키고, 적절한 지점에서 온몸의 힘과 응축된 기운을 상대방에게 확 쏘아내면 상대가 저멀리 밀려나게 된다.
이것이 태극권에서 상대방을 대하여 싸울 때 대응하는 방법이다. 빼앗으려면 먼저 주어라.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힘을 잔뜩 쓰도록 만들어라. 그렇게 하면 부드럽고 유약한 상태에 머물더라도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미묘한 지혜는 알더라도 실천하기 어렵다. 그래서 평소 꾸준한 수련이 필요하고, 마음을 다잡는 연습이 필요하다. 느긋한 수련을 통해 쌓인 내공/내력/기운이 있어야 상대가 공격해 오는 순간에도 흥분하거나 긴장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내게 필요한 시간까지는 힘을 빼고 느긋하게 머무는 것, 그것이 제대로 싸우는 방법이다.
일상의 지혜, 양보와 여유가 미덕이다
일상 속에서도 이 원리를 적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약하게 하려면 먼저 강하게 만들고, 망하게 하려면 먼저 흥하게 만들어야 한다. 뒤집어 말해, 상대가 강하고 흥하다고 해서 주눅 들 일이 아니고, 상황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마음 상할 일이 아니다.
침착하고 여유있게 생각하고 상황을 파악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인 이상, 의외의 일을 만나면 먼저 긴장하게 마련. 파리 한 마리만 눈 앞으로 날아들어도 깜짝 놀라기 십상이다. 하물며 어렵고 긴박한 상황에 처한다면.
그래서 우리는 평소 깊은 호흡과 유장한 몸놀림의 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 느긋한 움직임 속에서 미묘한 차이를 파악하는 능력이 생기고, 깊은 호흡과 생각을 통해 태산같은 마음을 갖춰야 한다. 질병이나 죽음의 위험 같은 극한적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반응할 수 있을만큼의 태산같은 마음도 매일 조금씩 수련하고 돌아봄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병서에는 욕금고종(欲擒姑縱)이라는 말이 나온다. <36계> 중 제16계다. 잡고자 하면 먼저 놓아주라는 말.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내어주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제갈량의 7종7금 이야기로 대표되는 전쟁에서의 전략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생활 속에서는 양보와 여유의 미덕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온통 스트레스 받을 일들만 있는 세상사. 거기에 함몰되면 우리는 건강과 평안을 잃게 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양보와 여유의 미덕이다. 마음의 평화가 곧 면역력을 가져다 주고, 어쩌면 치유의 길로 우리를 안내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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