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볼 시간이 많지 않은데, 목요일 밤마다 본방사수를 하는 프로가 있다.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경연자들의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몰래 울컥 해서 눈물을 흘린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열세살 정동원이 형들과 함께 희망가를 부르는데, ‘희망’이라는 단어에서 주책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찬또배기’란 별명을 가진 이찬원이 ‘잃어버린 30년’을 불렀다. 그가 태어나기 13년 전인 1983년 온 전국을 5개월간 울음 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의 몇 장면이 흘러나올 때, 나도 잠시 그 때로 되돌아 갔다.

미스터트롯에서 임영웅이 부른 '바램'을 부르며 열심히 살아온 삶의 우리 자신을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TV조선 캡처 화면
미스터트롯에서 임영웅이 부른 '바램'을 부르며 열심히 살아온 삶의 우리 자신을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TV조선 캡처 화면

영탁이 ‘막걸리 한 잔’을 부를 때, 김호중이 ‘태클을 걸지 마’를 부를 때 가슴이 시원해졌고, 임영웅이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들으며 작년 1월 아버지를 하늘 나라로 먼저 보내신 시골집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온 몸이 심연으로 푹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맞다. 노래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춤추며 팡팡 뛰어다니며 부르는 밝은 노래도, 잔잔하게 읊조리는 노래도 똑같다. 작년 하반기에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주관하는 도박방중독자 치유 프로그램을 나를 포함해 50대 3명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집단 심리토크와 뮤직 테라피, 웃음 테라피를 결합한 4회짜리 프로그램이었는데, 세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0~40대 남성 참여자들과 공감대가 쉽게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노래 덕분이었다.

도박 중독 때문에 엉망이 된 자신의 삶을 되찾고 싶은 참여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잘 표현한 노래가 있다. 가수 임재범이 부른 ‘비상’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빨려 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 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 두었지

이젠 이런 내 모습 나조차 불안해 보여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뮤직 테라피스트의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10명의 표정과 몸짓은 저마다 달랐다. 어떤 이는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열심히 날갯짓 하고 있었고, 어떤 이는 저 깊은 밑바닥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힘들어 했다. 노래를 부르고 난 뒤 토크 시간. 노래 가사 중에 마음에 특히 와 닿는 단어를 써보라고 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왜 그 단어에 마음이 갔는지 얘기를 하도록 했다. ‘자기만의 세계’, ‘제 자리’, ‘불안해 보여’,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자신의 아픔을 털어 넣고, 감추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고, 공감해주고 공감 받은 시간이 흐르고 참여자들은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이었다. 노래가 아니었다면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속 마음을 자연스럽게 털어 놓은 덕분에 참여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본다.

암 치유의 길은 험난하다. 암 세포 제거를 위한 병원 치료(수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바닥까지 떨어진 면역력을 충분히 끌어 올려야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신체 조건에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잠을 잘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분노와 걱정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면역력이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럴 때 필요한 게 노래와 웃음이다. 웃음의 치유 효과는 앞선 칼럼에도 썼는데, 노래 한 곡이 주는 힘은 웃음 못지 않다.

임영웅이 불러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노래가 있다. 작년 7월 내가 리더로 있는 웃음보따里 창립 8주년 기념 잔치 때 회원들이 합창을 했다. 노래를 잘 부르고 못 부르고를 떠나, 합창을 한 사람도 들은 사람에도 잔잔한 울림이 있었던 노래였다.

암 환우들과 상담을 할 때면 나는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려 오느라 신경을 써주지 못했던 몸을 사랑해줘야 할 시간”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2008년 대장암 진단 후 수술을 받고 나서야 내 몸을 위로하고 사랑해주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암 치유는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나지막이 ‘바램’을 불러 본다.

내 손에 가진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땜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기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 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 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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