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암은 우리나라 국민의 진단받는 전체 암의 2.3%를 차지하는 암 발생빈도 10위의 암이다. 최근에는 치료 여건이 많이 좋아졌지만, 불과 몇년 전만해도 신장암 치료제를 찾기 힘들었다. 신장암에 관련된 정보 자체를 얻기 쉽지 않았다.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도 2004년 11월, 남편이 신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 이 문제에 부닥쳤다. 암 진단의 충격을 겨우 추스리고 잘 치료해보자고 힘을 냈는데, 신장암 치료제가 국내에 없다는 소리를 듣고 좌절하다시피 했다. 신장암 치료에 대한 정보도 얻기 힘들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백 대표는 남편의 투병을 도우면서 직접 신장암 정보를 찾아 나섰다.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고 외국의 신장암 단체와 교류하면서 신장암 치료 정보를 모으고, 다른 환우들과 교류했다.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과 교류하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 2006년 한국신장암환우회를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세상을 떴지만 백 대표는 지금도 열정적으로 신장암 환우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백 대표에게서 한국의 신장암 현황과 대책, 환우회의 운영 방법 등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신장암환우회, 투병 정보 공유 & 마음치유 프로그램 진행
암 진단을 받으면 누구나 공포와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특히 신장암은 국내에서는 드문 암인데다, 다른 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존율이 낮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이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는 더 크다. 백 대표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전화통화나 직접 상담을 통해 신장암 환우,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다. 가족으로 체험한 투병의 지혜를 나눠주는 일, 자신이 모은 신장암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기본이다. 신장암 치료 정보, 투병 노하우 등을 모아놓은 한국신장암환우회 홈페이지는 백대표의 눈물과 땀이 모여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백대표는 "우리 환우들이 막막해 하고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낄 때 내가 치료 정보 제공 등 도움을 줄 수 있고, 그 덕분에 치료 효과가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암은 육체적인 고통 뿐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싸움이기도 한 만큼 한국신장암환우회는 환자를 심리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암환자 가족이었던 백대표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기 전까지는 ‘한 달에 한 번 함께 밥 먹어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환우들이 함께 식사하며 상담을 진행하고, 힐링산책과 미술치료 등의 심리치유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지난 6월에는 ‘심리치유를 위한 감정치유 다이어리’를 제작해 신장암 환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현재는 신장암 치료제에 관한 전자책을 제작 중이며, 곧 병기 별 신장암 가이드북을 제작할 예정이다.
정보 많은 유럽 등 해외 교류 활발
백진영 대표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비상임조정위원,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KCCA) 위원이기도 하다. 백 대표는 국내 의료진, 교수, 제약사 관계자, 해외 신장암 관련 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최신 신장암 치료 정보, 유용하고 입증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백 대표는 "1년에 두 차례 의료진과 함께 환자, 보호자 등을 대상으로 신장암 세미나를 열고 있다"며 "제약사를 통해 치료 약제에 대한 정보를 얻고 비뇨기와 종양내과 등 다른 분야의 교수와도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장암은 한국에서는 발생하는 암 10위 수준의 소수암이지만 유럽에서는 발생률이 매우 높은 암이다. 백 대표가 이메일, 화상 회의 등을 통해 해외 암환우 단체 등과 교류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백대표는 "유럽엔 신장암 치료에 대한 정보가 우리보다 훨씬 많고 환자중심 치료문화가 자리잡고 있어 환자와 가족의 입장을 최우선시한 치료 환경이나 제도를 배울 게 많다"고 말했다. 외국 신장암학회, 신장암연합단체를 통해 얻은 정보를 모아 우리나라 환우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의료 정책에도 도입될 수 있게 하자는 게 그의 목표다.
"치료 환경, 환자 중심적으로 개선할 필요"
백 대표는 신장암 환자와 가족을 위해 의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환자중심 치료 환경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환자가 질환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질환 정보 뿐 아니라 환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지원 시스템 정보, 올바른 먹거리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완화의료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완화의료란 장기적 치료가 필요하거나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 통증 완화 치료와 심리상담 등을 제공하는 것을 말하는데, '호스피스'라고 불리면서 환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환자와 환자 가족의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지원 시스템 마련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신장암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우들이 자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체적 치료와 정신적 돌봄이 시스템적으로 연계돼야 환자와 가족에게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우회가 투병의 등대가 되겠습니다. 당신의 희망의 증거가 되어 주세요." 한국신장암환우회의 슬로건이다. 신장암 관련 정보를 얻고 싶거나 교류를 원한다면 한국신장암환우회의 온라인 커뮤니티(cafe.daum.net/kidneycancer)에 가입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