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유방암의 15%를 차지하는 삼중음성유방암은 치료가 쉽지 않은 암 중 하나로 꼽힌다. 암세포가 갖고 있어야 할 에스트로겐 수용체(ER), 프로게스테론 수용체(PR), HER2(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2) 단백질 등 3가지 수용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삼중음성’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3가지 수용체가 있다면 호르몬 치료제나 HER2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는데, 3가지가 없기 때문에 치료 선택지가 많지 않아 주로 세포독성항암제에 의존하는 치료가 이뤄진다.
삼중음성유방암은 다른 유방암 유형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빠르고, 재발과 전이가 쉽게 일어난다. 치료 후에도 재발 가능성이 높다. 특히 치료 초기 3~5년 내에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40대 이하의 젊은 여성이나 BRCA1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난치암에 속하는 삼중음성유방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 전략을 서울대병원 유방내분비외과 문형곤 교수, 서울대 허유정 암생물학 협동과정 박사, KAIST 생명과학과 전상용·바이오및뇌공학과 최정균 교수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이 찾아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오플라시아(Neoplasia)' 최근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암세포에서만 발견되는 신항원을 활용한 두 가지 면역치료 전략을 실험했다.
첫 번째는 환자 자신의 암세포를 분해해 얻은 신항원이 포함된 TdL(종양 유래 용해물)을 투여해 면역계에 종양 항원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하나는 신항원만 선별해 나노입자(LNP)에 담아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실험 결과 TdL을 투여한 경우 종양 성장 속도가 확연히 늦춰졌고, 면역세포가 종양 내부로 더 많이 침투해 암을 공격하는 T세포가 활발히 활동했다. 또한 폐 전이 결절의 수와 전이 면적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억제 효과(p<0.01)도 확인되었다.
신항원을 LNP에 담아 투여한 경우에도 종양 크기가 의미 있게 줄었으나, 가장 강력한 억제 효과는 TdL을 사용했을 때 나타났다. 특히 TdL을 기존 면역항암제와 함께 사용했을 때는 종양 억제 효과가 훨씬 더 좋아졌다.
연구팀은 단일세포 분석을 통해 TdL이 종양을 공격하는 CD8+ T세포 같은 항암 면역세포를 늘리고, 반대로 암 성장을 돕는 억제성 면역세포를 줄여 종양 미세환경을 면역 반응에 유리하게 바꾼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는 TdL이 단순히 종양 크기만 줄이는 게 아니라 면역 체계 전반을 암 억제 방향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신항원 기반 치료의 강력한 효과를 삼중음성유방암에서 처음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방법은 치료법이 제한적인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뿐 아니라, 대장암, 폐암 등 다른 고형암에도 적용될 수 있어 차세대 면역치료 개발의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형곤 교수는 “환자 자신의 암 조직을 활용해 면역치료 효과를 높일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앞으로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가 입증된다면 새로운 면역치료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