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맞춰 물을 주며 하루하루 커가는 것을 지켜보던 장미나무와 아이비를 시부모님 댁으로 보내고 나니 일상이 무료해졌다.

책상 한 구석에 놓여 있던, 동생이 주고 간 바질 씨앗이 눈에 들어왔다. 바질을 심어볼까? 인터넷에서 바질이 씨앗부터 키우기 쉽고 잘 자란다는 글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바질 화분을 보는 그 순간 만이라도 창문을 열어 바깥 바람을 느끼고 햇빛을 쐬었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바질처럼 나의 건강도 눈에 띄게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바질 화분을 보는 그 순간 만이라도 창문을 열어 바깥 바람을 느끼고 햇빛을 쐬었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바질처럼 나의 건강도 눈에 띄게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작은 접시에 키친타월을 깔고 물을 적셔서 바질 씨앗을 몇 개 톨톨 털어놓아야지. 아뿔싸! 씨앗 봉투에서 바질 씨앗이 쏟아져 버렸다. 이미 키친타월이 젖은 상태였기에 다시 씨앗을 주워담을 수 없었다.

에휴, 그냥 길러야겠다. 며칠이 지나자 깨처럼 작은 크기의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싹이 나오고 있었다. 어렸을 적 강낭콩도 이런 식으로 싹을 틔운 것 같은데…

마치 탐구생활 방학 숙제로 식물 관찰일지를 적었던 어렸을 때로 돌아간 듯했다. 접시 위 키친타월에서 싹이 난 씨앗들을 흙으로 옮겨심으려는데, 집에 화분도 없고 씨앗은 너무 많아서 급한 대로 반으로 자른 생수 병과 계란 판에 지난 번 원예테라피 재료에서 남은 흙을 담았다.

핀셋으로 하나둘씩 발아된 씨앗을 흙 속으로 심고 물을 주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씨앗을 발아시켜서 이때 조금 솎아냈어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싹이 보이는 씨앗은 모두 옮겨심었다. 하나도 포기할 수 없어! 어서어서 자라렴~.

하루 이틀 만에 아주 작은 싹이 흙 위로 쏙 하고 솟아 나왔다. 겨우 보일까 말까 하는 아주 작은 싹이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잘 자라고 있는지 들여다 보았다.

바질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2-3일에 한 번씩만 물을 주면 된다고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잘 있는지 보고 싶고 잘 자라게 물을 주고 싶었다. 초보 식집사의 실수인 과습을 조심하며 아주 조금씩 물을 챙겨주었다.

무료한 하루, 항암치료가 끝난 지 6개월쯤 됐기에 여전히 나는 집에서 빈둥거릴 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아직도 머리는 삐쭉빼쭉 덥수룩하고 운동은커녕 항암치료 후 골절되었던 발 때문에 오래 걸을 수도 없었다. 마땅한 취미생활도 없었고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바질 키우기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저 바라보고 가끔씩 물을 줄 뿐이었지만…

바질 화분을 보는 그 순간 만이라도 창문을 열어 바깥 바람을 느끼고 햇빛을 쐬었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바질처럼 나의 건강도 눈에 띄게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나의 과한(?) 사랑을 받은 바질 새싹은 무럭무럭 자랐다. 매일 매일 커가는 바질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두 개의 떡잎 사이에서 드디어 진짜 바질 모양의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간격을 벌려 옮겨 심어야 할 때가 되었다. 넓어진 간격만큼 화분도 더 필요했고 흙도 더 필요했다. 다이소에서 흙과 영양제를 사왔다. 화분은 그냥 생수병을 잘라서 쓰기로 했다. 내 나름대로 분갈이를 하고 나니 거실 창문 밖 작은 선반이 바질 화분으로 가득 차 어느새 바질 농장이 되어버렸다.

바질은 엄청 잘 자랐다. 음… 바질 키우기에 재능이 있는건가? 작은 바질 잎 두 개가 네 잎이 되고 바질 대가 자라고 또 잎이 나고. 그냥 가끔 물만 주는데 이렇게 잘 자란다고?

놀라운 성장 속도로 하루하루 쑥쑥 커 있는 바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따스한 햇빛 아래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나의 바질 농장은 점점 무성해져 갔다.

얼마 후, 쑥쑥 자라난 바질 잎끼리 부딪히기 시작했다. 또 다시 분갈이를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번에는 플라스틱 컵을 사와서 한 컵에 3대씩 심었다. 작은 바질 모종컵이 선반을 가득 채웠다.

어느 날에는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를 얇게 썰고 싱싱한 바질 잎을 따다가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향긋한 바질 향이 입안 가득히 퍼졌다. 매일 아침 나만의 바질 농장에서 향긋한 바질 향을 맡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었다.

바질 덕분에 햇볕도 자주 쬐고 바깥 나들이도 종종하고, 이 모든 순간들이 나의 몸 건강뿐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무료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찾는 모든 분들께 바질 키우기를 추천해 본다./게티이미지뱅크
바질 덕분에 햇볕도 자주 쬐고 바깥 나들이도 종종하고, 이 모든 순간들이 나의 몸 건강뿐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무료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찾는 모든 분들께 바질 키우기를 추천해 본다./게티이미지뱅크

바질은 어느새 한 뼘만큼 키가 자라났다. 가끔 샐러드에 한 움큼씩 넣어 먹는 속도보다 바질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혼자서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이 많은 바질을 어떻게 하지?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나눠줄 수도 없었다. 당근마켓에 팔아봐? 음, 진짜로 팔아볼까? 바질 사진을 찍어 당근마켓에 판매 글을 올렸다. '잘 자라는 바질 모종 1컵에 2000원, 2컵에 3000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거래하러 나가서 동네 한 바퀴를 걷고 오고, 받은 돈으로 군것질도 하고, '향이 너무 좋아요~' 기분 좋은 후기도 받았다.

비록 2000원, 3000원이었지만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그동안 뿌린 물값이 더 나왔을 거라 했지만 나 혼자 나름 성공적인 바질 농사라고 생각하며 뿌듯해 했다.

바질은 더 자라 이제 두 뼘 키가 넘어가고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바질을 무료나눔 하며 초보 식집사의 얼렁뚱땅 바질 키우기 일상도 마무리했다.

쑥쑥 자라는 바질을 관찰하고 물을 주고 화분에 옮겨 심으며 새싹부터 꽃대가 올라오기까지, 엄청난 생명력의 바질은 나에게 하루하루 소소한 즐거움과 함께 생동력을 주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사람이 바질을 키우며 활력을 찾았다는 글을 보았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도 바질을 키우며 무료했던 일상 속에서 물을 챙겨주거나 분갈이를 하는 등의 일거리가 생기고 쑥쑥 자라나는 바질을 보며 매일 작은 행복을 느꼈던 것 같다.

바질 덕분에 햇볕도 자주 쬐고 바깥 나들이도 종종하고, 이 모든 순간들이 나의 몸 건강뿐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무료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찾는 모든 분들께 바질 키우기를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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