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골수성백혈병(CML) 지지자 네트워크(CMLAN, CML Advocates Network)’라는 글로벌 비영리단체가 있다. 96개국 131개 암경험자 조직을 회원사로 뒀으며 만성골수성백혈병과 위장관기질종양(GIST) 환자 지원, 교육, 암 관련 정보 제공 등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제 단체다.
독일, 이스라엘, 체코, 영국의 CML 경험자 4명이 2005년 설립했으며, 각 대륙을 대표하는 6명과 공동 창립자 3명으로 구성된 ‘CML 지지자 재단’의 운영위원회가 이끌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혈액암협회, CML경험자 카페 ‘제로클럽’ 등 3개 단체가 가입돼 있다.
매년 유럽에서 국제 네트워킹 회의 ‘CML Horizons(CML 호라이즌스)’도 개최한다. ‘CML 호라이즌스’는 CML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공동창립자 6명이 2002년 처음 개최했으며, 암경험자와 가족, 후원자들이 함께 모여 암 치료 및 관리 노하우, 모범적인 활동 사례, 세계적인 후원 노력 등을 발표하고 교육도 이뤄진다. 올해는 5월 리투아니아의 빌뉴스에서 열렸다.
현재 이 조직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필리핀의 로드 파두아(60) 의장이다. 2012년 CMLAN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대표 운영위원이 된 파두아 씨는 2021년 투표로 3년 임기의 의장이 됐다.
그는 필리핀에서 CML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CML 경험자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2006년 필리핀 사회복지부 산하 비영리 조직 TBM(Touched By Max Philippines)을 설립했다. 현재 회원은 CML, GIST(위장관기질종양) 경험자와 가족 등 2200여명이다.
CMLAN, TBM 활동은 모두 자원봉사다. 그는 이 조직에서 급여를 받지 않는다. 그의 원래 직업은 토목 엔지니어다. 공공기업의 기획, 정보기술 이사를 맡고 있는 그가 최근 회사 업무 차 한국을 방문했다.
파두아 의장은 짧은 출장 기간 중 시간을 내 캔프협동조합 홍유진 이사장 등과 만나 CMLAN 활동, 매년 유럽에서 개최하는 국제 네트워킹 회의 ‘CML Horizons(CML 호라이즌스)’ 등에 대해 소개하고 캔프협동조합과의 협업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CML(만성골수성백혈병) 말기에서 완치된 캔프협동조합 홍유진 이사장은 지난해 ‘CML 호라이즌스’에 참가해 사례 발표로 우수 포스터상을 받았다.
9세 때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 아들 위해 단체 설립
- 어떤 계기로 CMLAN(만성골수성백혈병 지지자 네트워크) 일을 하게 됐나?
“아들이 2006년 아홉 살 때 CML 진단을 받았다. 아들이 다니던 카톨릭계 학교의 학교장은 이 병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CML은 당연히 전염되지 않는데도 학교장은 다른 학생에게 전염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하면서 학교 측의 부당한 대우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들은 ‘왕따’를 당했다. 결국 1년 만에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을 치료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 지원은 부족하고 치료비는 엄청나게 비싸고 CML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2006년 89명을 모아 CML, GIST(위장관기질종양) 경험자를 돕기 위한 재단 TBM을 만들었고, 그 활동을 계속 해오다가 CMLAN에 가입하고, 2012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를 맡았다.”
- 아들은 지금 건강한가?
“아주 건강하다. 요즘 비트코인 투자로 돈을 꽤 벌고 있다.”(웃음)
- CMLAN 의장을 어떻게 맡게 됐나?
“사무국 직원 6명은 급여를 받지만 나를 포함한 운영위원 9명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생계를 위해 내 일을 따로 해야 하기 때문에 1년에 30일 정도 되는 휴가와 업무 외 시간에 이 일을 한다. 필리핀 TBM이 CMLAN에 가입하고 난 뒤 2012년 아시아 태평양 지역 운영위원이 됐는데, 그 일을 맡을 사람이 나서지 않아 계속 하고 있다. CMLAN 의장에는 2021년 투표로 선출됐다.”
평일엔 5시반부터 밤 늦게까지 근무시간 외 환자 상담
- 정부 공공기관 임원으로 일하면서 TBM 대표, CMLAN 의장 일을 하려면 매우 바쁘겠다.
“평일에는 회사 일을 시작하기 전인 오전 5시30분부터 8시까지, 일과 후 오후 5시부터 밤 늦게까지 TBM, CMLAN 일을 한다. 매일 두 세 명 상담을 하고, 주말에는 컨퍼런스나 대면 모임을 많이 한다. 국제회의는 휴가를 얻어 참가한다. 회사 일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시간 관리를 잘 하려고 노력 중이다. 바쁘지만 가족과 개인 일정에도 충실히 하는 편이다.”
-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런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
“의료 전문가는 아니지만 최신 의학 정보를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하고, 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제공해야 한다. 환자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주는 게 우리 일 중의 하나다. 그들의 감정 상태를 잘 살피는 것도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의사의 역할은 존중해줘야 한다.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헌신하려는 마음, 열정이 없으면 이 일을 하기 쉽지 않다.”
- 한국의 암경험자단체나 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은 정말 좋은 나라다. 환자들은 럭키(lucky) 하다. 의료 수준이 매우 높고 정부가 (건강보험예산으로)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많이 덜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같은 나라보다도 치료 환경이 좋은 것 아닌가. 부럽다.”
로두아 의장은 "한국 환자들이 럭키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