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이 능력이다’.

사이토 다카시라는 일본인이 쓴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을 알리는 게 목적은 아니다. 내가 지난해 경험한 사실에 대한 근거를 찾고 싶어서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던 지난 해 설날 전, 나는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간병인 모집 광고를 보았다. 관심이 생겨 문의를 했더니 무경험자도 가능하다고 했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등록을 했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평생 연극만 해오던 내가 지난해 6개월간 병원 간병인으로 일했다. 꽤 소중한 경험이었는데, 내가 인기 간병인이었던 이유는 잡담을 잘 한다는 것이었다./게티이미지뱅크
평생 연극만 해오던 내가 지난해 6개월간 병원 간병인으로 일했다. 꽤 소중한 경험이었는데, 내가 인기 간병인이었던 이유는 잡담을 잘 한다는 것이었다./게티이미지뱅크

간병을 계속하면서 요령이 점점 생겼고, 다른 간병인과 간호사들에게 배우면서 나름 ‘간병의 달인’이 되어 갔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어느 새 나는 한국 최고의 간병인 파견 회사에서 꽤 인기 있는 간병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회사에서 내 간병 스케줄을 다 조정하고 연결시켜 해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가 간병한 분의 가족들이 내가 소속된 회사에 ‘김동수 사용 설명서(후기)’를 올리면서 후한 점수를 준 덕분에 나는 인기 간병인으로 등극했다. 6개월 동안 간병 일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나는 그 사이 왕초보에서 근사(近似)한 간병인으로 성장했다. 근사하다는 말은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에 가깝다’는 의미다.

내가 만난 환우는 회사 사장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직업과 질병 상태를 갖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침대 옆 보호자 의자에 앉아서 상태를 체크하고 집중적으로 돌봐야 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일상 생활을 하는 것처럼 기상과 취침을 하는 환우도 가끔 만났다. 물론 대부분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힘겹게 사투를 벌이는 분들이었다.

평생 병원에 단기간 입원해 본 경험 밖에 없는 내가 6개월간 간병을 해 보니, 의료계 종사자 중 간호사가 참 힘든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삼 그 분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 그 분들이 평소에 환자들로부터 냉정하다는 소리를 듣는지도 알게 됐다. 환자 개개인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심신이 버티기 매우 힘들다는 것도 알았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도 환자를 침대에 눕히고 상담하면서 본인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고 하지 않은가. 내 친구 중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있는데, “너희들 다 또라이라며?"라고 물으면 다들 그렇다고 대답한다.

내가 간병했던 환우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두 분이 있다. 병원 2인실을 함께 쓰던 분들인데, 한 분은 현역 의사이고 또 한 분은 우리나라 최고 권력기관에서 공직자로 근무했던 분이었다.

알고 보니 동문 선배였던 현역 의사는 내게 “너무 부럽다”고 하셨다. 그는 젊은 시절 30년간 개인 병원을 운영했는데, 너무 지루해서 병원 운영을 관두고 종합병원 전문의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 뒤 나이 때문에 지역 보건소에서 근무하다가 희귀 피부병이 생기는 바람에 퇴직을 했다고 들었다. 그 분에게 “백수 건달인 내가 왜  부럽냐”고 물었더니 “당신하고 싶은 거 하면서 인생을 보냈으니 부럽다”며 대화가 통해서 너무 좋다고 하셨다.

같은 병실에 있던 퇴직 관료 환우도 나와 얘기를 하고 싶어 해서 졸지에 난 두 사람의 말동무가 되었다. 퇴직 관료는 먼저 퇴원하면서 내게 본인 소유의 5층 건물에서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월세는 필요 없고 그저 하루에 일정 시간 정해 말동무만 해 달라고 했다. 젊은 부인도 있는데 본인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분을 만났는데, 내가 쉽게 그들의 말동무가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나의 잡담 능력 덕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환자들에겐 치료하는 의사뿐 아니라 대화 상대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으려면 박식(薄識, 넓을 博이 아닌 엷을 薄), 즉 얄팍한 지식이나  능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독자는‘잡담이 능력이다'라는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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