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생 만난 작가중 세계적인 소설가는 딱 두 명인데, 중국의 '허삼관 매혈기'를 쓴 중국작가 위화(余華)와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입니다.
그 중 한 명인 에르노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네요.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17편이나 된다는데, 영화로도 제작된 그녀의 대표작 '단순한 열정'(1991년)을 연극으로 만들고 싶어 1995년인가 내한한 그녀를 프랑스문화원에서 만났지요.협의 후 희곡을 준비했는데 시간만 끌다 아직까지 공연을 못 올렸습니다. 언젠가 꼭 하긴 하겠지만...
그리고 얼마 후 프랑스에서 일시 귀국한 영화배우 윤정희 여사(지금은 치매로 투병중)를 힐튼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배역 섭외까지 했지만 불발되는 바람에 그냥 지금까지 묵혀두고 있는 참입니다.
이젠 에르노 작가가 노벨상까지 탔으니 원작료가 비싸져서 공연화가 더 힘들어 질 듯 하네요. 그래도 언젠가 하긴 할 예정입니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정말 특이합니다. 발표한 모든 작품이 '자신의 이야기'이거나 자신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 관한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이 경험한 것'만 글로 쓴다고 선언한 작가. 일반적으로 아니 에르노는 자전적인 소재를 글로 쓰는 자서전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거나, '개인의 정체성 탐색'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자서전과는 달리, 사건을 대할 때의 상황과 감정의 '철저한 배제'를 통해 모든 사실을 객관적으로 그려냅니다.
어느 번역자의 말마따나 '평평한 글쓰기'를 고수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거리두기'를 통해 한 여성의 이야기가 '모든 여성의 이야기'로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작품 '사건'(자신의 불법 임신 중절을 얘기한)에서 자신의 문학적 목표를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난 그걸 얘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말하자면 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뭔가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2022.10.7 조선일보 참조) 이제 82세의 나이가 된 그 녀를 만나기는 거의 힘들겠지만 새로운 작품은 계속 나오겠지요. 그녀 자신이 작품의 재료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