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쟁의 시기가 끝나고 문명의 시대라고 생각하면서 평화를 구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강대강(强對强), 힘과 힘이 맞서 싸우는 현장이 곳곳에 펼쳐지고 있다. 입으로는 평화와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힘을 앞세워 싸우기 급급하다.
세상을 향해, 태극권을 수련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 말을 하고 싶다. "힘[力]은 권(拳)을 이기지 못하고, 권은 공(功)을 이기지 못한다." 태극권의 격언이다.
힘<권<내공, 참된 태극권의 수련법
힘 자랑처럼 무식한 것도 없다. 힘 빼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머리가 모자라 보이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자칫 패가망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어리석은 일이 힘자랑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금방 자기보다 더 힘 센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힘은 오래 갈 수 없는 자랑거리라는 점이다. 한번 부숴지면 참혹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 쉽다.
힘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 권으로 대표되는 무술의 세계다. 권은 주먹을 뜻하지만 태극권을 비롯한 무술 수련을 통해 갈고 닦는 무술 실력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몸을 갈고 닦아 단순히 신체적 힘을 능가하는 실력과 파괴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 바로 권법이다. 권법으로 대표되는 무술의 모든 기술과 병장기들, 이 모든 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권의 세계이다. 태극권이나, 태극권의 원류인 무당파에서는 다루는 모든 권법과 검, 도, 창, 봉의 세계는 아무리 힘이 센 적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겨낼 수 있는 영역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선인들은 '힘은 권을 이기지 못한다'고 가르쳐왔다.
그런데 권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공(功)이다. 무술영화에서 흔히 듣는 내공이고, 오랫동안 갈고 닦아 자신의 내면에 체화된 공력이다. 깊고 차분한 심법으로 몸을 가득 채워 마음같이 몸이 움직이고, 마음을 먹으면 뜻을 이룰 수 있고,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안에 쌓인 강함이 밖으로 표출될 때 그 어떤 무기보다 강한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이 태극권의 원리이다. 수련을 통해 힘도 기르지만, 권과 같은 예리한 기술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그 어떤 외면의 강함보다 더 강한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무술의 세계다.
힘<참모<덕, 세상 속 경쟁의 원리
중국 역사 속에서 항우와 유방이 겨룬 초한지나 조조와 손권, 유비가 겨룬 삼국지는 이같은 세상의 이치를 잘 보여준다. 힘으로 치면 '역발산 기개세' 즉 산을 뽑을 만한 힘, 세상을 뒤덮을 기운을 갖고 있는 항우가 넉넉한 인품과 여유를 갖고 있는 유방에게 패배한다. 위촉오 삼국지의 대결에서는 조조가 승리하지만, 사람들은 유비의 대덕을 흠모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힘으로는 천하제일인 항우를 이길 수 있게 된 유방의 가장 큰 무기는 소하와 장량이라는 인류사 최고의 참모로 꼽히는 사람들이다. 전략전술과 실제 싸움을 지배한 장량과 보급과 행정을 맡은 소하가 짝을 이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적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유비는 저 유명한 관우와 장비를 거느렸다. 조자룡, 황충 같은 명장에 제갈량이라는 천하기재를 얻었다.
역대 최강의 힘을 누를 수 있는 참모들을 거느린 보스는 어찌 보면 참모들보다 못한 멍청해 보이는 인물이다. 그들은 어떻게 대단한 부하들의 충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바로 큰 덕이다. 믿음이다. 자신보다 큰 부하들의 역량을 담아낸 그릇이다. 천하역사가 그러했고,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나라의 현재 대선 판도가 춘추전국시대 마냥 영웅을 자처하는 자들이 할거를 외치고 있다. 서로 자기가 강하다고 주장한다. 힘이 세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이에 '낭중지추' 같은 지혜를 내비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큰 덕을 보이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힘센 장수도, 날카로운 논리를 갖춘 사람도, 모두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고, 내 힘으로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덕이다. 현대적으로 말해 포용심과 비전이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대권에 다가서는 지름길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