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앤더슨암센터 김의신 박사께 얻은 교훈
지난 주 세계 최고의 암병원으로 꼽히는 미국 MD앤더슨암센터 종신교수 김의신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제 관심사가 암치료여서 수많은 임상 경험을 가진 김박사님의 고견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자 영광이었습니다.
“암도 수술을 빨리 해야 하는 게 있고, 수술하지 않고 안 건드리는 게 최선인 암이 있다”는 의사에게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얘기도 유익했지만, 가장 깊이 와 닿았던 것은 난소암 환자 3명의 스토리였습니다.
김박사님이 MD앤더슨암센터에서 암 치료를 할 때 텍사스 휴스톤의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한국 여성 3명이 난소암 진단을 받았답니다. 나이도 비슷하고 진단 받은 시기도 비슷했다고 합니다. 미국 유학 중인서울대 출신 박사 가족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였기 때문에 생활 환경도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김박사님은 세 분을 MD앤더슨암센터의 한 의사에게 소개해 치료를 받도록 했답니다. 그런데 치료 결과는 모두 달랐습니다. 안타깝게도 한 분은 6개월, 다른 한 분은 2년 만에 세상을 떴고 한 분은 28년 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비슷한 나이의 한국 여성 3명이 똑 같은 암으로 똑 같은 의사에게서 치료를 받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 결과가 나왔는지 박사님도 신기했다고 합니다. 차이는 암에 대한 태도와 투병 자세였습니다.
6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한 분은 본인이 난소암에 걸린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하고 억울해 했다고 합니다. 2년 만에 세상을 뜬 분은 암 치료 과정에서 의심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의사에게 자주 따지고 치료에 대한 신뢰가 없어 보였다고 합니다.
암 진단 후 28년 동안 살다가 최근 세상을 뜬 분은. 뭐가 달랐을까요? 바로 기도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암 진단 이전 2년 동안 남편과 사이가 갈등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난소암 투병을 하면서 바뀌었습니다. 남 탓을 하지 않고 암이 본인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며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투병 초기엔 어린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딱 5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5년 뒤에는 삶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 “아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5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 뒤 28년간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마음에 깊이 와 닿는 세 분의 이야기는 지금도 제 머릿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암 치료에 대한 제 생각과 같기 때문입니다. 암은 고차원의 병이지, 저차원의 병이 아닙니다. 발목 염좌, 요통, 근육통 같은 병은 육체만 잘 치료하면 낫는 저차원의 병이지만, 암은 육체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과 혼의 영역까지 병이 들어 생긴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암환자들에게 “암은 기도해야 낫는 병”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는 4기, 말기 암 환자들은 보통 항암제 치료가 듣지 않아 더 이상 의학적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제 치료를 받고 한 두 달 만에 암 크기가 줄어드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들의 공통점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종교와 관계 없이 제가 처방해드린 약을 먹기 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몇 가지 특징이 더 있었습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 첫 상담을 할 때 웃는 분들이었습니다. 오랜 치료에도 암이 낫지 않는 심각한 상태인데도 친구들과 함께 나들이 나선 것처럼 오셔서 배고프다며 먹을 것을 달라고 하신 분도 있습니다. 상담 내내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분이라 잘 기억합니다.
부처님의 염화미소 같은 표정으로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는 분도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분도 치료 결과가 좋았습니다. 반면 가족 간의 불화가 있는 분, 자주 짜증이나 화를 내는 분은 치료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여성 분은 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남편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암은 절대로 육체적인 접근, 물리적인 접근만으로는 치료가 안 되는 질병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음 치유, 영적 치유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꼭 기도나 명상을 하시라”고 권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기도나 명상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일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병원 치료에 몸을 맡기는 것보다 훨씬 더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기꺼이 기울일 수 있어야 암 치료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우리에게 생긴 병은 우리 스스로 낫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병원이나 의료인은 암을 낫게 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환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암은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죽음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이자 동시에 삶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죽음의 고통에 대한 메시지이면서도 동시에 내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를 치유로 이끄는 것은 겸손과 감사입니다. 암은 영혼이 반응해 주길 원해서 온 것이니, 영혼이 반응해주면 좋겠습니다. 생에 대해 감사하는 것, 생명을 겸손과 기쁨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암 치료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암은 기도해야 낫는 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