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중이거나 치료가 끝난 암환자가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걷기운동! 만보걷기는 못하더라도 짧은 산책을 나가는 것은 몸 건강뿐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좋다.

하지만 게으른 나에게는 이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2020년 난소암-자궁내막암으로 개복 수술을 받은 후 가스가 빨리 나오도록 수술 다음날부터 조금씩 아픈 배를 붙잡고 병동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겨우 5분 정도였지만 한두 바퀴 복도를 돌고 오면 회복이 빨라지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걷기여! 나에게 마법같은 회복력을 주렴!

표준 항암을 시작하면서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는 동네 산책을 다녔다. 아직 코로나가 심했던 시절이기도 했고 체력도 좋지 않아서 아주 짧게 집 근처 골목 구경을 하곤 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동네여서 골목골목 여러 가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오, 집 근처에 네팔 음식점이 있었네, 다음에 꼭 와봐야지. 여기에 꽃집이 있었구나. 사진관도 있고 공방도 있고 예쁜 카페도 있네. 나중에 모두 가봐야지!

항암치료 중이라 두건에 모자에 마스크까지 꽁꽁 싸매고 길을 나섰지만, 햇볕도 쬐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푸른 나무도 보았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 날엔 귀여운 강아지들도 만났다. 강아지를 키웠다면 매일 더 열심히 산책을 나갔으려나? 명분이 필요한 게으름뱅이라 괜히 반려견과 산책하는 견주들이 부러웠다.

치료 중이거나 치료가 끝난 암환자가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걷기운동! 만보걷기는 못하더라도 짧은 산책을 나가는 것은 몸 건강뿐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좋다./게티이미지뱅크
치료 중이거나 치료가 끝난 암환자가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걷기운동! 만보걷기는 못하더라도 짧은 산책을 나가는 것은 몸 건강뿐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좋다./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얼마 안가 항암치료 회수가 많아지면서 체력은 점점 안 좋아졌다. 손가락이 뻣뻣해지고 다리도 조금씩 저려와 점점 집에만 있게 되었다. 엄마는 전화를 걸어 “햇볕이라도 쬐게 창문가에라도 앉아있으라”고 했다. 사실 그럴 기운도 없었다. 결국 항암 3차부터는 나의 짧은 골목 탐방도 멈추었다.

드디어 마지막 항암을 끝내고 기쁜 마음으로 걸으러 나갔다. 여전히 회복이 필요한 몸이지만 치료가 끝났다는 기쁨과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한걸음 한걸음이 즐거움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집에서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첫 산책부터 발을 접질렸다. 골절로 한 달간 침대 신세가 되어버렸다. 항암으로 뼈가 약해진 탓에 작은 충격에도 바로 뼈에 금이 갔던 것이다.

목발 없이는 거동이 어려우니 그저 침대에서 뒹굴뒹굴 할 수밖에 없었다. 아~. 항암보다 더 우울했다. 시간이 흘러 울적했던 침대 생활을 벗어나 드디어 산책하러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만의 걷기 때는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걸음걸이도 이상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걸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하며 조금씩 산책을 시작했다. 집 근처에는 작은 트랙이 있는 공원이 있다. 뱅글뱅글 트랙을 돌면서 사람 구경도 하고 걸음 수도 채워갔다. 하지만 너무 심심했다. 다른 사람만큼 빨리 걸을 수도 없고 함께 걸을 친구도 없었다. 이렇게 혼자 걸을 때 나는 라디오, 팟캐스트, 오디오북을 들었다.

걷기가 몸에 좋은 건 상식이다. 미국 연구에 따르면 걷기 강도보다는 횟수가 사망 위험을 낮추는 데 더 큰 영향을 준다./게티이미지 뱅크
걷기가 몸에 좋은 건 상식이다. 미국 연구에 따르면 걷기 강도보다는 횟수가 사망 위험을 낮추는 데 더 큰 영향을 준다./게티이미지 뱅크

재미있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혼자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오디오북의 AI 목소리와 함께 걸으며 교양을(?) 쌓기도 했다. 그래도 공원의 트랙을 반복해서 돌아 만보를 채우는 것은 너무 지루했다. 그래서 집 앞 골목 탐방을 넘어서 멀리 동네 탐방을 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옆 동네의 대형 마트. 평소 차로만 가봤던 곳을 걸어가기로 했다. 차로만 지나다녔던 길이 낯설게 느껴졌다. 여기에 우체국이 있었네. 이 곳에도 큰 공원이 있구나. 골목을 벗어나 동네 탐방의 재미를 느끼며 도착한 마트에서는 신제품들도 구경하고 시식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트 안에서 돌아다닌 것도 꽤 많은 걸음 수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만보가 넘었다. 야호! 만보를 걸었다! 만보걷기 어렵지 않구만! 하지만 마트 걷기운동의 단점도 있다.

음식 구경을 하면 배가 고프다. 신제품이나 할인 제품을 보면 사고 싶다. 이것저것 사다 보면 무거워서 집으로 걸어올 수가 없다. 하지만 즐거운 마트 구경은 시간도 잘 가서 지금도 종종 걸어서 다녀오곤 한다.

몇 번의 계절을 지나오면서 만난 새로운 걷기운동의 친구는 꽃이다. “꽃이 친구라고요?”라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요즘에는 바쁘게 지낼 때는 지나쳤던 동네의 예쁜 꽃들을 곱씹어 보며 걷는다.

작년에 피었던 노란 꽃이 올봄에 또 예쁘게 피는 것을 보면 반갑다. 또 같은 화단이어도 계절에 따라 피는 꽃이 다르다. 알록달록 피고지는 꽃을 보면 마음도 따뜻해진다. 자연과 함께하는 산책의 묘미, 울긋불긋한 단풍과 함께 모두 즐거운 걷기운동이 되시길!

▶공실이는 2020년 가을, 난소암 3기-자궁내막암 1기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은 뒤 정기검진을 하며 산정특례 5년 종료(완치 판정)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이버블로그(https://m.blog.naver.com/iam_gongsil2)와 인스타그램(@iam_gongsil2)에서 공실이의 치유 일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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