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조기 진단을 위해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 대장내시경이다. 그런데 대장내시경 대신 집에서 간편하게 시행할 수 있는 대변 면역화학검사(FIT)도 대장암을 찾아내는 데 효과적이라는 대규모 임상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대변 면역화학검사(FIT)는 변을 면봉에 묻혀 눈에 보이지 않는 피가 대변에 섞여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다. 암이나 선종(암 전 단계 병변)에서 흔히 발생하는 장 점막 출혈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다. 화장실에서 대변을 본 뒤, 제공된 면봉으로 소량의 대변을 채취해 전용 용기에 넣고 검진기관에 제출하면 된다.
이 연구는 스페인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행된 ‘COLONPREV(콜론프레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50세에서 69세 사이의 건강한 성인 5만7404명을 대상으로 대장내시경과 FIT를 무작위 배정 방식으로 비교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클리닉병원과 카나리아제도 대학병원 주관 아래, 8개 지역 15개 병원이 공동으로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대장암 검진 전략의 효과를 정량적으로 비교한 세계 최대 규모의 임상시험 중 하나다.
대장암·선종·염증성 장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 유전성 대장암 병력(1촌 가족 2명 이상이 대장암 환자이거나 60세 이전 대장암 진단 가족이 1명 이상)이 있는 사람, 과거 대장 절제술 병력이 있는 사람은 연구 대상에서 제외됐다. 연구팀은 5만7404명을 ▷대장내시경 검사를 한 번 받은 그룹 ▷2년마다 FIT를 시행하는 그룹으로 나눈 뒤 10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대장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내시경 그룹에서 55명(0.22%), FIT 그룹에서 60명(0.24%)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이 사전에 설정한 비열등성 기준인 0.16%를 훨씬 밑도는 수준으로, FIT가 내시경 검사에 비해 효과가 뒤떨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특히 FIT 그룹은 검사 참여율이 더 높았다. 내시경 검진 참여율이 31.8%였던 반면, FIT 참여율은 39.9%에 달해, 실제 의료 현장에서의 적용 가능성도 높게 평가됐다.
대장내시경은 고위험군이나 양성 판정을 받은 경우에 반드시 필요한 검사지만, 평소 복부 수술 경험이 있거나 장유착·장협착 등으로 내시경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FIT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검사 비용이 저렴하고, 반복 시행이 쉬우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이다.
대변 면역화학검사는 한국에서도 쉽게 할 수 있다.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매 가능하며, 오프라인 방문이 어려운 경우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다만 FIT는 어디까지나 선별검사일 뿐이며, 양성 반응이 나올 경우 반드시 대장내시경 등 정밀 검사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
2022년 기준으로 국내 대장암은 전체 암 발생의 11.8%를 차지했으며, 특히 20~40대 젊은 환자에서 발병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12.9명으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며, 연평균 증가율도 4.2%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서구화된 식습관과 가공육 섭취 증가, 비만 및 식이섬유 섭취 감소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