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병이다. 의료기술 발달 등으로 생존율이 70%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래도 암은 두렵다.
암 예방이 중요한데,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 중에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꽤 있다. 각종 연구를 통해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의외의 원인 5가지를 정리했다.
◇뜨거운 음료
60도 이상의 뜨거운 커피나 차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에 '섭씨 65도 이상의 뜨거운 음료(커피·차 종류 관계 없이)'를 발암물질 2A군으로 지정했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표한 '온도별 음료의 식도암 위험 연구'에 따른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65도 이상의 아주 뜨거운 차를 마신 그룹'에서 식도암 위험이 8배나 높았다. 60~64도의 뜨거운 차를 마신 그룹은 식도암 위험이 2배로 증가했다. 2018년 중국의 베이징 대학 의학부가 발표한 연구에서도 뜨거운 차를 즐겨 마시면서 흡연과 음주를 함께 하면, 식도암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뜨거운 음료가 식도암의 원인이 되는걸까? 전문가들은 뜨거운 음료를 지속적으로 마시면 식도 점막 내 세포가 뜨거운 음료에 의해 염증이 생겼다가, 나아졌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 세포로 바뀌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뜨거운 음료와 흡연·알코올을 함께 즐기면 독소로부터 식도를 방어하는 식도 내막이 뜨거운 차의 열에 의해 손상되기 쉽다는 것. 다만 한두번 뜨거운 음료를 마신다고 암이 되는 건 아니다. 연구 등을 종합해보면 지속적으로 수년 간 뜨거운 음료를 먹을 때 식도가 손상되면서 암이 유발될 수 있다.
◇늦은 결혼과 출산
유방암과 난소암 같은 여성암을 유발하는 위험 요인으로 늦은 결혼(출산)이 지목되고 있다. 위험 요인이 있다고 100% 암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암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유방암은 유전적인 요인 등을 제외하면 늦은 출산에 따른 모유수유 무경험 등이 위험 요인이다. 연구 등에 따르면, 유방암은 출산 경험이 없으면 1.4배, 모유수유 경험이 없으면 1.8배로 유방암 위험률이 높다. 이밖에 가족력이 있으면 1.8배, 초경이 빠르거나 폐경이 늦으면 1.5배로 높다.
출산을 하지 않으면 매달 배란으로 인한 세포의 생성과 소멸 과정이 반복되면서 유전자 돌연변이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암 세포가 생기기 쉬워진다는 것. 또한 출산 후 수유를 하는 것도 배란 횟수를 줄여 유방암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암연구소(AICR)에 따르면 여성이 모유 수유를 하면 5개월마다 유방암 위험이 2% 감소한다. 초기 증상이 전혀 없고, 생존율이 낮은 난소암은 병원을 찾았을 때 이미 3기 이상인 경우가 70%에 육박하는 암이다. 난소암이 발생하는 위험 요인 중 늦은 결혼(출산)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임신은 난소암의 발생을 방지하는 경향이 있어 난임 환자나 출산 경험이 없는 수녀와 같은 여성에서 발생 빈도가 높다. 반대로 다산 여성에서는 그 빈도가 낮다. 출산 횟수가 한번이면 난소암 위험은 전혀 출산하지 않는 여성에 비해 약 10%, 출산횟수가 3번이면 50%나 줄어든다고 알려진다.
◇비만
비만도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이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에 의해 유발될 수 있는 암으로 ▲대장·직장암 ▲식도암 ▲신장암 ▲폐경 이후 유방암 ▲자궁내막암 ▲위암 ▲간암 ▲담낭암 ▲췌장암 ▲난소암 ▲갑상선암 ▲수막종 및 다발성 골수종 13종을 발표했다. 비만이 암 유발 위험을 높이는 이유가 명백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연구를 통해 지방 세포가 체네 염증 반응을 유발하고, 인슐린 및 렙틴 호르몬 증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몸속 지방세포는 대사되는 과정에서 각종 부산물을 남긴다. 이 부산물이 체내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염증이 체내 세포를 손상시켜 세포가 다시 회복되는 과정에서 암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
비만은 또 체내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 양이 증가시킨다. 그런데 이 인슐린이 분비되면 세포 분열이 빠르게 이뤄진다. 이로 인해 세포의 무분별한 증식이 일어나고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돌연변이 세포인 암세포가 생겨날 확률이 높아진다. 음식 섭취량을 조절, 에너지 소모를 촉진하는 렙틴호르몬 분비량이 늘어나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렙틴 호르몬은 몸속 신진대사를 빠르게 한다. 비만일 때는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도 이런 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몸의 신진대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지방세포의 염증 반응과 마찬가지로, 신체 각 장기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면서 암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뇨병
만성질환이자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당뇨병도 암 유발 원인이다. 당뇨병 환자에서 암 발생 위험도가 높은 이유는 인슐린 혈증에 의한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 신호증가, 고혈당으로 악화된 산성환경과 풍부한 영양공급, 만성 염증 반응에 의한 세포 내 세포증식과 혈관신생 신호 증가, 지방세포 유래 여성호르몬 증가 등이다. 연구 등을 통해 몸속 혈당 수치가 높을 때 DNA가 더 많이 손상될 뿐 아니라, DNA에 발암물질이나 돌연변이 물질이 부착되기 쉬워진다는 것.
또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당뇨병 환자들은 몸속 인슐린이 과도하게 만들어지면서 혈중 인슐린 농도가 높아진다. 그 결과 IGF-1(인슐린유사성장인자)의 생물학적 활성을 높이면서 암세포의 빠른 증식과 전이가 촉진된다. 지난 2017년 서울대 의대에서는 당뇨병이 아시아인의 암 발생률과 사망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제2형 당뇨병이 있으면 6개 암(자궁내막암, 간암, 갑상선암, 유방암, 췌장암, 대장암)의 발생률과 사망률이 증가했다.
◇심야근무(야간근로)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7년 야간근로와 교대근무를 '인간의 생체리듬을 어지럽힐 수 있는 발암물질'(2A군)로 규정했다. 장시간 심야근무가 뇌의 생체시계를 교란시켜 암 발병을 높인다는 것.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이 간호사 약 8만 명을 대상으로 10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15~29년 동안 야간 교대근무를 한 간호사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유방암 발병 위험이 1.08배, 30년 이상 지속한 간호사는 1.36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15년 이상 교대근무를 한 간호사의 경우 폐암 발생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25% 높게 나타났다. 30년 이상 월 3회 이상 야간 교대근무를 한 여성은 주간 근무를 한 여성에 비해 유방암 발병 위험이 1.36배, 자궁내막암 발병 위험이 1.4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체시계 리듬이 깨지면 왜 암이 유발될까. 그 상관관계 중 하나가 일주기생체리듬 조절하는 유전자의 변형이다. 모든 생물체는 뇌의 생체시계가 있다. 생체시계에 맞춰 몸속 세포 하나 하나가 활동을 시작하고 마친다. 이 과정에서 신경과 호르몬이 조화를 이룬다. 이를 일주기 생체리듬이라고 한다.
일주기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유전자 ‘HPer2’와 'p53'는 암 발병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 유전자에는 종양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 유전자가 변형된 사람은 80% 이상 확률로 암이 생긴다. 한국과학기술원 수리과학과 김재경 교수팀은 미국 버지니아공대 연구팀과 함께 뇌에서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HPer2 유전자와 p53 농도가 서로 관련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밤낮이 바뀌는 등 생체리듬에 문제가 생겨 HPer2와 p53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암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IARC 발암물질 분류 기준이란
IARC는 1969년부터 화학물질을 포함한 각종 환경 요소의 인체 암 유발 여부와 정도를 평가해오고 있다. 현재까지 평가를 마친 989종을 위험도에 따라 5개 군으로 분류했다.
1군 : 인체에 발암성이 있음(cacinogenic to humans). 인체 발암성과 관련한 충분한 근거자료가있는 경우. 다이옥신, 벤조피렌, 석면, 담배, 아플라톡신, 가공육 등 118 종
2A군 : 인체 발암성 추정 물질(probably carcinogenic to humans). 인체 자료는 제한적이지만 동물실험 근거 자료는 충분한 경우. 에틸카바메이트(우레탄), 질소 머스타드(화학무기이자 일부 암 치료제) 등 79종
2B군 : 인체 발암 가능 물질(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 인체 자료가 제한적이고 동물실험자료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 미토마이신C, 파라치온 등 290종
3군 : 인체 발암물질로 미분류 물질(not classifiable as to carcinogenic to humans) 인체와 동물실험 자료 모두 불충분한 경우. 프레드니손, 클로르퀸, 에폴레이트(해충불임제) 등 501종
▲4군 : 인체 비발암성 추정 물질 : 인체에 발암 가능성이 없고, 동물실험도 부족한 경우(probably not carcinogenic to huma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