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수용체 양성(HR+)·사람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2음성(HER2-) 유방암은 치료가 잘 안 듣고 재발, 전이가 잘 되는 공격적인 암이다. 이런 암 치료를 방해하는 '호르몬 치료에 대한 저항성(내성)'을 해결할 실마리를 국내 연구진이 찾았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연희 교수·삼성유전체연구소 박경희 연구원·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석아·이경훈 교수·화이자 정옌 칸(Zhengyan Kan) 박사 등 공동 연구팀은 재발·전이성 유방암 치료에 쓰이는 표적항암제 팔보시클립(제품명 입랜스)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들의 특징을 유전체 분석으로 밝혀냈다고 16일 밝혔다.
팔보시클립은 암의 생장에 관여하는 효소인 CDK4, CDK6를 억제하는 약물이다. 전이·재발성 유방암 환자의 생존율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는 표적항암제로 평가받지만, 환자 4명 중 1명은 약물에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반응이 있더라도 내성 탓에 병이 진행되는 한계도 뚜렷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2017~2020년 유방암 전이 또는 재발 후 팔보시클립, 풀베스트란트,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투여받은 환자 89명의 종양 조직에 대해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을 시행해 내성의 주요 원인을 밝혀냈다.
연구팀에 따르면 환자들의 평균 연령은 45세로 무진행생존(PFS)의 평균값은 15개월이었다. 환자의 72%에서 병의 진행이 관찰됐다. 전이, 재발된 HR+·HER2- 유방암 환자에서 내성을 보이는 경우 치료 전과 다른 분자적 특징들이 새롭게 발견됐다.
연구팀은 세포 내에서 손상된 DNA의 수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동 재조합 결핍(HRD)'과 유전체의 불안정성 정도를 수치화해 결과를 얻는 과정에서 에스트로겐 반응으로 남은 흔적인 '유전체 반흔(Genomic Scar)'을 환자 경과를 가늠하는 바이오마커로 꼽았다.
종양증식 억제와 관련 있는 TP53 유전자의 변이가 고(高) HRD와 합쳐질 때 항암제 내성을 촉진해 예후를 더욱 나쁘게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환자의 경우 변이가 없는 환자들과 비교했을 때 병의 진행 위험이 16.3배나 되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만큼 무진행 생존기간이 짧았다는 의미다.
유전자 돌연변이에 관여하는 효소인 APOBEC을 매개로 한 RB1, ESR1, PTEN, KMT2C의 유전자 변형이 두드러진 가운데, 이들 유전자가 병의 진행에도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연구팀은 보고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유전성 뿐 아니라 치료 전후의 종양 돌연변이도 유방암의 내성에 크게 작용한다는 게 밝혀진 첫 번째 연구 결과다.
이번 연구 결과는 ‘게놈 메디신(Genome Medicine)’ 최근호에 실렸다. 2020년 샌안토니오유방암심포지엄(San Antonio Breast Cancer Symposium), 2021년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포스터로 소개돼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