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에 누리는 장수(長壽)를 축복이 아닌 악몽으로 만드는 요인이 여럿 있다. 그 중 하나가 치매라는 질병이다. 뇌 기능 퇴화로 기억력, 판단력 저하, 언어 장애, 감정 조절 기능 상실,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인해 삶의 질이 극도로 떨어지는 질병,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도 함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질병이 치매다.
보건복지부 통계(2020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84만 명으로, 10명 중 1명이 치매로 고통받고 있다. 치매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경도인지장애 환자 중 60세 이상이 241만명이어서 치매 환자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의학의 비약적인 발전 속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엄청난 비용을 들어 오랜 시간 치매 치료제 개발에 힘을 쏟고 있지만 치매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질병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치매 치료와 예방에 힘을 쏟는 전문가가 많은데, 강석만 난치의과학임상연구회 회장(한의학 박사, 명민한의원 대표원장)도 그 중 한 명이다. 강석만 회장은 당뇨, 통증 등을 한의학적 원리로 치료했으며, 최근에는 치매와 파킨슨병 등 뇌질환 치료,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임상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나 치매 너 파킨슨 우리 포기할까’, ‘통증 이렇게 다스린다’, ‘당뇨병 이렇게 다스린다’ 등을 썼으며, 4월11일 ‘치매, 제대로 알면 편해집니다’를 주제로 ‘강석만 원장의 치매 예방 특강’(오후 7시, 토즈 강남컨퍼런스)을 연다.
- 수많은 질환 중에서도 난치 질환으로 꼽히는 치매와 파킨슨병에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다양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노인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치매와 파킨슨병 같은 뇌질환은 증상이 나타난 뒤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큰 부담을 줍니다. 치매는 과거를 잃어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도 없애는 질환으로, 웰니스와 웰다잉이 중요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질환입니다.
그런 문제 의식을 갖고 저는 치매, 파킨슨병 예방과 조기 발견, 그리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에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한의학적 치료 원리를 적용하여 환자들이 질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비전이자 목표입니다. 환자와 가족들이 덜 고통받을 방법이 있고, 노력만 한다면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 치매 치료에 대한 한의학적 접근 방식은 의학(현대의학)과 어떻게 다른가요?
“의학은 특정 요인을 명확하게 조절하여 치료 효과를 보지만,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 관리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한의학은 몸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여 다양한 요인들을 동시에 고려하는 통합적인 치료 방식을 취합니다. 치매, 파킨슨병과 같은 뇌질환은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한의학은 치매 치료에 있어서 개별 원인 해결 뿐 아니라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개선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에도 초점을 맞춥니다. 이를 위해 체질에 맞는 한약 처방, 건강에 좋도록 식습관 개선 권고 그리고 정신적인 안정을 도모하는 명상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치매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회복과 증상 완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 치매는 조기에 발견해 빨리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조기 발견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초기 증상에는 어떤 게 있나요?
“대표적인 치매 초기 증상으로 기억력 감퇴, 건망증, 잦은 불안감과 우울증, 갑자기 잦아진 화와 공격적인 성향, 수면장애, 망상 등이 꼽힙니다. 손상된 뇌세포는 재생이 안됩니다. 병이 진행되고 나서 치료를 시작하면 효과는 반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증세가 분명해지기 전에 조기발견하는 게 치료의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치매가 생기는 원리,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이론과 관점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론들은 연극에 비유하자면 몇 개의 중간 장면을 보여줄 뿐이지 주제와 전체 줄거리를 모두 전해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과 몸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서 몇 개의 차원이나 관점만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치매 치료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며, 그 원리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치매는 한의학적으로 신허(腎虛)와 관련이 있습니다. 유전이나 노화와 관련된 요인으로, 신(腎)과 관련된 것으로 한의학에서는 인식해 왔습니다. 치료는 자음, 익신, 보신, 양간에 중점을 둡니다. 이는 항산화, 항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우리의 생각과 관련된 정신작용은 정, 기, 신의 협동으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정신작용은 선천적인(유전적인) 측면과 우리가 살면서 섭취하는 영양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물질을 기반으로 한 신경세포의 기능을 통해 발휘한다고 설명합니다.
또 뇌와 장이 미주신경을 통해 연결되어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에 소화기계와 정신질환이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장내의 대사증후군 개선이 장내 미생물 조절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논문들도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처방을 구성할 때 장내 염증을 제거하고, 유해균을 억제하며,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처방도 많이 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 최근의 치매 연구 동향은 어떤가요? 앞으로 한의학이 치매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시나요?
“지금까지 바이오젠, 로슈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수십년간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치매를 연구해왔는데, 치매의 원인 인자로 알려진 아밀로이드라는 독소를 약물로 제거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독소 단백질 제거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임상에서 효능을 나타내는 최소한의 농도가 약물 안전성이 보장되는 농도의 기준을 넘어 버리는 문제점도 있고, 결정적으로 이미 뇌 조직의 신경들이 복잡한 상태로 망가져 있기 때문에 독소를 제거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아리셉트라는 약물로 치료합니다. 아리셉트는 치매가 인지 능력이 떨어뜨린다는 증상에 착안, 신경세포 간 신호 전달의 문제를 해결해주면 치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아리셉트의 기억 개선 효과는 4~12개월 밖에 가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의학 치료 약물의 장점은 여러 독소 단백질, 염증, 신경세포 찌꺼기 등으로 발생한 치매에 대해 전방위적이면서 모든 환경을 복합적으로 다루는데 있습니다.
유의미한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려면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어느 한가지 원인에 집중하여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줄기세포가 차세대 치매 치료법으로 많이 거론되는데요, 줄기세포 치료가 제시되고 주목받는 이유는 강력한 재생 능력 때문입니다.”
- 치료 현장에서 만나는 치매 환자와 가족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그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사실 치매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 등 보호자, 간병인도 함께 치료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질병입니다. 환자의 우울, 불안, 과민, 공격성, 수면 장애 등은 환자의 삶의 질을 낮추기도 하지만 환자의 가족들도 고통스럽게 하여 그들의 삶의 질도 급격히 떨어뜨리지요.
그로 인해 가족이 분리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치료비 부담의 증가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미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게 자신의 건강을 지켜 치매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제일 꺼리는 자식에 대한 부담도 줄일 수 있습니다.”
- 현재의 치매 환자 케어(돌봄) 시스템과 개선 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현대의학의 발전 덕분에 인류는 각종 급성 질환으로 병사하지 않고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수명은 여전히 늘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치매도 발병 전에 끊임없이 뇌에 신선하고 긍정적인 자극을 줘 이미 자리한 뇌 안의 정보와 연결을 통해 뇌의 퇴행을 늦추기 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현재 치매 환자는 초기가 아니라면 대부분 요양원에 들어갑니다. 요양원 시설의 가장 큰 문제는 노년층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과의 세대적 교류가 거의 박탈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 사이에서 교류하면서 움트는 여러 감정을 그들이 가장 그리워 할텐데 말입니다. 가장 간절하게 갈구하는 참여의 기회, 사람들과 섞여 느끼는 온기, 대화, 유대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심신 건강에 매우 해롭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상하신 어른들의 미래는 요양원에 보내졌다가 그곳에서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다 제 명보다 일찍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대부분 끝납니다.
특히 요양원에서 병세가 악화될 시점에는 요식적인 의료행위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전문가는 영양학자, 눈을 맞추며 최선을 다하는 사랑하는 가족, 따스한 마음을 가진 간병인과 사회복지사, 늘 신체접촉을 해가며 치료하는 물리치료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끝으로 치매를 이겨내고자 노력하는 많은 가족들에게 응원의 메시지 한 마디 해주세요.
“인간은 해마가 손상되어 기억을 상실하면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다른 인격체가 됩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 공유한 기억들… 이런 것들이 상실이 되면 모든 관계가 자연스레 끊어집니다. 그게 없으면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거죠.
나도 나를 나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고, 남도 나를 나로 인지해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삶의 여정에서 굽이굽이 숨겨져 있을 인생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환자들 보면 숙연해집니다.
치매는 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멈추지 않는 의지와 노력, 좋은 의료진과의 만남,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 의료행위 외에 여러 가지 전방위적인 접근이 필요한 병입니다. 치매 극복의 희열로 인생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보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