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살 때부터 배우를 꿈꿨지만 바로 그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여러 다양한 경로를 거쳐 결혼 직전 연극을 다시 공부하고 배우로 활동하게 되었죠.

출산과 육아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2013년에 다시 꿈에 그리던 무대로 돌아가 연극, 뮤지컬, 영화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나름 풍성한 예술 인생을 향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플레이 버튼이 언제까지나 눌려 있을 줄 알았지요.

유방암 투병 중 항암으로 체중이 줄고 부종이 심해 너무 우울했는데, 합창단 활동을 하고 공연을 하면서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사진=이하나씨 제공
유방암 투병 중 항암으로 체중이 줄고 부종이 심해 너무 우울했는데, 합창단 활동을 하고 공연을 하면서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사진=이하나씨 제공

그런데, 2019년 2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인생에 ‘스톱’ 사인이 커졌어요. 유방암 진단을 받은 거죠. 수술과 항암, 방사선치료 표적치료까지… 힘든 시간들이 이어졌지만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다시 무대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어요.

참 우습지 않아요? 몸은 아파 죽겠는데 무대와 공연이라니요!! 하지만 그 때 저는 절박했어요. 영원히 배우이고 싶었거든요.

연극무대에 선 나.
연극 '고령 수감자' 무대에 선 나.

항암으로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 위에 비니를 쓰고 다니면서 마치 극중 역할을 하는 배우처럼 스스로를 위로했어요.
아픈 몸으로 한국무용을 연습하고 병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몸을 움직였어요.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이 있었죠. 배우이고 싶어 몸부림쳤지만 그 당시는 항암 부작용, 부종 등으로 체중이 10kg나  늘고 등딱지에는 암환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 같아 한없이 위축되고 우울했어요.
시간이 흘러 움츠렸던 나는 조금씩 터널 밖으로 빠져나오게 되었어요. 암경험자들이 모인 룰루랄라 합창단 활동과 나우퍼포먼스 그룹의 밴드보컬, 건강기능식품을 유통하는 네트워크사업을 하면서 다시금 꿈을 꾸고 나아가게 되었어요.

항암치료 중 머리를 깎고 연습 중이던 나.
항암치료 중 머리를 깎고 연습 중이던 나.

작년에 만성골수성백혈병 말기를 극복하고 ‘웰컴 투 항암월드’라는 자전 소설을 쓴 홍유진 작가를 북토크에서 만났을 때 "암 진단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고 "당연히 돌아가고 싶다"고 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암에 걸려 힘들었던 시간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렇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구나, 아니 오히려 감사할 일들이 더 많았네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지금 다시 그 질문에 답을 한다면 "돌아가지 않아도 좋아요!"입니다.
예전에 연극에서 역할을 통해 누군가를 위로했던 것을 넘어서 암이라는 과정을 겪고나서 달라진 나는 조금 더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요, 삶의 열매를 나누는 선한 부자, 예술인으로 여전히 길을 걸어갈 거에요. 
터널을 빠져나오며 알게 된 것은 인생에서 영원한 멈춤 버튼은 없다는 거예요. 잠시 쉬어가는 '잠시멈춤', '일시 정지'만 있을 뿐이죠. 어떤 문제로 잠시 멈춰 있더라도 곧 다시 인생은 시작된다! 이제 숨을 고르고 한 호흡 크게 들이 마시고, 오늘도 저는 한 걸음 걸어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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