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會者定離).
누구나 한 번은 가는 게 인생이요, 누구나 한 번은 이별하는 게 인생인 것 같다. 기르던 꽃도, 키우던 반려동물도,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도… 평소에 이별 연습을 좀 하는 게 좋다는 말이 나이 들면서 차츰 이해가 된다. 이제 칠순에 접어 들었고 알고 지내는 누이, 형님들이 한 분 두 분 떠나는 걸 보니 병 없이 건강을 누리다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나 오래 살지 보다 어떻게 살지, 어떻게 갈지가 중요하다. 9988234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좀 아프다 간다’는 뜻인데, ‘99세까지 20~30대처럼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고생하다가 간다’는 해석도 있다. 웰리빙, 웰빙, 웰에이징 하다가 웰다잉 하는 게 내 희망사항이다.
선친의 DNA를 많이 물려받아서 그런지 내게는 비현실적인 면이 참 많은 편이다. “비가 내려도 뛰지 말라”시던, 욕심 안 부리고 느긋한 성격도 선친을 닮았다.
집도 땅도 저 세상으로 갈 때 거추장스러우니 좀 빌려서 살다가 가자는 생각이다. 돈도 굶지 않고 하루하루 지내는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무겁거나 부담스러워 가져가지 못할 건 포기하고, 그저 가볍게 하늘소풍 가는 걸 오래 전부터 지향하면서 살아왔다.
15년 전 좋은 집 주인을 만나 참 편히 살아왔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아주 편한 곳이었다. 처음에 주인은 내게 “가실 때까지 편히 사시라”고 했다. 근데 요즘 들어 자주 살고 있는 집을 사라고 자주 권유한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난 갈 때 귀찮은 건 딱 질색입니다. 가격이 왕창 오른 집을 사려고 왕창 대출받고, 원금과 이자를 갚으며 여생을 보내라고요?”
어차피 5~6년쯤 지나면 내가 하는 암 치료 관련 연구 활동, 상담은 적극적으로 못 할테니, 그 때가 되면 서울을 떠나 한적한 흙 길 밟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몇 번 그랬더니 주인도 이젠 포기한 것 같다.
땅은 여인숙과 같아서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인데 왜 그렇게 집과 땅에 목을 매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 친구의 형님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다고 좋아 난리라는 말을 들었다. 형님 연세를 물어보니 92세인가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몇 년 들어가 사실건데?”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
난 의학의 외길을 걸어온 지라 부동산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바라는 게 있다면 청년들이 20년간 열심히 일하면 작은 집 하나 장만할 수 있고, 집이나 땅 투기로 돈을 절대 벌 수 없는 나라다.
내게 의식주, 부와 명예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난치암 환우를 돕기 위한 연구가 결실을 보고 내 꿈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걸 보고 가는 것이다. 앞으로 연구 기간은 고작 10년 이내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기간은 5년 정도 아닐까 싶다. 여든이 넘으면 숨은 붙어있을지 모르나 활동성은 거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학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한 난치암 환우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찾아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23년전 열아홉 살 아들을 암으로 먼저 보낸 뒤 걸어왔던 외길이다. 이 길은 외롭기에 친구가 필요하다. 음악이라는 친구, 하늘 친구(God), 손자 친구, 당구 친구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바꿀 수는 없다. 내 삶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My Way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