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인체의 유전자와 신진대사 과정을 통해 '술이 암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결론에 이른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 중국 베이징대학교, 중국과학원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에 따르면, 술은 종류에 상관없이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술은 구강암을 비롯해 인후암, 후두암, 식도암, 대장암, 간암,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는 것.
연구팀은 ‘중국 카두리 바이오뱅크 연구(China Kadoorie Biobank study)’에 등록된 성인 15만여 명의 DNA 샘플을 사용해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평균 11년간의 추적 연구 기간 동안 설문과 후속 방문을 통해 대상자들의 음주 습관과 건강 보험 기록 등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적 학술지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캔서(International Journal of Cancer)’에 최근 실렸다.
연구팀은 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주민의 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2(ALDH2)와 알코올 탈수소효소1B(ADH1B)를 알아보기 위해 낮은 알코올 섭취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저알코올 내성 유전적 변이체와 대립 유전자의 빈도를 측정했다. 효소는 특정 화학반응의 비율을 가속화하는 생체 촉매 역할을 한다. 대립 유전자는 동일한 유전자의 돌연변이 형태로서, 알코올 해독과 관련된 효소의 기능을 방해해 독성 화합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혈액에 축적되게 만든다.
알코올은 인체의 DNA를 손상시키고, 이를 복구하지 못하게 하는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된다. DNA가 손상될 때 세포가 통제에서 벗어나 증식하면 암 종양이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첫번째 돌연변이가 ALDH2를 위한 유전자에 있는 기능 상실 돌연변이고, 두번째는 ADH1B의 활동을 가속화한다”며 “대립 유전자는 출생 때 정해지며 다른 요인과는 독립적이기 때문에 알코올 섭취가 질환 위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하기 위해 대용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알코올 내성 대립 유전자의 빈도는 ALDH2에 대한 것이 21%, ADH1B 69%였으며 저알코올 내성 대립 유전자는 남성의 알코올 소비 감소와 강하게 관련이 있었다. 연구의 초점은 남성에게 맞춰졌고, 남성 대상자의 3분의 1은 정기적으로 술을 마셨다. 연구 기간인 11.2년 동안 9339명의 참여자가 암에 걸렸고, 그중 만성은 4509명 ,여성은 4830명이었다.
연구 결과, ADH1B에 대한 하나 또는 두 개의 낮은 저알코올 내성 대립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남성은 전체 암과 알코올 관련 암 위험이 13~25% 낮았다. 또한 ALDH2에 대한 저알코올 내성 대립 유전자 2가지를 보유한 남성은 매우 적은 양의 술을 마셨고, 암 발병 위험도 14% 낮았으며, 알코올 관련 암 위험도 3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ALDH2에 대한 저알코올 내성 대립 유전자의 한 가지를 가진 남성이라도 술을 정기적으로 마시면 두경부암과 식도암 위험이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술을 마시지 않거나 어쩌다 마시는 남성은 ALDH2에 대한 저알코올 내성 대립 유전자의 한 가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암 위험 증가와는 사이에 연관성이 없었다.
여성의 경우 2%만이 정기적으로 술을 마셨고 여성의 저알코올 내성 대립 유전자는 암 위험 증가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결론적으로 이런 유전자 변이를 가진 남성들은 술을 적게 마시기 때문에 암 위험이 줄어든다”면서 “저알코올 내성 유전자를 가진 남성들의 암 위험이 증가하는 경우는 술을 정기적으로 마시면서 아세트알데히드가 많이 축적돼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술이 몇 가지 암을 직접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는 것과 알코올을 적절히 대사시킬 수 없는 저알코올 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술을 먹게 되면 그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