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겪고 난 뒤 삶이 달라졌다는 암 경험자들이 적지 않다. 이전보다 삶의 질이 더 좋아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더 나아가 암을 겪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거나, 암경험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의미 있는 삶을 함께 꾸려가는 일을 실천하는 사람도 있다.
디자인생선가게 조진희 대표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조대표는 2018년 1월 유방암 1기 진단을 받고 가슴 절제 수술, 그리고 6개월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았다. 수술 후 곧바로 일에 복귀했지만, 조대표는 암과 관련된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는 “당시에는 암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조대표의 생각이 바뀐 것은 2019년 지인의 권유로 암경험자 세미나에 갔다가 암경험자로 구성된 룰루랄라합창단 공연을 보고 나서다. “노래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졌어요. 그 분들이 제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죠. 암 진단을 받고 나서 운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조대표는 그 때부터 다른 암 경험자에게 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2019년 8월 자신이 대표로 있는 디자인생선가게와는 별개로 출판사를 하나 차렸다. 글을 쓰는 사람도, 사진을 찍어주는 포토그래퍼도 책 편집자도 모두 재능기부로 참여하는 출판사의 이름은 아미북스.
‘아미’는 암경험자의 애칭이며, ‘ㅇ’은 암, ‘ㅁ’은 마음에서 따왔다. 조대표는 “아미북스는 암과 마음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출판사이고, 암을 경험한 이들을 만나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읽고 쓰고 듣고 만진 글과 사진을 책으로 지어내는 곳”이라고 했다.
조대표는 사비를 털고 다른 필자들은 재능기부로 참여해 작년 4월 펴낸 책이 ‘암밍아웃 – 암이 탄생시킨 새로운 단어들, 제주도편’이다. 제주도에서 함께 생활하며 만든 여행 무크지의 형식. 그리고 1년 만인 지난 4월 같은 제목으로 4명의 암경험자 이야기와 사진을 모아 ‘2권 서울시장편’을 냈다. 1권 판매 수익과 사비를 보태 만들었다.
보통 암경험자의 책은 암울하고 고통스럽고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투병 과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 책은 밝다. 필자들은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고, 아직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암이 가져다 준 새로운 삶을 잘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조대표의 말을 빌자면 “암을 만나기 전과 후에 달라진 단어에 대한 이야기”로 암경험자 뿐 아니라 가족, 친구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조대표는 벌써 3권을 구상하고 있다.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2권을 판매하는 일도 조대표와 필자들의 몫이다. 북콘서트를 직접 기획해 열고, 선물을 내걸고 독자 서평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손수 홍보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백혈병환우회 독서모임 회원들을 위해 기부도 했다.
조대표의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최종 목표는 제대로 된 암 관련 정보서를 암환우 눈높이에 맞춰 만드는 것이다. 조대표는 “암 관련 빅데이터, 외국 서적, 연구 논문 등 암과 관련된 제대로 된 정보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