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내가 살던 유럽의 어느 낯선 숲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야유회 도중 물건을 살게 있어 일행들과 함께 머물던 숲속 숙소에서 나와 가게가 있는 큰 길까지 걸었죠.
아뿔사! 숙소에서 떠날 때만 해도 환한 낮이었는데 물건을 사고 숲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어느새 어두워져 있는 겁니다. 순식간에 밤이 와버린 거지요.
숲속 숙소에서 일행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막상 깜깜해진 숲길운 헤매 그곳까지 찾아가는 건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숲길. 게다가 풀이 길을 덮고 있으니 한 걸음도 떼기 힘들었지요.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니 전화도 플래시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목청껏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지만 2km 이상 떨어진 숙소에서 내 목소리를 들릴 리가 만무였어요. 더구나 스무 명이나 되는 일행 중에 내가 뭘 사러 나왔다는 사실 조차 아는 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들 야유회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어 있을게 뻔했습니다.
칠흑 같이 어두운 숲길에서 나는 꼼짝달싹 못하고 있었지요. 불안과 공포로 심장은 쿵쾅거리고 몸은 얼어붙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지나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숲으로 난 작은 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짐승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속에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기고 있는데 아뿔사!
만취한 남자와 맞닥뜨린 겁니다. 차라리 짐승이 낫지 싶었습니다. 캄캄한 숲에서 20대의 젊은 여성이 건장한 취객과 마주친 상황이었으니까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순간 나는 다짜고짜 그 남자를 와락 끌어안으며 안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지요.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는 영문을 모른 채 제 정신이 아닌 듯한 젊은 동양인 여성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습니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사실 저는 길을 잃었어요. 이 캄캄한 숲에서 소리만 들리고 보이지는 않는 내 일행을 찾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어요. '하나님, 천사를 내게 보내 주세요. 그가 나를 안전하게 내 친구들에게 데려다줄 겁니다'라고. 기도하고 눈을 딱 떴는데 당신이 여기 서있는 거예요!!! 이 얼마나 멋진 하나님의 응답입니까! 감사합니다. 천사님! 당신은 나의 천사에요!"
술 냄새를 잔뜩 풍겼던 그 남자는 진짜 천사처럼 저를 안전하게 일행이 머물던 숙소에 데려다주었습니다. 나는 그의 주소를 받았습니다. 두어 달 뒤 감사 인사 차 찾아간 그의 집에서 나는 놀라운 소리를 그의 어머니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날 데려다준 그 남자는 강간, 살인미수범으로 복역하다 출소하는 날 나를 만났던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엄마. 나를 천사라고 하는 여자가 있었어요. 나쁘게 살면 안되겠어요. 어쩌면 내가 원래 천사일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그 위기의 순간에 살아야겠다는 본능으로 기지를 발휘했을 뿐이지만, 자신을 천사라고 부르며 믿어준 사람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 했던 그의 모습은 이미 천사였습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로버트 로젠탈은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실험으로 증명하고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 )라는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마기(마스크와 사기의 합성어) 라는 신종어가 생겨났습니다. 마스크를 썼을 때는 미남미녀로 보이지만 벗으면 실망을 준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를 한다고 합니다.
강간, 살인미수범도 천사로 만들고 별로 잘 생기지 않은 사람들도 미남미녀로 만드는 긍정적 기대의 효과!!! 앞으로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꼭 사용해봐야겠습니다.
" 너, 분명히 건강해질거야!"
" 너, 확실히 성공할거야!"
" 나,완전히 잘 될 거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