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여명 6개월 진단을 받은 말기암 환우와의 대화 < 홍헌표 라이프코치 < 전문가 칼럼 < 큐레이션기사 - 캔서앤서(cancer answer)

상단영역

본문영역

홍헌표 라이프코치

여명 6개월 진단을 받은 말기암 환우와의 대화

2020. 04. 21 by 홍헌표 기자

웃음치료 동호회 ‘웃음보따里’에서 만난 50대 초반의 지인이 있다. 그는 간경화, 간암 3기로 투병을 하던 중 한 건강전문지에 나온 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왔다. 그는 복수가 차고 통증이 심해 병원 응급실을 자주 오가느라 웃음보따里 정모에 자주 오지 못했다. 회원들은 나를 “이장님”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정모에 나오면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은근히 웃기는 얘기를 많이 늘어 놓았던 그를 올해 들어 한 번도 못 만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광풍이 몰아치기 직전 대학병원에 입원한 그는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의료진의 통보를 받았다. 연명 기간은 6개월 정도라고 했다. 간 기능, 신장 기능 등을 보여주는 각종 수치는 말기 암에서 나타나는 그것과 비슷했다. 그는 수시로 복수를 빼야 했고 혼수 상태에 빠져 응급실에 실려가고 했다.

그는 대학병원 응급실과 암 요양병원을 거쳐 지금은 어느 한방병원에 입원해 고주파 온열치료, 면역주사 치료 등을 받고 있다. 어제 그와 몇 분 간 통화를 했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근황을 전했다. “어제 간성혼수가 왔는데, 그것 빼놓고는 보름 전 여기 왔을 때의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간암이 악화되면 단백질 소화 과정에서 생긴 암모니아 등 독소를 간이 해독시키지 못해 혈액을 통해 뇌에 신경독성 물질이 쌓이고 이로 인해 혼수상태, 기억장애 등에 빠지는데, 이를 간성혼수라고 한다.

지난해 말 그가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매일 통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 말고 한 사람 더 있다. 웃음보따里 회원으로 우리 힐러넷의 마음치유 프로그램, 암환우 프로그램 기획, 진행을 맡고 있는 심리상담사가 있다. 그가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믿고 따르는 심리상담사는 노련하게 그의 마음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무슨 이야기든 다 들어줬다. 말기암을 극복한 어느 목사님의 유튜브 영상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도 거의 매일 그와 통화를 했다. 짧게는 5분, 길게는 10분 이상 통화를 하는 동안 그는 내게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했다. 주로 암 치료 정보에 관한 것이었다.

“인터넷을 봤는데, 혹시 줄기세포 치료를 받으면 안될까요?”

“양성자 치료는 어떤지요?”

“여기서는 족욕도 못하고 온열치료도 못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보려구요.”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자신이 접한 이런 저런 정보를 내게 확인하고, 그 방법으로 암이 치료될 수 있는지 물었다. 막막했다. 그리고 답답했다. 그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지만, 줄기세포 치료나 양성자 치료, 면역 치료 등을 통해 그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라”고 했다.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말은 차마 못했다.
미국 MD앤더슨 종신교수였던 암전문의 김의신 박사는 예전에 한 신문에서 “말기암 환자가 기적처럼 살아난 경우가 있는데,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그 환자들의 공통점은 죽음을 앞두고 완전히 마음을 비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 뱅크
게티이미지 뱅크

 

그도 마음을 비우면 기적처럼 암이 성장을 멈추거나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나는 여전히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죽는 게 겁난다. 살고 싶다”며 자기 생각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한방병원으로 가고 싶어 했다. 나는 말릴 수 없었다. 비용이 터무니 없이 비쌀 뿐, 결국에는 치료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은 줄 알면서도 말리지 못했다. 암 환우와 상담을 할 때마다 늘 부딪히는 딜레마이다.

나는 그가 현실을 직면토록 했다. “다 잘 될거라”고 말하는 대신, 잘 죽을 기회 ‘웰다잉’을 준비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있어요.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뜨는 사람도 있어요. 그들은 가족과 이별할 시간도 얻지 못했고, 자신의 삶을 정리할 기회도 갖지 못했어요.”

그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행복했던 시간, 의미 있는 순간을 떠올리며 미소짓는 시간을 갖기를 바랬다. 그를 간호하는 동생들, 어머니와 단 며칠이라도 온전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랬다. 그게 진정으로 자신을 비우는 것이고, 거기서부터 회생의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 뒤로 3주간 내게 연락을 끊었다. 그는 자기 뜻대로 한방병원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버티고 있다며 어제 연락을 해왔다. 이번에는 내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 대로 그에게 말했다. “잘 버티라”고. “잘 먹고 많이 웃고 잠을 잘 자라”고. “빨리 웃음보따里 정모에 나와서 함께 웃자”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