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인문학 7] 달릴 때 나는 영원히 젊은이다, 나는 자유다

'면역력 해결사' 달리기 (26) '러너의 멘토' 조지 쉬헌 '달리기와 존재하기' 읽기

2020-07-09     최윤호 기자

인간은 달리는 존재다. 아니 달려야 하는 존재다. 

달리는 동안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어떤 이는 건강을 얻고, 어떤 이는 평화를 얻고, 어떤 이는 즐거움을 얻고, 어떤 이는 부와 명예를 얻는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맛본다. 

제대로 뛰어본 사람은 안다, 충분히 달려본 사람은 안다. 세상의 모든 일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순간이 극단적 즐거움이 될 수도 있고, 극단적 고통이 될 수도 있지만, 온전한 몸과 정신의 합일, 그 순간의 영원할 것 같은 지속성이 그 순간의 핵심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러너의 멘토'가 있다. 조지 쉬헌. 미국의 대통령들을 비롯해 프로 선수는 물론, 수많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게 그는 정신적 스승이다. 심장병 전문의며 작가인 그는 놀라운 속도로 달리는 러너다. 50대 1마일(1.6km) 달리기를 4분 47초에 뛰어 세계기록을 세웠고, 예순한살의 나이에 마라톤을 3시간 1분에 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만년에 7년동안이나 전립선암과 싸우다 1993년 일흔네살의 나이에 숨진 조지 쉬헌은 <러너스 월드> 의학담당 편집자이자 건강 자문위원으로 일하며 수많은 달리기 관련 글을 남겼다. 

그의 책 중 '달리기와 존재하기(Running & Being)'는 '불후의 달리기 명저' 반열에 올라 있다. 이 글은 달리는 작가 김연수가 2003년 번역한 '달리기와 존재하기'를 함께 읽은 것을 목표로 썼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할 때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가를 입증하고 있다." / 조지 쉬헌 홈페이지 Geogesheehan.com 

달리기는 젊음의 원천이다(조지 쉬헌)

달리기가 나를 대신해 싸워 이긴다. 달리기는 내 젊음의 원천이며 내 불로초다. 달릴 때 나는 영원히 젊은이다. 달릴 때, 나이가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달리면서 노는 일이 시간을 이긴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내 몸과 마음과 정신을 내가 원하는 곳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굳은 틀을 깨부수고 새로운 길을 찾아, 오르테가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건 평생에 걸친 일이다.

60대에 생애 최고기록이 가능하다?(기자)

달리기를 하면 젊어진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도 많다. 원시적 달리기의 힘을 발견한 책 <본투런>에는 청년시절이 지나고 난 뒤 점점 달리기 능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훈련을 통해 64세쯤에 최고의 기록을 낼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도입부에 말했듯, 61세에 조지 쉬헌은 3시간1분에 마라톤 풀코스를 뛰었다. 달리기는 청춘의 샘이며,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완전한 운동이다. 그래서, 누구나 달릴 수 있고, 달리다 보면, 놀라운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  쉬헌의 말처럼 "몸이 영혼이 되고 영혼이 몸이 되기 때문에 달리기는 완전한 경험이 된다. 달리기는 예술이자, 예술 그 이상이다. 달리기는 다른 어떤 예술보다 더 심오한 사상과 관념을 제공한다."

"달릴 때 나는 나체다. 오직 신체적 열정만 입고 있는...." / 조지 쉬헌 홈페이지 Geogesheehan.com 

가벼운 것은 좋은 것, 소박한 러너의 삶(조지 쉬헌)

러너에게 가벼운 것은 좋은 것이다. 러너의 삶은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필요한 것도, 원하는 것도 많지 않기 때문에 몇줄이면 충분하다. 친구 한 명, 옷 몇 벌, 이따금 먹는 식사, 주머니에 몇 푼의 동전, 그리고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주제들.

가장 좋은 해답은 소화 활동에 관해 예전부터 전해온 세 가지 규칙을 떠올리는 것이다. 1.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먹어라. 2.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음식을 피하라. 3. 화를 짊어지고 자지 마라..... 감정과 분투라는 요소 때문에 운동선수에게는 한 가지 규칙이 덧붙여진다. 4. 시합에 나설 때는 항상 위장과 결장을 비우도록 해라.

그냥 툭 뛰어나가 달리면 그만, 그런데 재밌다(기자)

운동을 하라고 하면, 먼저 장비부터 갖춰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 멋지고 좋은 장비 구비하는 사람들. 탓하고 싶지 않다. 그냥 달리기처럼 험블한 운동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냥 신발 한 켤레, 작은 천조가리 같은 셔츠 하나, 바지 하나면 끝이다. 아, 양말(심지어 맨발로 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고 물통 하나 정도 추가하면 끝이다. 그냥 툭 뛰어나가 달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현재가 중요하다. 미래, 건강, 돈, 계획, 이런 것들에 그다지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주 큰 가치를 얻는다. 조지 쉬헌은 이렇게 표현했다. "책상물림은, 자신도 원하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몸을 움직이는 자들은 늘 즐거워한다. 거기에는 놀이하는 재미, 승리하는 재미, 심지어는 패배하는 재미까지 있다. 몸으로 부딪치며 그들은 소진을 경험한다. 이 소진을 통해 형제애와 평등을 얻게 된다."

"성공은 당신이 되고자 한 사람이 되려는 결단과 용기를 뜻한다."/ 조지 쉬헌 홈페이지 Geogesheehan.com 

몸을 중요하게 여겨라, 우리는 동물이다(조지 쉬헌)

장거리 러너는 자신의 몸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말한다. 즐거웠던 과거의 기억을 잊으라고 말한다. 화려한 미래의 약속을 기대하지 말라고, 바로 지금 이 곳에서 천국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자신이 동물이라는 걸 깨닫는 게 좋다고 에머슨은 말했다. 달릴 때 나는 동물, 그 중에서도 최고의 동물이다. 태어난 그대로 행동할 때, 언제난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우아함과 단호함으로 움직일 때.

몸과 마음을 합체시키자, 나는 동물인 것이 좋다(기자)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분명 몸을 움직이는 과정을 통해 마음이 고양된다는 것이다. 달리기가 뇌를 자극해 두뇌가 좋아진다는 과학적 연구결과도 있지만, 그것이 없더라도 달리고 나면 더 일을 잘 할 수 있고, 생각을 더 명료하게 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그냥 할 수 있다. 달리기는 우리가 직립보행을 선택하면서 그 완성형으로 만든 능력이다. 달려야 최고의 인간이 될 수 있다. 조지 쉬헌은 이렇게 말햇다. "러너의 목표는 건강이 아니다. 러너의 목표는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몸 만들기다. 건강이란 그렇게 몸을 만드는 과정에 지나게 되는 어떤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몸과 꿈을 지키는 유일한 지킴이다."/ 조지 쉬헌 홈페이지 Geogesheehan.com 

그리하여, 나는 자유다(조지 쉬헌)

나는 달리기를 발견했고 장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자유를 얻었다. 달릴 때면 다른 사람의 평가가 두렵지 않았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규율과 통제도 더 이상 내게는 무의미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달리는 동안 나는 자유를 느낀다. 나는 다른 목표도 없고 다른 보상을 원하지도 않는다. 달리기는 그 자체가 목표이고 보상이다, 나는 실패의 두려움 없이 달린다. 사실 성공의 두려우도 없다. 어쨌든 어떤 걱정이나 의심도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

나도 자유다(기자)

어느 영화의 한 장면. 햇볕이 쏟아지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나뭇잎 사이로 푸른 하늘과 태양이 빛나고, 주인공은 달리고 있다. 저절로 고개가 하늘을 향하고, 양팔은 바깥으로 벌어진다. 고통스럽던 얼굴에 미소가 퍼지고, 이미 몸은 더이상 중력의 방해물이 아니다. 실제로 이렇게 뛰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바꾸면 못할 것도 없다.

기록 1초 단축보다 달리는 순간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잊을 수 없는 짜릿한 맛이다. 자유는 맛있다. 조지 쉬헌은 말했다, 진정한 놀이, 죽는 순간까지 하고 싶어 몸이 달아오르는 놀이.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갈 때, 최상의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내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달리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지만, 그게 내 삶이 된다. 진정한 놀이라면 죽는 그 순간까지도 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를 것이다."

인간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다(니체, 그리고 모든 러너)

영화 <루시>는 인간이 신이 되는 장면을 그린다. 인간의 뇌가 100% 각성되면 모든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최민식이 스칼릿 요한슨과 함께 출연한 이 할리우드 영화는 인간과 뇌, 몸과 정신, 시간과 공간의 합체를 이야기한다. 니체는 말했다. "인간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다." 몸을 지니고 세상의 논리에 얽혀 살아가고 있는 유약한 인간에게, 이제 신을 향해서 용감하게 나아가라고 자극한다. 

몸과 정신이 하나가 되면, 신이 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이 아니더라도, 차원 다른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러자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몸이 갖춰져야 한다고 조지 쉬헌은 말했다.  그 과정은 신과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이 설정해 놓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이다. 그게 달리기다.

나는 내가 흘린 땀으로 정화된다. 나는 내 몸에서 나온 액체로 세례를 받는다. 나는 새로운 에덴동산을 향해 달려간다.... 평지를 달리는 그 아름답고 끝없는 시간이 끝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언덕을 올라가야만 할 때가 되면 내게는 이 모든 생각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흐름이 나를 인도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언덕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 즈음이면 나는 생리학적으로는 한계에 이른다. 가능성은 종말에 다다른다. 이제 언덕은 내가 견딜 수 있는 수준 이상이 된다.... 나는 신과 싸운다. 나는 신이 내게 부여한 한계와 싸운다. 고통과 싸운다. 부당함과 싸운다. 나와 이 세계에 든 모든 나쁜 것과 싸운다. 나는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이 언덕에 올라설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올라설 것이다.

이렇게 혼자서 언덕에 올라서면, 인간은 이제 신이 된다. 신이 아니더라도 좋다. 완전한 행복에 젖어들 수 있다. 어떤 혼란도 없는 순간, 환희와 깨달음의 순간. 그저 세상의 삼라만상이 있는 그대로 내 눈 속으로,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더이상,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기자는 오늘도 달린다. 아직 달리기의 진정한 기쁨을 수시로 느끼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런 경지가 저 멀리서 느껴진다. 이제 두렵지 않다. 공식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됐을 때, 상황에 처했을 때, 기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달릴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달리는 자유를 갖고 있으니까. 늘 좋아하지만, 오늘 아침 유독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