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인생 후반전의 꿈을 열어준 고마운 존재

■ 홍헌표의 암전암후(癌前癌後)

2025-11-20     홍헌표 기자

20089, 나는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는 사건을 맞이했다. 대장암(S결장암) 3기 진단.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암전(癌前)''암후(癌後)'로 나뉘었다. 암 진단 이전의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과거로 돌아갈 것이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아니요라고 말할 것이다. 암은 내게 고통만 준 게 아니라 인생 후반전을 새롭게 설계하는 이라는 큰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다.

수술 직후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암에 대해 공부하면서 회복 프로그램을 꾸준히 실천했다. 시간이 흘러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암이 내게 가져다준 행복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술 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난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키고 있다. 그 시간동안 암은 내 삶을 다시 쓰게 한 가장 강력한 계기가 되었다.

암을 겪고 나서야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겼고, 나를 위하는 마음이 생겼다. 힐링여행을 만들어 다녀오기 시작한 것도 그 덕분이다. 2022년 코로나팬데믹 막바지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출하고 검사를 받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떠난 산티아고순례자의길 걷기. 800km를 다 걷지 못했지만 200km 이상 걷고 난 뒤 산티아고대성당 앞에서 기분을 표시했다.

암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나는 몸을 혹사하며 스트레스를 방치했고, 건강을 돌보는 일에 서툴렀다. 암 진단은 내 몸이 알린 비상 신호였고, 그 후 나는 몸습관·마음습관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잠들기 전 내 몸을 토닥거리며 수고했다” “고맙다고 말하는 작은 의식은 삶의 태도 자체를 바꿔놓았다.

2011년 암 3년 차에 암 치유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서 만든 암경험자 웃음치유 커뮤니티 웃음보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며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동체다.

14년째 계속되고 있는 웃음보따리는 난치암 경험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중요한 요소인 사회적 지지의 원형을 그대로 갖춘 치유의 장이 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인간적 온기, 유대감,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배우고 있다.

2011년 암 체험 에세이 나는 암이 고맙다를 쓴 뒤로 지금까지 1000명이 넘은 암경험자와 가족을 만났다. 내 경험을 나누고, 그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수많은 암경험자들의 삶의 기록이 개인 맞춤형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코칭을 해왔다. 이 과정이 내겐 소명을 이뤄가는 과정이다. ‘암을 겪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을 돕는 것이다.’

올해 14년째를 맞은 웃음보따리 송년회 기념 촬용. 지지, 격려, 응원이 곧 커뮤니티의 정신이다.

나는 조선일보 기자일 때 암 진단을 받았다. 그 뒤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을 맡았다가 2017힐러넷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몸맘건강 네트워크를 지향하며, 암경험자들에게 실제적으로 필요한 정보와 회복 프로그램을 제공하려고 만든 회사다.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라기보다 내 경험을 이웃과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고, 지금도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그 수단으로 인터넷 암 전문 언론 <캔서앤서(CancerAnswer)>를 창간해 매일 기사를 발행 중이다.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믿고 찾아볼 수 있는 암 정보의 창고를 만들고 싶었다. 암경험자와 가족들의 질문에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식으로 답하는 것이 나의 기사 원칙이다.

암으로 경력이 단절된 이들이 다시 일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뜻이 맞는 분들과 함께 캔드림협동조합(이사장 홍유진)도 만들었다. 암경험자들이 서로의 삶을 지지하며 경제 활동까지 함께하는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다. 나는 현재 부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치유 글쓰기, 라이프코칭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내 인생 목표는 단순히 암경험자의 삶을 돕는 데 그치지 않는다. 100세 시대, 인생 후반전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전성기가 될 수 있다. 60대 이후의 삶은 은퇴가 아니라 또 한 번의 도약이 가능한 시기라고 믿는다.

나를 포함해 여전히 열정적으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일하며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사회경제적 역할을 하고 싶은 60세 이후 신중년 세대들과 함께 꿈꾸고 싶다. 내가 코칭(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을 배워 서울청년창업사관학교 스타트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코칭을 하고, 암경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삶을 디자인하는 라이프코칭을 하는 것도 나의 인생 후반전을 의미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비즈니스 코치로 서울청창사에 입교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날 기회가 많다. 젊은이들에게 배울 게 너무 많다.

5060 세대가 주축이 커뮤니티 '꿈꾸는 요새'에서 신중년이 활력 있게 사회와 연결되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인생 놀이터를 만드는 일을 함께하고 있다. 이 활동을 통해 내가 이루고 싶은 인생 목표는 이렇습니다.

목표: 100세 시대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 미션: 나의 콘텐츠로 타인의 삶 돕기 비전: 신뢰, 사랑, 사회공헌

이런 목표는 암을 겪지 않았다면 결코 세울 수 없었을 것이며, 앞으로 나를 이끄는 삶의 나침반이다.

암을 이긴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긍정하는 마음이다. 암이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태도. 나는 매일 그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2008년 암은 내 인생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다시 세웠고, 나는 지금 하루하루를 암에게 답하는 삶으로 채운다.

암은 내게 두 번째 인생을 열어준 존재다. 고통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 후반전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암이 고맙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누군가의 삶을 밝히는 일로 돌려드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