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치료ㆍ파킨슨병 억제 동시에...DPP-4억제제 효과의 재발견
용인세브란스병원 정승호 교수 등, '거트' 연구 결과 발표
당뇨병 치료제 DPP-4 억제제가 파킨슨병 진행을 막는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4일 정승호 용인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김연주 연세대 의과대학 의생명과학부, 이필휴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 연구팀은 DPP-4 억제제가 장내 파킨슨병 유발 단백질 축적을 차단해 발병과 진행을 억제한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거트(Gut, IF 26.2)에 게재됐다.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병에 이어 두번째로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중뇌 도파민 신경세포에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이 쌓여 발생하며 떨림, 경직, 비정상적으로 느려지는 행동 등을 보인다.
뇌에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이 쌓이는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알파-시누클레인 응집체가 장에서 시작해 미주신경을 따라 뇌로 이동한다는 ‘장-뇌 연결 축’ 가설이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당뇨병 치료에 쓰이는 DPP-4 억제제 ‘시타글립틴’을 사용해 파킨슨병 진행 저지 가능성을 확인했다.
DPP-4 효소(Dipeptidyl Peptidase-4)는 인크레틴 호르몬(GLP-1, GIP 등)을 분해하는 효소인데, DPP-4 억제제는 이 효소의 작용을 억제해 인크레틴의 농도를 높인다. 이로 인해 혈당이 높을 때 인슐린 분비가 촉진되고 글루카곤 분비가 억제돼 혈당이 자연스럽게 감소되는 효과가 생긴다.
연구팀은 DPP-4 억제제가 신경세포 보호 효과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도파민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로테논을 이용해 마우스에 파킨슨병을 유발했다. 마우스를 로테논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면 알파-시누클레인 응집체가 장-뇌 연결 축을 따라 이동하며 6개월 이후부터는 도파민 신경세포 소실과 더불어 파킨슨병 운동 증상이 나타난다.
이때 시타글립틴을 병용하면 장에서 염증 반응은 물론 알파-시누클레인이 감소했다. 도파민 신경세포 소실이 절반 가까이 줄었으며 운동능력 개선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장 미생물을 분석했을 때 유익균은 늘고 유해균은 줄었다.
연구팀은 DPP-4 억제제의 작용 원리를 살피기 위해 GLP-1 수용체의 활동을 제한했다. GLP-1은 인슐린을 분비하고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으로 수용체는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GLP-1 수용체를 통제해도 파킨슨병 진행을 막는 효과는 똑같이 일어났다. DPP-4 억제제가 GLP-1를 통한 호르몬 대사 경로가 아니라 장내 면역, 염증 조절을 통해서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뜻이다.
정 교수는 “DPP-4 억제제인 시타클립틴이 파킨슨병의 장-뇌 축 병리적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시타글립틴의 효과가 GLP-1 신호를 차단해도 유지된다는 점은 이 약물이 면역, 염증 경로를 통해 작용한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