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때문에 차린 무인카페, 따뜻하고 마음 든든한 인연을 맺게 해줬다
■ 스토리텔러 에세이_암이 가져다준 선물
지난 3월 화랑대역 인근에 작은 무인 카페를 오픈했다. 대학 졸업 후 P그룹 해외 영업팀에서 약 4년간 일했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사회복지 분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논문을 쓰면서 마주한 클라이언트들과 사회복지사로 일할 환경의 실체를 체감하며 졸업과 동시에 과감하게 꿈을 접었다. 이후 피아노 전공으로 편입한 뒤 이후엔 줄곧 피아노 레슨을 하며 살았다.
갑작스럽게 갑상선암 진단을 받는 바람에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고 2년간 휴식 시간을 가졌다. 긴 공백 후 돌아온 일상은 낯설었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사람을 마주하는 일조차 쉽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작은 무인 카페였다.
2월에 계약서를 쓰고 본사와 여러 차례 미팅을 가진 끝에 오픈한 무인 카페. 기대와 설렘을 품고 조용한 날갯짓을 시작했다. 처음엔 낯선 동네 분위기, 익숙하지 않은 커피 머신, 쌀쌀한 3월의 날씨 등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환경에 생소한 쓸쓸함이 가득했지만, 흐르는 눈물조차 돌볼 여유 없이 6개월을 달려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카페 안에 사람이 머무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일처럼 흐뭇하게 여기는 단골 손님들이 생겨났다. 한 번은 오후 늦게 카페에 갔더니 다섯 테이블 중 네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 계셨다.
한 분은 매일 카페를 찾으시는 단골 손님이었는데, 그 분은 마치 100점짜리 시험지를 자랑하려고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린애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반겼다.
어떤 분은 “아주머니 두 분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음료 두 잔만 사서 싸가지고 온 간식을 잔뜩 먹고 가더라”며 카페지기인 나를 대신해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듬직한 내 편이 생긴 듯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깊은 정이 쌓여가고 있음을 느꼈다.
카페 가까운 곳에 일터가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는 늘 나의 모자람을 채워주고 작은 요청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동안 아팠던 시간들을 잘 견뎌내었다고 신께서 내게 주신 포상과도 같은 한솥밥을 먹는 식구 이상의 의미를 가진 사람들이 나의 하루를 오늘도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무언의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 자칫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분들의 따뜻한 위로와 도움이 흑암 가운데 한 줄기 빛처럼 내가 걸어야 할 협곡을 비춰주는 듯 하다.
우연을 가장한 소중한 만남은 귀한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을 알아차린 순간부터는 그저 단순한 인연이 아닌 필연으로 이어져 우리 삶에 공존한다. 그렇게 맺혀진 필연은 단내 진동하는 포도송이처럼 영글고 영글어서 각양 각색의 튼실한 모습으로 우리 삶 속에서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카페에 얽힌 스토리는 아름답지만 사실 카페 수익금은 크지 않다. 대부분 어떤 단체에 기부금으로 보낸다. 나도 일상을 살아내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지만, 이 또한 나의 삶의 한 부분이 되었기에 조금은 버겁지만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카페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