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식단의 '비밀 병기' 올레오칸탈 완전 해부
건강에 좋은 지중해식단의 가장 중요한 음식을 꼽는다면 올리브 오일이다. 올리브오일 중에서 최상급으로 꼽히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EVVO)은 단순히 몸에 좋은 음식 수준을 넘어 질병 예방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먹으면 목 뒷부분에서 칼칼하고 매운 자극을 느낄 수 있다. 이 맛의 주인공이자, 최근 의학 연구에서 주목받는 물질이 바로 올레오칸탈(oleocanthal)이다.
올레오칸탈은 맛을 좋게 해준다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질환을 막거나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매운 맛에서 시작된 발견
올레오칸탈이라는 단어는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붙여졌다. 1999년 시칠리아에서 열린 한 학술 모임에서 미국 과학자 게리 보샹 박사가 올리브오일을 맛보다가 새로운 경험을 했다.
목 뒷부분이 살짝 따끔거리는 느낌이 마치 소염진통제 이부프로펜을 삼켰을 때와 똑같았던 것이다. 이후 화학 분석을 통해 새로운 성분이 확인되었고, ‘올리브(oleo) + 찌르다(canth) + 알데히드(al)’라는 단어를 합해 올레오칸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통증 센서를 자극하는 분자
올레오칸탈은 EVOO 특유의 쓴맛과 매운맛을 일으키는 핵심 성분이다. 그 맛의 비밀은 우리 몸에 있는 TRPA1(티알피에이원) 이온 채널에 있다. TRPA1은 신경세포 표면에 있는 작은 단백질 통로로, ‘통증과 자극을 감지하는 센서’ 역할을 한다. 고추의 캡사이신이나 겨자의 톡 쏘는 성분도 이 통로를 자극하는데, 올레오칸탈 역시 TRPA1을 자극해 목 뒤의 매운맛을 느끼게 한다.
자연에서 온 ‘이부프로펜 효과’
연구에 따르면 올레오칸탈은 염증을 일으키는 효소인 사이클로옥시게나제(COX)의 작용을 막는다. 이 덕분에 염증을 줄이는 효과를 발휘하는데, 이는 소염진통제 이부프로펜과 같은 방식이다. 실제로 일부 실험에서는 이부프로펜보다 더 강력한 염증 억제 효과를 보였다는 결과도 있다. 올레오칸탈은 종종 ‘천연 이부프로펜’이라 불린다.
치매 연구에서 주목받는 이유
가장 눈길을 끄는 연구 분야는 알츠하이머병이다. 동물실험에서는 올레오칸탈이 뇌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단백질 아밀로이드 베타가 뭉치지 않도록 막고, 뇌혈관 장벽을 통과해 단백질을 제거하는 과정을 돕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신경 염증을 줄이고 신경세포를 보호해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됐다.
암 성장 억제, 암 예방 효과
암 연구에서도 성과가 보고되고 있다. 세포 실험과 동물 연구에서 올레오칸탈은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고, 암세포가 스스로 죽도록 유도하며, 종양으로 향하는 혈관 생성을 막는 효과가 관찰됐다. 특히 유방암, 흑색종, 백혈병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고,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올레오칸탈을 항암 연구의 잠재적 후보 물질로 주목하고 있다.
대사질환·관절염·피부 재생까지
최근에는 올레오칸탈이 비만,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나왔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을 꾸준히 섭취하면 혈액 속 항산화 능력이 강화되고 염증이 줄어들어 인슐린 저항성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관절염의 통증과 염증을 완화하거나, 섬유아세포 생성을 촉진해 손상된 피부 회복을 돕는 효과도 보고됐다.
올레오칸탈을 따로 뽑아내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천연 분자는 특허로 보호받기 어려워 투자 매력이 낮고,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올리브오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좋은 품질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올레오칸탈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