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정제 피부 트러블에서 시작된 '제로 웨이스트' 삶

■ 스토리텔러 에세이_제로 웨이스트

2025-09-07     송민서=스토리텔러

전쟁 같은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무사히 보내고 나서 공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무 냄새와 흙 냄새가 한껏 긴장되었던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오늘도 가치 있는 선택을 해야지’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하루를 시작한다.

남들도 흔히 말하듯 나의 일상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빠르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흘러간다. 그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나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삶의 방식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었고, 그 전환의 시작에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쓰레기를 제로에 가깝게 줄이는 생활 방식)가 있었다.

피부 트러블이 없게 내 취향대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비누.

사실 내 관심이 처음부터 환경이었던 것은 아니다. 난 부모님의 영향으로 늘 건강을 중요시했고, 먹거리와 생활 습관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썼다. 덕분에 건강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임신 중이던 어느 날 조금 편하려고 사용했던 유명회사의 거품형 손세정제 때문에 피부 트러블을 겪었다. 그 때 나는 직감적으로 손세정제 사용을 중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대신 비누를 사용했는데 결과적으론 내 판단이 옳았다. 피부는 눈에 띄게 빨리 회복되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사소한 것 하나에도 삶의 균형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의 깨달음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을 때 코로나 팬데믹을 만났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건강이 나를 둘러싼 환경과 뗄 수 없음을, 그리고 지구와 자연, 생태계가 무너지면 그렇게 지키고 싶어하는 건강도 삶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나서 나는 잠시 절망감을 느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한복을 만드는 전문 기술은 없지만 수거한 한복으로 공연용 의상을 만들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 생활 속 작은 전환

어릴 적 엄마에게 들었던 한 마디가 떠 올랐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스피노자)

그렇게 나는 환경 공부를 시작했다. 왜 이렇게 기후 변화가 심화되었는지, 미세 플라스틱과 미세먼지 같은 문제들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런 것들이 우리 가족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택한 게 바로 제로 웨이스트였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와 현재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하나 둘 나의 일상을 조금씩 바꾸어 갔고, 그렇게 5년이 지난 지금 내가 바꾼 일상 속의 습관은 생각보다 많아졌다.

▷손세정제 대신 고체 비누 사용: 처음에는 피부 문제 때문에 시작했지만,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는 효과까지 얻게 되었다.

▷다회용 용기와 장바구니 사용: 외출 시 무조건 가방에 장바구니를 챙겨 넣었고, 음료나 음식을 살 때 준비해 간 용기에 담아오면서 일회용 쓰레기를 줄이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최소화: 불필요한 음식물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식단 구성을 위해 노력하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제철 과일을 주로 먹는다.

▷생활 쓰레기 최소화: 클래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고, 공방 방문 손님들에게는 필요할 경우 수거된 깨끗한 종이 가방을 제공하고 있다. 용기를 가져오면 원하는 만큼 세제 등을 구매할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 운영으로 용기 재사용을 유도하고, 폐자원 수거를 통해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는데 노력하고 있다.

음식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5년 째 제철 과일을 잘 씻어 껍질 째 먹고 있다.

프로젝트로 확장된 제로 웨이스트 실천

개인적인 생활 습관으로 시작된 제로 웨이스트는 점차 프로젝트로 확장됐다. 혼자만의 작은 실천에 그치지 않고, 주변과 함께 하고 싶었다. ‘제로 웨이스트 워크숍’을 열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비누를 만들고, 한복을 수거해 재활용을 해보기도 했다.

아이들과 ‘줍깅(산책하며 쓰레기 줍기) 챌린지’를 진행하며 우리 주변의 쓰레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환경 다큐멘터리 공동체 상영을 통해 현재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 작은 시도도 함께 모이면 변화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나는 좀 더 단단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솔직히 나도 제로 웨이스트 실천이 쉽지는 않았다. 급하게 외출할 때 장바구니를 놓고 나오거나 순간의 편리함 때문에 일회용품을 사용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완벽한 실천이 아니라 꾸준히 의식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쓰레기를 줄이려는 선택 덕분에 나의 소비 습관을 돌아보게 됐고, 이를 통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끌림으로 인한 소비는 하지 않게 되었고 그만큼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이처럼 건강을 위한 작은 도전이 환경을 위한 실천으로,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며 결국 내 삶의 태도마저 바뀌게 된 것이다.

아이들과 학교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줍고 동네에서 많이 버려지는 쓰레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제로 웨이스트는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의 시작을 보면 피부 트러블로 인한 불편함이 환경이라는 더 큰 이야기로 이끌었고, 이제는 제로 웨이스트 실천이 내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지구를 위한 약속이 되었다.

“덜 쓰고, 오래 쓰고, 다시 쓰기.”

지금은 이 단순한 원칙이 내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매일 조금씩 더 나아지려는 노력이 모여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미루지 말고 당장 실천하기를, 그래서 언젠가 우리가 어느 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