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보단 상처가 됐던 말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니 괜찮을거야"
■ 스토리텔러 에세이 _ 암환자로 위로 받기
늘 해오던 일상이었습니다. 공적인 하루 일과를 마치면 운동화로 갈아 신고 무작정 걷습니다. 그 시간은 그저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기분 좋은 저만의 루틴이었습니다.
2023년 여름의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너무 피곤해서 조깅은커녕 화장도 못 지우고 잠이 드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처음엔 간헐적으로 나타나던 증상이 점점 잦아지자,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습니다.
혹시나 갑상선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피검사와 세침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불안과 걱정 속에 흘러갔습니다.
다행히 피검사 결과가 정상이란 문자를 미리 받은 덕분에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침 검사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무방비 상태였던 저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의사의 말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세침 검사 결과 90%는 암입니다." 제 일상의 시간을 단숨에 멈춰 세우는 말이었습니다.
갑상선암은 다른 암에 비해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이라고말합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암 축에 껴주지도 않는 암'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암 통보 순간에 제 마음은 묘하게 요동쳤습니다. 예기치 못한 암이 주는 심리적 압박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감정 속에서 제 신경에 가장 거슬리는 말은 다름 아닌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다”라는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수술을 앞둔 며칠 동안 겹겹이 다른 빛깔을 내며 밀려드는 뒤엉킨 감정 속에서 보냈습니다. 로봇 수술 준비로 피를 뽑아 갑상선 수치와 몸 상태를 확인하고, 초음파로 목을 훑으며 가슴 사진을 찍고 심전도를 붙이며 전신 마취가 가능한지 살펴보는 일 등 끝이 없는 검사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0월 19일 수술 당일 차가운 수술실에서 느낀 긴장감은 전에 겪은 어떤 수술보다 저를 긴장하게 했습니다. '암 수술'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심리적 무게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눈을 뜨자 회복실, 차가운 침상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려는 순간 밀려오는 엄청난 통증에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요!" 저도 모르게 절규하듯 외쳤습니다.
그러나 다급한 저의 외침과는 무관하게 돌아오는 답변은 무미건조한 한마디, "무통 주사 놓았으니 기다리세요"였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전혀 동참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차가운 시선과 언어들이 텅 빈 공간을 떠돌았습니다.
서운함도 잠시, 이렇게까지 아플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이어지는 가운데 온몸이 고통에 잠식되어 갔습니다. 그렇게 저의 암 수술 현장은 처절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수술 후에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게다가 평상시에 10개의 일을 소화할 수 있었던 몸 상태가 지금은 절반도 해낼 수 없게 됐습니다. 분명, 저는 건강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과정을 겪고 건강을 잃은 상실감에 시달리는 저에게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라는 말은 결코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느낀 공포와 두려움, 수술 직후의 엄청난 통증,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후유증과 전신의 피로 등이 저를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갑상선암도, 엄연히 암입니다. 생존율이 높다고 해서 두려움이 작은 것은 아닙니다.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누구에게나 깊고 무겁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갑작스레 암이라는 장애물을 만난 저는 누군가에게 거창한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아픔을 겪는 시간들과 잘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다가와 토닥토닥 등 두드리며 건네는, 가벼운 것 같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짧은 말 한 마디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괜찮아?” “많이 놀랐지.”, “내가 뭐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
이러한 말들이 저에겐 휴식같은 위로의 말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