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실 영양사 폐암, 산재 인정..."조리흄 노출이 폐암원인"

2025-08-21     이보람 기자

학교 급식실에서 24년간 근무하다 폐암에 걸린 영양사에게 산업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조리사에게 산재가 인정된 적은 있었지만, 영양사에게 산재가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단독 문지용 판사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1997년부터 제주 지역 학교에서 영양사로 근무하다 2022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조리 흄과 폐암의 관련성은 국내외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기름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 흄을 발암 가능 물질(Group 2A)로 분류했다./게티이미지뱅크

근로복지공단은 “영양사의 주 업무는 조리가 아니기 때문에 조리 흄(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입자와 발암물질)에 대한 노출 수준이 낮다”며 요양급여를 불승인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A씨가 실제로는 조리 인력 부족으로 인해 하루 2~4시간 상당 조리에 참여했으며, 마스크 등 보호장구 없이 튀김·볶음 조리과정에 관여해 조리 흄에 장기간 노출됐다고 판단했다. 과거 급식실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영양사실도 조리실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됐다는 점도 인정됐다.

이번 판결에는 “영양사라도 조리사와 동일하게 조리 업무를 장기간 병행했다면 조리 흄 노출 가능성이 높다”는 호흡기내과 전문의의 의견도 반영됐다.

조리 흄과 폐암의 관련성은 국내외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기름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 흄을 발암 가능 물질(Group 2A)로 분류했다.

특히 환기시설이 부족한 환경에서 장기간 노출되면 폐암, 천식 등 호흡기 질환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여러 차례 보고됐다. 국내에서도 급식실 조리 종사자들의 폐암 발생률이 일반인보다 높다는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은 영양사의 조리 참여 실태를 반영해 조리 흄 노출 위험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라며 “급식실 근무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환기시설 개선과 보호장구 착용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