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진화 4] 고양이 vs 개, 왜 그들은 다르게 뛸까

'면역력 해결사' 달리기 (13) 개와 함께 뛰는 게 좋은 이유

2020-05-26     최윤호 기자

<개밥주는 남자>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러 유명인들이 각자의 개를 키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그중 잊히지 않는 개 한 마리가 있다. 최현석 셰프의 시베리안 허스키다. 아주 어린 강아지를 데려다 힘겹게 키우면서 점점 덩치가 커져가는데, 개 이름은 이다.

어느 새 성견이 된 뚜이는 썰매견에 도전한다. 그냥 한국의 가정집에서 길러지던 개가 갑자기 자기 조상들, 친척들이 뛰놀며 달리는 눈썰매 끌기에 나선 것이다. 한국에서 썰매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하긴 했지만, 알래스카에서의 적응은 쉽지만은 않을터.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썰매끈을 매고 다른 시베리안 허스키들과 뒤섞여 신나게 설원을 달린다. 

시베리안 허스키인 '뚜이'가 최현석 셰프와 함께 등장해 알래스카 썰매견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개밥주는 남자'의 한 장면. / 채널A 캡처

 

달리기를 좋아하는 개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뚜이는 원래 에스키모 개다. 북방 스피츠 계통에 속하는데 고대부터 동부 시베리아에서 썰매용 개로 길러졌다. 눈보라와 혹한의 혹독한 기후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인내심이 강하고 지구력이 뛰어나다. 힘이 세고 속도가 빠르다. 털이 길고 숱이 많아 서울 같은 도시의 반려견으로는 손이 많이 가는 견종이지만, 달리기 동반자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프로그램을 볼 때 잠깐 '아직 어리고 기후 적응도 힘들텐데, 저 개를 저렇게 뛰게하면 학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냥 두어도 마구 뛰었고, 그냥 맞춰서 잘 뛰었고, 썰매줄을 매고도 잘 뛰었다.

잠깐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동네에서 개를 끌고 산책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가끔씩 보는 장면, 앞서 뛰는 개에 질질 끌려 간신히 쫓아가는 주인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많지만, 고양이를 끌고 뛰어다니는 사람은 없다. 왜 그럴까? 고양이는 그렇게 뛰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덩치, 비슷한 몸꼴, 비슷한 털, 비슷한 환경 등 개와 고양이는 닮은 점이 많지만 이렇게 달리기에 대한 태도는 다르다. 

치타와 늑대, 그들은 다르게 뛰고 사냥한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이고, 장거리달리기 주자로 더 유명한 베른트 하인리히의 저서 <우리는 왜 달리는가>는 수많은 동물들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면서, 동물에게서 배우자고 말한다. 어떤 동물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그것이 주는 의미를 파악하고, 자신의 울트라마라톤에 대입한다. 그중 개와 고양이 부분을 소개한다. 

치타와 늑대는 극단적으로 다른 형태의 사냥법을 갖고 있는 동물이다. 고양이와 개, 비슷한 야생의 한쌍이라고 보면 되겠다. 치타와 늑대는 둘 다 달리기라는 사냥법을 채택하지만, 그 세부 방법은 매우 다르다.

치타는 대부분 단독으로 사냥한다. 많은 시간을 기다리면서 인내한다. 그리고 살그머니 먹잇감에 접근하거나, 먹잇감이 다가오도록 내버려 둔다. 그 다음, 절정의 순간이다. 전광석화 같이 전력 질주해 먹잇감을 쓰러뜨린다. 사냥 끝!

이와 달리 늑대는 무리를 이루어 활동하면서 약점이 있는 먹잇감을 골라내고 목표물로 정한 뒤 추격을 시작한다. 개과 동물은 타깃을 주의 깊게 선택하고, 비교적 먼 거리까지 추적한다. 그리고 지친 사냥감을 둘러싸고 공격해 잡아먹는다. 

개는 늑대와 마찬가지로 무리를 이루고 즐겁게 달린다. 현대사회에서 개들의 달리기 동반자는 사람이다. / 채널A 캡처

속근섬유 vs 지근섬유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들은 폭발적으로 방출되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탄수화물 당 분해에 의존하는 속근섬유를  많이 갖고 있다. 그래서 빠르고 짧게 뛴다. 

그런데 개는 지방을 사용해 산화물질 대사를 하는 지근 섬유를 더 많이 갖고 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나름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다. 

그런데,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동물이 있다. 바로 인간이다. 사람은 지속적 운동 수행 과정에서 두 종류의 근섬유를 모두 사용한다. 다만, 일류 단거리 주자의 경우 약 26%의 지근 섬유를 갖고 있는데 비해, 일류 장거리 주자는 79~90%의 지근섬유를 갖고 있다. 

운동방법에 따라 바뀌기는 하지만, 근섬유 구조는 심리적 성향과도 직결된다. "애완용 고양이(반려묘)가 주인을 따라 숲이나 들판을 누비며 토끼를 사냥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반면 개들은 왕성한 열정으로 동료들과 함께 사냥에 나선다." 베른트 하인리히의 설명이다.

배 고프지 않아도 뛰는 개, 그리고 그의 동료 인간

개들이 열정적으로 사냥에 나설 때 함께하는 동료란 바로 인간이다. 개들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달린다. 사냥 혹은 달리기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기 때문이다. 늑대의 후예인 개에게는 오랜 진화의 과정 속에서도 그 속성이 남아있다. 

푸들이 무리 지어 사냥을 하는 것을 상상하긴 어렵지만, 그들도 늑대의 본성을 갖고 있다. 집단 대신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을 빼면 그대로다. 자유를 갈망해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어 낑낑대고, 풀보다는 고기를 좋아한다. 

알래스카의 썰매견 경주대회에서는 다양한 견종의 달리기가 실험된다고 한다. 썰매견들은 무리의 일부임을 느끼고 기뻐하며 달린다. 이들은 먹성이 좋고, 흉곽이 두껍고 깊고, 심장과 혈관계가 튼튼하다. 늑대와 다수의 개들이 공유하는 특성이다. 

개들과 함께 뛰는 견주들도 늑대와 같은 습성을 갖고 있다. 달리도록 진화했고, 오래달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 개는 종류에 따라 잘 뛰고 못 뛰는 차이가 있지만, 제대로 훈련만 하면 다들 잘 뛰고 심지어 (작은) 썰매도 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조금만 관리하면 지금보다 훨씬 잘 뛸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오래달리기 선수이다. 본능적으로.

개가 갖고 있는 달리기에 대한 욕망. 그 욕망이 바로, 우리 속에도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개보다 더 잘 장거리달리기를 할 수 있는 인간들 가슴 속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