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 향으로 대장암 치료? 천연 향기, 암세포 억제 작용
고려대 이성준 교수 연구팀 "세포실험에서 β-아이오논 성분이 효과"
대장암 치료에 향기 성분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표됐다. 실용화 이전의 분자 수준 연구 결과이지만, 후각 수용체가 암세포 성장 억제에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치료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고려대학교 식품공학과 이성준 교수 연구팀은 천연 향기 성분인 ‘β-아이오논(베타 아이오논)’이 대장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최근 국제 학술지 '식물의학(Phytomedicine)'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후각 수용체 OR51E2의 역할이다. 일반적으로 냄새를 맡는 데 관여하는 이 수용체는 대장 점막 조직에서도 발현되며, 연구팀은 이 수용체가 암세포 성장과 관련된 신호전달 경로(p53, p21 등)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대장암 세포에 β-아이오논을 처리한 결과, 암세포의 증식이 유의미하게 억제되고 세포 사멸이 유도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쥐를 이용한 동물 실험에서도 종양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대장암 조직 내 OR51E2 수용체가 활발하게 작용하면서, β-아이오논이 일종의 억제 신호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β-아이오논은 라벤더, 바이올렛 같은 꽃과 일부 과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향기 분자로, 현재도 식품 향료나 화장품 성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미 식품첨가물로 안전성을 인정받은 물질이라는 점에서, 향후 응용 가능성은 더 주목된다.
다만,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가 세포 및 동물 수준의 실험에서 얻어진 것이며, 실제 인체에서 치료 효과를 입증하려면 상당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후각 수용체가 대장암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고, 다른 장기에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기초 연구도 더 진행돼야 한다.
이성준 교수는 “그동안 후각 수용체는 단지 냄새를 감지하는 데 쓰인다고 여겨졌지만, 다양한 조직에서 비후각 기능(non-olfactory function)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향기 성분이 암세포의 대사와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향후에는 β-아이오논과 유사한 물질을 활용한 기능성 식품 개발이나 항암 보조치료제 연구로도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임상시험을 포함한 다단계 검증 절차가 수반되어야 하며, 실질적인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