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힐링스팟 고향집...맹방 바다는 평화로웠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고향집에 왔다.
최소한 두 달에 한 번은 고향집 엄마를 뵈러 오겠다는 연초의 결심을 일단 지켰다.
부산에서 강릉까지 동해선 철도가 개통된 덕을 봤다. 서울에서 삼척까지 차를 직접 몰고 오가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다 보니 요즘은 열차를 탈 때가 많다.
청량리에서 동해역까지 KTX를 타면 2시간 남짓. 동해선 개통 전에는 뜨문뜨문 있는 시내버스를 갈아타면서 1시간 넘게 걸러야 고향집에 도착하는데, 동해역에서 동해선으로 갈아타면 삼척역까지 15분 걸리고, 삼척역에서 택시나 버스를 타면 훨씬 편하게 고향집에 올 수 있게 됐다.
봄이 온 줄 알았는데, 저 멀리 눈 쌓인 백두대간에서 불어오는 밤 바람에 은근히 차가웠다. 된장 시래기와 계란 부침,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신 김장 김치를 반찬 삼아 밥 한 그릇을 후딱 해치웠다.
식탁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2년 전 척추 수술 후 조심조심 허리 관리를 하시는 엄마는 오래 앉아 있기 힘들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집 뒤 해안도로를 시끄럽게 오가는 트럭 소리에 아침 잠이 깼다. 몇 달 전부터 아침 6시면 모래를 실어 나르는 트럭 행렬이라고 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맹방해수욕장에 보트장을 만드는 공사를 하면서 나오는 모래를 인근 해변으로 옮기는 중이라고 했다. 한없이 조용하고 평화롭던 고향집이 영 낯설다.
아침 밥을 먹고 소나무숲 산책 길에 나섰다. 왕복 4km 남짓 되는 소나무숲 산책로는 늘 걷는 사람들로 붐빈다.
꽃은 피지 않았지만 기운은 영락없는 봄이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는 이 길은 언제 와도 평화롭다. 온 몸에 힘을 빼고 숲 기운을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두 달 만에 다시 만나는 고향집 바다. 유난히 푸르게 느껴졌다. 북쪽 삼척항을 바라보면서 나도 몰래 한숨을 지었다. 산 너머 옛 시멘트 광산 쪽에 세운 화력발전소를 위해 건설한 부두가 딱 시선을 가로 막고 있다.
윗마을 바다 한 가운데 만들어지고 있는 인공섬도 눈에 거슬렸다. 관광객을 위한 놀이시설을 짓는다는데, 자연 그대로의 고향집 바다를 간직하고 싶은 내 이기심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다.
소나무숲 길을 따라 맹방해수욕장까지 간 뒤, 나무 다리를 건너 덕봉산으로 향했다. 내 어린 시절, 해안 경비를 하는 군 부대가 주둔해 있어 접근할 수 없었던 덕봉산 둘레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걷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오늘은 덕봉산 둘레길을 천천히 걸으며 파도와 얘기를 나눴다. 길게 심호흡을 하며 내 몸에 쌓인 복잡한 생각의 잔해를 날려버렸다. 기분좋은 노곤함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