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엽문4'의 주인공 엽문의 사망 원인이 된 후두암
[영화 속 암 이야기] 자주 담배 피는 엽문...그리고 후두암 진단
엽문(葉問).
이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제자 이소룡(브루스 리)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영화배우로 더 유명하지만, 중국무술을 익혔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 쿵후를 널리 알린 사람이다. 배우로서의 절정기에 사망해 전설이 된 무술가, 이소룡이 그의 스승 엽문과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엽문4>. <엽문> 시리즈는 요즘 중국무술영화를 대표하는 배우 견자단이 엽문역을 맡아 일생을 건 연기를 해왔다.
2019년 제작돼 지금 국내 상영중인 영화 <엽문4>. 중국 무술의 하나인 영춘권 대가 엽문의 일생을 다룬 영화 시리즈의 종결편이다. 화려한 무술이 넘쳐나는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영춘권 태극권을 비롯한 중국무술과 격한 운동의 비교 △엽문의 사망원인인 후두암과 흡연 △중국중심주의 vs 미국중심주의 등.
▶영화 <엽문4>의 흥미진진함, 기대감
<엽문4>가 무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무술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슴 설레게 한 것은 이소룡의 등장이다. 젊은 나이에 죽음으로써 전설이 된 이소룡은 엽문의 제자이다. 미국과 홍콩을 오가며 영화작업을 해 세계적 무술영화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지금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무술인' 중 하나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가 엽문을 미국으로 초대하고 엽문과 이소룡의 만남이 이 영화의 한 축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중국무술과 일본무술의 대결은 엽문시리즈에 여러차례 등장하는데, 이번엔 미국 해병대가 익힌 가라데라는 점에서 좀더 과격하고 파괴적인 대결이 기대된다. 게다가 그 역할을 하는 배우가 스콧 애킨스다. 현재 활약하는 배우 중 가장 싸움을 잘하는 배우로 꼽히는 액션 스타.
그리고, 무대가 샌프란시스코라는 점도 색다르다. 이국적 정취 가득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그냥 중국 땅에서 벌어지는 일본인과의 싸움과는 시각적 차이가 분명할 것으로 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대감을 갖게 된다.
▶영춘권과 태극권, 그리고 전투 무술
<캔서앤서>에 연재 중인 태극권은 중국무술 겸 호신술이기도 하지만, 심신을 유연하고 편안하게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기공운동이기도 하기 때문. 유장하게 이어지는 흐름과 깊은 호흡, 편안한 수련이 질병 스트레스로 굳어있는 몸을 치유해준다.
<엽문4>에는 영춘권과 태극권의 대결이 등장하고, 종국적으로는 중국무술과 미 해병대의 전투무술이 대결을 펼친다. 전투무술로 사용된 것도 일본의 가라데이긴 하지만....
무술은 자기를 수련하는 부분이 크지만, 진짜 싸움으로 확대되면 무기를 사용하거나 급소를 공격하는 등 필살기가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사용할 수 없는 기술들이다.
전투무술은 적과 현재진행형으로 싸워 죽여야 하는 상황을 상정한 무술. 그러다 보니, 파괴력이 극대화된다. 더군다나 덩치 큰 서양인, 그 중에서도 미 해병대의 물리적 파괴력은 유명하다. 가라데의 극도로 정제된 필살기들이 해병과 만나 형성된 파괴력. 이와 맞서려면, 중국무술도 급소공격이라는 평소의 금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잘 못하는 태극권은 해병에게 질 수밖에 없었고, 영춘권은 국부가격 등 급소공격을 통해 승리를 얻는다.
▶엽문의 사망원인 후두암과 흡연
1893년 태어나 1972년 사망한 엽문은 당시 중국의 생활에서 익숙한 아편을 정기적으로 복용했고, 흡연을 즐겼다고 한다. 그의 사망원인은 후두암. 영화 <엽문4>의 첫 대목이 바로 암 판정을 받는 장면이다. 의사는 후두암에 걸렸다고 진단하면서 그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조언한다.
영화 도중, 엽문이 기침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에서 옆 좌석 승객이 흡연을 하자, 기침을 하고, 지진으로 탁자 밑에 숨는 대목에서도 쿡쿡 기침을 한다. 싸우다 가슴을 맞으면 또 기침을 한다. 물론 가격의 충격으로 인한 기침이겠지만, 의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고민에 빠진 엽문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도 삽입되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흡연과 기침, 후두암의 연관성을 의식한 연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
아이러티컬하게도, 이 영화 최대의 액션신인 엽문(견자단)과 미해병 바턴(스콧 애킨스)의 격정적인 대결은 엽문의 손끝이 바턴의 인후(후두 부위 중 하나)를 가격함으로써 끝난다. 인후를 움켜잡고 고통에 신음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인 셈.
마지막 장면은 엽문의 장례식. 그가 죽고 7개월 뒤에 숨지는 이소룡의 조문이 클로징 신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연출의도가 살아있는 영화다.
▶후두암과 흡연의 관계는?
인후는 구강의 뒤쪽 공간으로 공기와 음식이 통과하는 곳. 여기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암을 인두암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하인두와 후두에 발생하는 암이라고 보면 된다. 하인두가 후두를 감싸고 있어 그중 어느 곳에 암이 발생해도 연관성을 갖기 때문에 후두암과 인두암 모두 인후암이라고 통칭한다. 하인두의 발병률은 매우 낮기 때문에 인후암이 후두암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1년간 30만명의 후두암 환자가 발생했는데, 남성 암 중 후두암이 13번째로 많다. 주로 55세 이상의 환자가 많다.
통계에 따르면 후두암의 80% 이상이 흡연과 음주가 원인이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구강성교가 후두암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고, 가공식품의 지나친 섭취와 신선한 과일야채 부족이 발병위험을 높이기도 한다.
후두암의 증상은 목소리가 허스키해지거나 목이 지속적으로 쉬어 있는 상태, 음식을 삼킬 때 불편하고 각혈이 생긴다. 목의 통증과 함께 한쪽 귀에 지속적으로 통증이 있으면 후두암을 의심해야 한다. 이 같은 증상이 있으면 내시경을 통한 자세한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
초기 후두암은 방사선 치료나 수술만으로 완치될 수 있으나, 큰 종양은 외과적 절제술과 항암치료가 필요하다. 후두암은 근처 림프절이나 폐나 간으로의 전이가 가능한 만큼 빨리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얼키고 설킨 인종차별 이슈, 길을 잃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뺄 수 없는 것이 인종차별 문제다. 중국 내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 전작들에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서양인의 동양침공이 <엽문4>에서는 중국인의 미국이민으로 변주되면서 그 갈등이 극에 달한다.
이소룡이 미국인들에게 쿵후를 가르치는 것이 못마땅한 중국인 사부들이고, 그들에게 못마땅한 것이 미국을 방문한 엽문. 중국인들에게 못마땅한 것이 미국 해병의 훈련 지휘관이고, 또 그에게 못마땅한 것이 모든 중국인 무술인들이다.
이렇게 얼키고섥힌 갈등구조의 핵심이 인종차별주의. 스콧 애킨스가 열연한 미해병은 "내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아니, 나는 실력없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라고 외치지만, 모든 관객은 그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용하는 무술은 일본의 가라데. 얼마전까지 치열한 전쟁을 한 일본의 무술이 미 해병 주요 무술로 등장한다.
이소룡의 서구화는 지지하지만, 본인은 중국을 택하는 영화 속 엽문. 그런데 영화 스토리와 달리, 엽문은 이소룡의 행태를 좋아하지 않았고, 미국에는 간 적도 없으며, 외국인과의 대결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 역사적 증언들이다. 극적 긴장감을 위해 '미국인 vs 중국인' 대결구도까지 포함하다 보니, 길을 잃은 감이 있다.
최근 중국이 자본의 힘을 통해 중화중심주의 영화들을 제작하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 뚜렷한 의도로 인해 약간의 부작용이 생긴 듯하다.
<엽문4>의 큰 스토리 라인은 실존인물과 가공의 스토리가 겹치면서 여러가지 틈이 있는 영화가 되었다. 그렇지만, 필살기를 가진 호신무술이되 유연함과 부드러움으로 갈무리하고 있는 중국무술의 가치를 잘 구현해냈고, 흡연과 암에 대한 무의식적 경고를 포함하고 있는 좋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