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사인은 납중독 아닌 B형간염-간경화?

2023-03-24     최윤호 기자
베토벤의 머리카락으로 알려진 8개의 타래 중 5개가 베토벤의 것임이 이번 연구결과 밝혀졌다. / Current Biology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꼽히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 괴퍅한 성격과 청각상실로 유명한 그는 그동안 납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약 200년 만에 '머리카락 게놈(유전체) 분석'을 통해 밝혀진 그의 사인은 B형간염 감염과 유전적 간 질환, 지속적인 음주로 인한 간경화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학과의 트리스탄 베그 연구원을 비롯한 영국과 독일의 많은 연구자와 베토벤 전문가들이 참가한 연구팀이 밝힌 이같은 연구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셀(Cell)’의 자매지인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최근 발표됐다. 

베토벤의 머리카락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간 질환이 그의 사인이었음을 밝힌 연구결과가 실린 'Current Biology'.

이들은 베토벤의 것으로 알려진 8개의 머리카락 타래를 분석해 이 중 3개는 엉뚱한 사람의 것으로 바뀌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됐고, 5개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이 맞다고 확신했다.

그 모발들을 분석한 결과, 베토벤이 사망 최소 몇 달 전에 B형간염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 게다가 간 질환의 유전적 소인도 발견됐다. 어머니로부터 B형간염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연구팀은 "간 질환에다 베토벤의 지속적 음주 이력까지 더해져 베토벤이 간경화로 숨진 것으로 간주된다"고 밝혔다. 

과거 베토벤의 한 절친한 친구가 베토벤이 사망 전 1년간 매일 1리터의 와인을 마셨다고 진술한 바 있고, 알코올 의존과 간질환이 베토벤의 가족력이라고 기록한 문서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베토벤은 생전에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주치의에게 사후 자신의 질병을 밝혀내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전문가들이 부검은 물론이고 편지, 일기, 진찰기록 등 베토벤과 관련된 각종 문헌 자료를 분석해 사인 규명을 시도해왔다. 머리카락 타래의 독성학적 분석을 통해 ‘납중독’ 사망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납중독설의 근거가 된 머리카락 타래는 베토벤이 아닌 유대인 여성의 것이었음이 확인됐다. 

베토벤의 청각장애 원인도 규명의 주요 대상이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공동 연구자인 본 대학 병원 인간 유전학연구소의 악셀 슈미트 박사는 “게놈 해석에 필수적인 참조 데이터가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만큼 추후 청력 손실의 단서가 새롭게 발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연구팀은 간질환을 비롯한 각각의 요인들이 어느 정도씩 사망에 관여했는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반 베토벤이라는 성을 공유하고 후손이라고 주장해왔던 벨기에의 한 가족은 게놈 분석 결과 베토벤과 유전적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베그 연구원은 “베토벤의 게놈을 연구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제공하고 그의 진짜 머리카락을 추가함으로써 언젠가 그의 건강과 계보에 대한 남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