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번의 죽음을 통해 배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 저서 '천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

2022-10-28     최윤호 기자

"죽음은 예고편 없이 들이닥쳐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므로 폭력적이지만 누구에게나 딱 한 번 오기 때문에 공평하다. 그 한 번을 '잘'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배워야 한다. 삼베옷을 입고 입관하는 체험으로 마지막을 느껴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어차피 지금 모습 그대로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경험은 죽음을 배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호스피스 병동에 와서 자신의 마지막과 접촉하기를 바란다. 이미 죽음이 등 뒤로 들이닥쳤을 때 호스피스에 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먼저 세상을 떠나는 선배에게 죽음을 배우기 바란다."

암에 걸려 호스피스 병동에 왔다가 삶을 정리하고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식의 동화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환자들이 병동에서 죽어가면서 들려준 이야기, 병동에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다.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마음으로 돌보고, 1000명이 넘는 환자들에게 누구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선언을 한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 씨. 수없이 임종 선언을 했어도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에 담담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 호스피스 의사의 책 <천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포레스트북스)이다. 

저자는 호스피스 병동에 와서 죽음의 순간을 목격해 보라고 권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 순간에 동참할 수 있다. 

저자는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환자와 가족들을 만나고 떠나보내면서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깨달은 삶과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한 권에 담았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평안하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도 있지만, 불효가 한으로 남아 떠나는 부모를 고집스레 붙잡는 자식, 환자 앞에서 돈 때문에 싸우는 가족, 아내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고 마지막에서야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남편도 있다. 

복잡한 세상만큼이나 다양한 사연 넘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배운 것은 이해, 연민, 사랑처럼 따뜻한 단어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이곳에 와서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촘촘히 얽힌 돈과 욕심, 그것들이 빚어낸 갈등과 비극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결국 좋은 죽음은 좋은 삶에서 비롯된다는 진실이다. 좋은 삶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지막을 상상해야 한다. 좋은 죽음이 좋은 삶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좋은 삶은 좋은 죽음을 상상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죽음의 현장에서 삶을 위한 교훈을 얻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렇다고 죽음과 삶의 의미에 억눌려 힘겹고 무겁게만 살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거시적으로 멋진 삶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살아내는 것 또한 소중하다.

1000번의 죽음을 선언한 김여환 호스피스 의사가 병원에서 들은 다음과 같은 말은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귓가에서도 생생하게 맴돈다. 행복한 삶의 지혜가 그 어두울 것 같은 곳, 죽음의 공포에 시들어갈 것 같은 사람들의 평범한 말에서 비쳐드는 놀라움을 경험해 보자. 

"김 선생님, 죽음이라는 끝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시고 지나온 세월도 많이는 돌아보지 마세요. 그저 오늘 하루, 가족과 또 저희와 편하게 지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