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이상(異常)' vs '미토콘드리아 이상'...어떤 게 암의 원인?

■ 유명길의 '암 대사 이야기' (2)

2022-02-04     유명길 기자

암이 단순히 유전자에서 나오는 신호에 의해 발생하고 유지되는 것이라면 암세포의 유전자를 일반세포에 이식함으로써 어떤 세포이든지 암세포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현재 대학병원과 주류 의학에서 암을 접근하는 방식은 ‘유전자 이상(체세포 돌연변이)’을 암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치료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빠르게 자라나는 암을 수술로 제거하고, 화학 항암제로 죽이고, 방사선으로 불태워 죽이는 대증적 치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증치료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증상을 잡지 못하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습관이 무너져 근본적인 치료가 어렵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암의 원인으로 '유전자 이상설'을 주장한 테오도어 보베리(독일).

다시 암세포와 암의 원인이라는 주제로 돌아와 “닭(미토콘드리아)이 먼저냐, 달걀(유전자)이 먼저냐”의 문제를 좀 더 심도있게 얘기해보겠습니다. “달걀이 먼저”라는 주장을 펴는 대표적인 사람이 테오도어 보베리(독일의 동물학자)입니다. 그의 ‘유전자 이상설’은 지난 50년간 암의 원인에 대한 정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주장은 한 마디로 “세포 DNA의 손상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바뀌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유전자 이상설’은 암의 모든 진행과정을 잘 설명해 주는 이론입니다. 즉, 발암물질로 인하여 세포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고, 암 억제 유전자가 없어지고, 암 유발 유전자의 발현으로 암이 생겨 커지고 전이된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종양이 되기 위해서는 40~80가지의 유전자 변이가 축적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즉, 다양한 발암 물질이 세포의 DNA를 지속적으로 공격해 돌연변이가 계속 축적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암은 노인병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발암물질이 없어도 세포분열 시 발생하는 돌연변이의 축적에 의해 암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매일 평균 3,000~4,000개의 암세포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면역세포가 이러한 유전적 변이를 가진 암세포를 처리할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암환자가 되지 않는 것이고요.

이렇게 암세포가 종양으로 발전하는 것은 DNA 변이의 축적에 따른 우연적인 결과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암세포의 DNA를 가진 정상세포는 모두 암세포가 되어야 할 텐데요.

암의 원인으로 '미토콘드리아 이상설'을 주장한 오토 바르부르크.(독일)

이번에는 “닭(미토콘드리아)이 먼저”라는 관점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관점의 핵심 가설은 ‘암의 원인은 미토콘드리아 등 세포 환경의 변이”라는 것입니다. 세포핵 바깥 쪽에 암세포의 성장과 유지를 지시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무엇이 암세포의 성장과 확산에 도움이 되는 DNA 스위치를 켜는 것일까요? “암은 대사질환”이라고 주장한 오토 바르부르크(노벨상을 받은 독일의 생화학자)는 이 세포 내 소기관을 ‘그라나(Grana)’라고 불렀는데, 이는 미토콘드리아를 의미합니다.

바르부르크는 “세포의 호흡능력 손상이 지속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한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미토콘드리아의 손상으로 세포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세포가 부족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해당 발효작용을 항진시킨다는 것이 암의 생성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미토콘드리아의 손상은 유전자 변이와 함께 발견되는 암세포의 공통적 특징입니다. ‘유전자 이상설’은 미토콘드리아 손상을 암세포 진행 과정의 결과로 본 것이고. ‘미토콘드리아 이상설’은 미토콘드리아 손상을 암의 원인으로 본 것입니다.

정상적인 미토콘드리아는 약 90%의 연료(당, 단백질, 지방)를 산소와 연소시켜 포도당 1분자당 약 36 ATP가 생성되는 세포호흡을 합니다. 나머지 10%의 연료는 세포 복구와 성장을 위한 세포구성 물질 합성에 사용됩니다.

반면 암세포는 세포호흡 대신 혐기성 해당작용(Anaerobic glycolysis), 즉 발효과정이 우세한 대사 경로를 밟는데, 적어도 연료의 약 60%가 발효과정에 사용됩니다. 이 발효과정의 장점은 에너지 대사가 빠르고 세포구성 물질 합성에 용이하다는 것이지만, 포도당 1분자당 겨우 2 ATP를 만들 뿐입니다. 에너지 효율이 아주 낮은 것이지요. 대신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더 포도당을 많이 흡수할 수 있게 포도당 수용체가 항진되어 있고 세포구성 물질 합성을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암세포는 빠르게 분열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바르부르크가 발견한 이런 암세포의 대사적 특징을 ‘바르부르크 효과’라고 부릅니다. 사실 암세포는 이러한 혐기성 해당작용만 하지 않고 대사적으로 유연합니다. 추후에 암세포의 대사적 특징 및 유연성에 대해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세포 안에 있는 정상 미토콘드리아는 연료(당, 단백질, 지방)의 90%를 산소와 함께 연소시켜 에너지를 만들고, 10%의 연료는 세포 복구와 성장을 위해 쓴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에 문제가 생기면 이같은 과정에 문제가 생기고 암이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정상세포에서도 혐기성 해당작용이 발생합니다. 즉, 산소 섭취 시간이 부족한 짧은 시간에 큰 힘을 내야하는 고강도 운동에서 근세포는 혐기성 해당작용을 사용합니다. 이에 비해 암세포는 산소가 충분히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혐기성 해당작용을 우위에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암세포의 해당작용을 호기성 해당작용(Aerobic glycolysis)라고 부릅니다.

암세포가 성장함에 따라 주변 혈관을 짓누르고 종양 미세환경은 더욱더 저산소증 상황이 되기 때문에 혐기성 해당작용은 더 심해지게 됩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약 30~40배 빠른 속도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우리가 병원에서 암 진단을 위해 사용하는 펫씨티(PET-CT, 양전자 컴퓨터 단층촬영기)도 포도당 유사물질을 체내에 주입 시 암 조직에서 주위 정상조직보다 더 높은 농도로 축적되고 그것이 영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이용한 진단법입니다.

실제 암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는 모양이 비정상적이고, 수가 줄어 있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다. 미토콘드리아의 모양은 기능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암은 '유전자 이상'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의 이상' 때문에 암이 생긴다는 주장도 있다. 

‘유전자 이상설’과 ‘미토콘드리아 이상설’ 두 가지 다 이론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달걀이 나타나서 닭이 되었다”는 가설보다 “닭이라는 종이 생겨나서 알을 낳게 되었다”라는 가설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즉, 생활습관이나 환경적 요인 등에 의하여 세포의 미토콘드리아가 기능이 약해지거나 미토콘드리아의 DNA가 손상을 입고, 부족한 에너지 대사를 보상받기 위해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생기게 하고 세포호흡에서 발효과정으로 에너지 대사를 변하게 하는 것이 암의 원인일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미토콘드리아의 손상은 세포의 자살을 강요하는 세포자멸사의 기능을 원활하지 않게 만들고 종양 유전자의 활성 및 암 억제 유전자의 비활성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암 대사이론의 핵심인 미토콘드리아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