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인문학 34] 멕시코 협곡의 22세 처녀, 수줍게 세계를 흔들었다
넷플릭스 다큐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를 보고
사람은 달리도록 진화했고, 잘 달리면 사람의 신체기능도 잘 살아난다. 현대문명 속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짐으로 여기기 일쑤다. 흔히들 말한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과거에 뛰어야 했다고 지금도 뛰라는 법 있나? 과거에 맨발로 뛰었다고 지금도 맨발로 뛰어야 하나? 과거에 짚신에 샌들 신고 뛰었다고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하나?”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 아직은 그렇다"이다.
험지를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울트라마라톤, 산악마라톤을 뛰는 사람들. 북한산에 무거운 배낭 메고 낑낑 등산을 하다보면, 가벼운 복장으로 최소한의 장비만 갖추고 날아갈 듯 휙휙 지나가는 트레일 러너들을 가끔 만난다. 세계에는 아주 험한 곳을 달리는 대회들이 있다. 거기서 인간은 가끔 말을 이기기도 한다.
인간은 아주 험한 길도 곧잘 달릴 수 있다.
멕시코에도 그런 험한 대회가 있다. 삐끗 잘못하면 절벽으로 떨어져 죽을 것 같은 길. 너무 험하고 오래 뛰어야 하기 때문에 웅덩이 물을 마시게 되는데, 그게 잘못 돼 독한 벌레에 감염되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터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뛰는 대회들이다. 그런데, 그 대회에서 스물두살 먹은 멕시코의 원시부족 처녀가 우승을 했다. 로레나 라미레즈. 그녀는 알록달록 치렁치렁한 타라우마라족 전통 치마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낡은 전통 샌들을 신었다. 별로 호흡이 거칠어지지도 않은 채 가볍게 우승했다. 멕시코의 험준한 산 100km 산악달리기를 12시간44분25초만에 주파했고, 세상은 깜짝 놀랐다.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는 넷플리스 제작 다큐영화다.
멕시코의 깊은 산속 ‘타라우마라’라고 하는 지역에 16세기 스페인 침략에서 도망쳐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라라무리’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맨발로 달리는 사람들. 문명과 담을 쌓고 전통방식으로 살아온 그들은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겸손하며 조용하다. 낯을 가리며 조용히 살아가는 그들의 특징을 어떤 언론인은 ‘부끄럼을 탄다’고 말했다.
로레나도 말이 없다. 침묵을 좋아하고 혼자 외롭게 지낸다.
그런데 사실 그녀가 말이 없는 것은 꼭 본인의 성격 탓만은 아니다. 그들이 문명을 등진 것이긴 하지만, 문명 또한 그들을 버려두었다. 그래서 가난하다. 남동생이나 오빠들은 학교에 갈 수 있지만, 여자아이들은 학교에 갈 형편이 안된다. 염소를 기르고 집안 일을 해야 한다. 가끔은 큰 마을로 나가 생활 필수품을 사와야 한다. 서너시간 걸리는 길이다. 그 길을 다니다가 로레나는 자신의 다른 면을 발견한다. 달리기가 편하다는 사실, 잘 뛸 수 있다는 사실, 뛰어갔다 오면 재밌고 시간도 절약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점점 더 달렸다. 점점 더 잘 달려졌다.
샌들에 치렁치렁 전통치마를 입은 로레나는 점점 잘 뛰게 됐다.
각종 울트라 마라톤에서 우승한 바 있는 아버지 라미레즈 씨는 로레나를 데리고 한 대회에 나갔다. 멕시코 치와와주 와초치 신포로사 협곡에서 열린 제21회 협곡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라라무리족 선수 4명은 전 종목을 석권했다. 전 세계에서 온 장거리선수 1000여명과 함께 뛴 100km, 63km 남녀 종목을 모두 휩쓸었다. 로레나와 그녀의 언니가 100km 여성 종목에서 1, 2위를 차지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12시간 44분 25초. 라라무리가 잘 뛴다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비밀이 아니었지만, 이 대회의 결과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
진흙과 돌투성이 아찔한 협곡을 샌들의 마라토너가 달렸다.
신화. 그렇다, 신화다. 인간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신화 같은 존재가 되었다. 위대한 달리기 책 <본 투 런(Born to Run)>은 이들 라라무리에 대한 책이다. 거기서 출발해 인류의 진화, 인간의 역사를 구성해낸 책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살아있는 화석' 같은 이들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래 달리도록 만들어졌고, 우리의 맨발은 험한 길을, 오래 달려도 괜찮도록 진화되었다. 그런데 현대문명은 우리가 더이상 멀리 달리지 않아도 되게 해줬고, 거기서 생긴 생리적 문제들을 성능좋은 신발로 해결했다. 그래서 마치 그것이 우리의 본성인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우리 몸은 아직 원시인인데 미래를 살고 있으니 몸이 병드는 것이다.
"넌 달릴 때 진지한 마음이야? 진지하게 임해?" "응, 진지해." "진짜?" "그렇다니까." 아무런 문제도 힘듦도 특별한 훈련도 없이 달리는 로레나에게 묻는다. 넌 무슨 마음으로 뛰니? 진지하니? 로레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이 짧은 다큐영화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를 본 사람들은 이상하다, 아름다운 듯한데 공감은 안 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달리기의 소중함을 못 느끼고 우리 몸에 대한 고찰이 없이 라라무리 사람들의 인류사적 가치를 모른다면, 그냥 조용한 멕시코 시골의 수줍은 한 처녀 이야기에 그치게 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진지한지를 모른다면.
로레나가 그랬듯, 우리는 그저 달릴 때 가장 인간스럽게 된다.
사실은 살벌해서 스페인 침략자들조차 발딛기를 거부한 곳, 자칫 미끄러지면 천길낭떠러지인 곳에 사는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과 동화된 채, 문명과 떨어진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 졸졸 옹달샘 물을 떠먹고, 염소와 뒹굴며 매일 걷고 뛰는 사람들. 그들의 소박한 삶을 조용히 조명한 다큐영화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뭐 하는 거니, 라라무리.
반딧불이들이 날아가고 있어.
불꽃이 빛나지.
그 불꽃을 봐.
침묵 속에서 그 불꽃을 따라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기운이 남아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