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인문학 32] 천국의 아이들, 눈물 가득한 달리기

'면역력 해결사' 달리기 (62) 영화 속 달리기 이야기

2021-08-09     최윤호 기자

달리기 영화, 이렇게 말하면 맨처음 떠오르는 추억 같은 영화가 있다.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이다. 2001년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감동적인 영화다. 커다란 눈망울의 가난한 이란 아이들. 눈에 글썽글썽 눈물이 맺히고, 가난과 고통을 새침한 표정으로 감당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는 아이들. 낡은 운동화 한 켤레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아이들의 달리기. 생존과 생명을 위한 달리기이다. 3등을 목표로 한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싱가포르에서 2003년 리메이크를 했다. 영어제목은 <홈런>, 중국어와 한국어 제목은 <달려라 아이야>. 홈런은 야구의 홈런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집으로 뛰는 이야기다. 1965년 아직 독립하기 전의 싱가포르가 겪는 경제적 사회적 혼란상과 가난하지만 똑똑하고, 불굴의 정신을 가진 아이들이 엮어내는 감동의 드라마가 겹쳐지는 영화다. 

세계적 명화로 널리 알려진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과 그 리메이크 작품인 싱가포르의 '달려라 아이야' 포스터.

워낙 감동적인 원작 <천국의 아이들>을 본 사람들은 많으니 <달려라 아이야>가 그 후속작임을 알고 보는 사람은 일단 감동 받을 준비,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기자도 너댓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감동적인 어린이 영화를 달리기 영화로 읽어봤다. 좀 다른 언어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눈물겨운 장면들을 구성해 본다 .  

 

#1 첫번째 눈물, 잃어버린 운동화

모든 발단은 가난한 우리 집에서 내가 동생의 운동화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낡은 운동화 한 켤레씩으로 학교에 다니고 수업을 들었는데, 동생 것을 내가 잃어버렸다. 멍청하게도...

어쩌지? 일단 내 운동화를 번갈아 신어야겠다. 내 동생, 착한 그 아이가 내 헐렁하고 낡고 큰 운동화를 신고 잘 다녀야 할텐데. 동생이 하교 후 뛰어온다. 이제 내 운동화를 받아신고 뛰어 가야지. 오늘도 지각하겠지만, 최대한 빨리 뛰어봐야지. 아, 왜 이리 눈물이 날까. 

오빠의 낡고 큰 운동화를 신고 발을 뻗었더니, 휙, 신발 한짝이 날아가 버렸네. 아, 맨발이 더 슬픈거야, 낡은 운동화가 더 슬픈거야. / imdb.com

#2 두번째 눈물, 맨발과 운동화

오빠가 내 신발을 잃어버려 할 수 없이 오빠 신발을 빌려 신고 학교에 왔다. 어쩔 수 없지. 엄마는 임신 중이고, 아빠는 돈벌이가 시원찮은 힘든 일을 하시니 새 운동화를 사달랠 수도 없잖아. 오빠 운동화라도 신을 수 있으니 다행이지 뭐야. 그런데 이 신을 신고는 발 차기 같은 수업, 제대로 할 수가 없네. 헉, 어쩌지 발을 쭉 뻗었더니 신발이 쓕 날아가버렸다. 하필이면 선생님 얼굴에 짝. 아, 어쩌지. 신발이 벗겨진 한쪽 발과 다 떨어진 신발이 있는 발. 어느쪽 발이 더 슬픈거야. 아, 왜 이리 눈물이 흐를까. 난 울기 싫은데. 

#3 세번째 눈물, 운동화가 떠내려 가요

오늘도 오빠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다 온다. 오후반에 가려고 기다리는 오빠가 늦지 않도록 열심히 뛰어야 한다. 핫둘핫둘. 앗! 신발 한짝이 벗겨졌네. 하필이면 개울로 떨어졌다. 졸졸졸졸 개울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운동화 한 짝. 빨리 건져야지. 저 큰 물에 휩쓸리기 전에 건져야지. 큰 하수구 턱에 딱 걸려있는 운동화, 빨리 건지자. 그런데 저 위에서 큰 나뭇가지가 하나 떠내려오네. 아, 운동화를 칠 것 같아. 큰물에 빠질 것 같아. 마침내 툭, 신발과 나뭇가지가 함께 큰 물에 빠졌어. 어쩌지, 이제 오빠의 운동화마저 한쪽을 잃어버렸네. 아, 착한 우리 오빠, 어떡하지. 왜 이렇게 자꾸만 꼬이기만 하지. 왜 이렇게 자꾸 눈물이 흐르지. 

오빠와 동생은 운동화 때문에 달리고 또 달린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 운동화를 얻기 위해.

#4 네번째 눈물,  정말 착한 우리 오빠

오빠, 고마워. 오빠는 늘 내 운동화를 다시 구해주려고 노심초사. 잘 되지는 않지만... 친구들 숙제도 해주고, 축구를 하며 놀아주기도 하고... 그런데 그 돈많은 오빠 친구들 만만찮은가 봐. 점점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오빠는 너무 힘들어 하네. 숙제 세번에 신발 한켤레, 숙제 여섯번엔 신발 3켤레, 열두번번에 6켤레... 결국 우리 오빠가 나섰다. "내가 숙제를 많이 할테니까, 그렇게 해. 대신 여자 아이 신발도 한 켤레 포함." 아, 내 운동화가 드디어 해결되나봐. 오빠, 고마워. 집으로 가는 길, 오빠의 손을 잡았다. 조그만 손이 왜 이리 듬직하게 느껴지지. 기분 좋은데, 왜 또 눈물이 흐르는 거지?

 

#5 다섯번째 눈물, 가장 아픈 달리기, 가장 슬픈 우승자

초등학교 달리기대회가 열렸다. 3등상이 운동화 한 켤레. 목표가 생겼다. 나는 꼭 3등을 할거야. 그런데, 저 많은 아이들을 제치고 3등을 할 수 있을까. 뛰어야지.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뛰어야지. 선생님이 말씀하셨지. "전국의 가장 빠른 아이들과 겨룰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겁먹지 마라. 이기고 지는 것은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길고 험한 코스를 뛰는 크로스컨트리 대회니까, 완주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 그렇지만 난 3등을 해야해. 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아. 그래도 달릴거야. 달리고 또 달린다. 진짜 내 모든 것을 바쳐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우승. 앗, 우승이야, 3등이 아니고. 어쩌지. 아, 왜 이리 서러운 거야. 난 3등을 해야했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아. 동생아, 미안해. 그저 눈물만 흐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전인데, 가장 슬픈 달리기이기도 한 대회.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3등 상인 새 운동화를 받아 동생에게 주기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달린다.

#6 에필로그, 묘하게 슬픈 희망이야기, 달리기는 인생이야

선수 번호 164번. 쿤은 낡고 닳은 운동화를 신고, 덩치 크고 좋은 신 신은 아이들과 함께 달리고 또 달렸다. 진흙탕에 빠져서는 아예 신발이 벗겨져 맨발로 달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절실했으니까, 누구보다 확실한 목표가 있었으니까. 마침내 다 뛰었을 때, 3등이 아닌 1등을 했다. 우승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운동화 한 켤레 뿐이었다. 가장 치열한 달리기지만, 정말 슬픈 달리기다. 

착한 여동생 서오팡은 그 시간 만삭인 엄마를 위해 조산원 아줌마를 찾아 달렸다. 슬리퍼를 신고 뛰다, 끈이 끊어져 맨발로 뛰었다. 좁은 길이 나타났는데, 그 길에는 깨진 병들로 가득했다. 맨발로 그 위를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엄마가 혹시 잘못될지도 몰라. 뛰어가야해. 아이는 유리를 피하며 조심조심 달린다. 그게 쉽겠나. 피 투성이가 된 발. 그래도 마침내 조산원을 찾아갔고, 조산원과 함께 엄마에게로 갔다. 다행이다. 정말, 슬픈 달리기이지만, 생명을 살린 달리기다. 

운동화 상을 못탄 오누이는 어찌할까, 막막하게 앉아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훔치거나 남탓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 봤다. 그래도 안되는 것, 어쩌겠나. 아,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까. 그 순간, 옆에 쓱 운동화 두 켤레가 나타났다. 오빠 것, 동생 것. 하얀 운동화들. 오빠를 괴롭히던 친구가 오빠의 열정에 공감하며 유학 떠나는 선물로 운동화를 남겨줬다. 다행이다. 

이제 아이들은 새 운동화를 신었다.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앗, 진창길이 나타났다. 전에는 아무 문제 없던 길이었는데, 새 운동화를 신었으니, 어찌해야 할까 고민이다. 벗고 건너면 되지만, 새 신 신은 기분에 벗기가 싫다. 어쩌지 늘 있던 진창길이 갑자기, 너무 심각한 장애물로 인식된다. 아, 이게 인생이구나. 아, 장거리달리기는 인생이라는데, 인생엔 너무나 미묘한(delicate) 대목들이 많구나.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