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인문학 31] 마라톤을 892회 완주, 그 초인적 의지

면역력 해결사 달리기 (61) 100회 이상 완주자 연구를 통해본 '완주'

2021-07-01     최윤호 기자

달리기는 인간의 본성과 몸체를 살리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이다. 그래서 마라톤이라는 극단적 운동도 가능하다. 가능할 뿐 아니라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재미로 도전한다. 42.195km는 옛날 단위로 치면 105리에 해당한다. 100리길. 멀고먼 거리를 뜻하는 말이다. 그 거리를 달린다. 

힘도 들고 다양한 변수도 개입한다. 그래서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인생처럼 길고 긴, 험난한 마라톤을 100회 이상 완주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금도 그 기록을 스스로 깨뜨리며 완주 숫자를 쌓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몇해전 대회를 뛸 때, 옆에서 함께 뛰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 주 뛰었는데, 그 전 주보다 1초 빨라졌더라." 아니, 이 사람은 지금 3주 연속 마라톤을 뛰고 있단 말인가. 42.195km를 뛰는 동안 1초 차이, 2초 차이를 보일만큼 균등한 달리기가 가능하다는 것도 놀라웠고, 매주 달리면서도 이렇게 쌩쌩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만큼 달리기의 영역에는 놀라운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마라톤 완주 100회 이상, 심지어 1000회 가까이 뛴 사람들이 있다. 달리기가 인간 본연의 운동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기록이다. 달리기를 즐겨야만 가능한 일이다. / 캔서앤서DB

100회 이상 105명, 최대 완주 892회

여기 아주 놀라운 기록을 담아낸 연구가 있다. 운동영양학자이며 본인이 100회 이상 마라톤 완주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울트라 마라톤을 뛰어낸 놀라운 주자이고, 마라톤대회를 직접 구성하고 대회를 운영한 경험도 있는 이윤희 박사와 스포츠 전문가 몇명이 함께 쓴 연구논문 <마라톤 풀코스 100회 이상 완주자 기록 분석>이다. 최근 발표된 이 논문은 오래달리기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마라톤 풀코스를 100회 이상 완주한 사람은 공식 기록을 기준으로 105명이다. 남성 98명, 여성 7명. 1995년 10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이들의 운동기간, 완주기록, 완주횟수, 최고기록, 최고기록까지의 완주횟수 등등 산술적 통계들을 바탕으로 한 이 연구는 몇 가지 숫자만으로도 놀라움을 준다. 인생의 신비를 느낀다고 해도 될 정도다. 

연구는 완주자들의 연령을 5년 단위로 구분하는데, 출생연도로 봐서, 1935~39년생이 최고령 그룹이고, 1980~1984년생이 최연소 그룹이다. 이들의 최대 운동기간은 남자 25년, 여자 21년이며, 최고령자는 남자 83세(1939년생), 여자 73세(1949년생)이다. 

더 놀라운 숫자는, 최다 완주 횟수다. 남성은 892회, 여성은 365회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수십년에 걸쳐 1000회에 육박하는 마라톤 완주를 해내고 있다는 뜻이다. 여성의 경우 7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통계적 수치로 잡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남성들을 중심으로 기술해 본다. 

자신의 최기기록까지 소요된 운동기간인 최고운동기간은 50~54년생이 가장 짧아 운동 시작 1년 이내에 최고기록에 도달했고, 젊은층인 80~84년생은 7년 걸렸다. 이 말은 60대에 집중적으로 운동한다는 의미도 되고, 30대의 실력은 계속 상승한다는 뜻도 된다.  35~39년생은 4년이 걸렸다. 

100회 이상 완주자들 가운데 다수가 50대 이상이고, 80세가 넘은 사람들도 있다. 우리 몸이 달리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캔서앤서DB

연구의 결론이 주는 인생과 달리기의 교훈

연구는 연령과 기록에 관한 몇가지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그중 인상적인 두가지를 소개한다. 

"평균기록은 남녀 각각의 연령 차이없이 유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가장 좋은 평균기록을 가진 연령층이 젊다고 할 수 있으나, 오랜 기간 운동한 완주자가 평균기록이 좋으며, 완주횟수가 증가해도 평균기록이 큰 폭으로 하락하지 않고 꾸준히 기록을 유지한다."

마라톤 하면, 흔히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나이 문제다.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그만 뛰어라." "그 나이에 무리하면 무릎 나간다더라." 등등. 그러나 나이는 달리기에 거의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런 통계까지 더해지니, 그 믿음은 그냥 믿음이 아니라 과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릎의 적은 달리기가 아니라, 가만히 있는 것이다. 안 뛰면 관절이 상한다고나 할까.

"개인기록 변동 분석을 통하여 출생연도가 69년생 이전인 50대 이상의 고령자 중에서는 50대의 기록 향상이 가장 많이 되었지만 그 이상의 고령자들도 향상되는 기록을 유지한다. 특히 완주횟수가 많을수록, 그리고 운동기간이 오래될수록 개인기록이 나빠지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향상되는 매우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였다."

마라톤 완주를 100회 이상, 수백 회 하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매주 뛴다면 2년이면 100회를 채울 수 있지만, 여러 조건상 사실상 불가능하다. 1년에 10회씩 완주한다면 10년, 두어번씩 완주한다면 30~50년이 걸리는 대기록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비슷한 기록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좋아지면서 노년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 운동가가 아니다. 전문선수들은 평생 몇번번 뛰지 않는다. 그냥 좋아서 뛰니 이렇게 뛸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점점 더 잘 뛰게 된다는 것을 이 연구가 말해주고 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달린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영화다. 일상 속에서 달리려면 '일상적 일상'을 포기해야 가능하다. 의지가 여건을 이겨야 가능하다. / 캔서앤서DB

잘 뛴다는 것, 많이 뛴다는 것, 오래 뛴다는 것

위의 연구 논문은 '완주'의 의미와 '100회 이상'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잘 뛰는 사람은 달리기가 즐겁다. 꼭 러너스 하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뛰면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가 풀리고, 체한 것 같던 속이 뻥 뚫린다. 온몸의 근육통 같은 실체적 물리적 증상도 달리고 나면 사라진다. 그러니 자주 뛰고 많이 뛴다. 

아주 빠른 속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는 속도가 아니어 오래 뛸 수 있다. 100리가 넘는 먼 거리를 달리는 대회도 겁나지 않는다. "뭐 기록만 신경 안쓰면 언제든 마라톤 풀코스 뛸 수 있지." 이런 상태가 일상이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선수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페이스 메이커로 출전한다. 그냥 친구의 완주를 돕기 위해 뛰기도 한다. 자신의 기록보다 10분만 늦춰 목표로 잡아도 마라톤이 그리 힘들지 않은 운동이다. 

이런 사람, 이런 상태에 있으면 잘 뛰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대회에서 1등을 하지는 못하지만, 상위 10% 정도에는 언제든 들 수 있다. 이것은 열정과 노력, 무엇보다도 망설이지 않는 실천력에 의해 완성된다. 매주 달리기 대회에 나가고, 수시로 뛰는 사람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주변에서 허락해 줘야 하고, 편견의 벽을 무너뜨려야 가능하다. '완주'의 물리적 실력과 '100회 이상'의 정신적 의지, 사회적 여건이 맞물려야 가능하다. 

자, 그렇다면 인생은 어떠한가. 나는 어느 영역에서 잘하고 있는가? 아주 중요한 어떤 일에 어느 정도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고, 그것을 위해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자신을 만들어 왔는가? 그 분야에서의 일이라면 언제든 해낼 수 있고, 적어도 상위 10% 수준의 성과는 낼 수 있는가? 마라톤 100회 이상 완주자들의 치열한 삶이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