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똑같은 심장병, 17년 차로 똑같은 치료 받아

세브란스병원, '비후성 심근병증' 김모씨에게 좌심실 보조장치 삽입 성공

2021-06-10     홍헌표 기자
'비후성 심근병증'으로 엘바드(LVAD, 좌심실 보조장치) 삽입 수술을 한 김모씨와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이 퇴원을 앞두고 기념 촬영을 했다../세브란스병원 제공

부자가 똑 같은 질병을 앓고 치료도 똑 같은 방법으로 받는 희귀한 사례가 있다. 10일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비후성(肥厚性) 심근병증' 말기 환자인 김모(58) 씨는 지난 2일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에서 인공심장의 일종인 좌심실 보조장치(엘바드, Left Ventricular Assist Device, LVAD) 삽입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김씨는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대기자로 등록해 심장이식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비후성(肥厚性) 심근병증'은 대동맥판막협착증이나 고혈압을 앓고 있지도 않은데도 좌심실 벽이 두꺼워지는 질환으로, 인구 500명당 1명꼴로 발견되며 부정맥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엘바드(LAVD)는 혈액을 온몸에 순환시키는 심장 좌심실 기능을 대신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준다. 좌심실의 피를 기계로 뽑아낸 뒤 모터로 돌려 대동맥으로 다시 보낸다. 심부전으로 인해 저하된 심장의 기능을 보조하는 펌프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8년 9월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돼 환자는 750만 원 정도 부담한다.

김씨는 엘바드(LVAD) 삽입 수술 후 “편하게 숨 쉬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다. 이전에는 헉헉거리며 살았는데 편히 숨 쉴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친께서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이식을 받으신 후 17년을 행복하게 사셨다. 나도 20년 이상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04년 선친이 앓았던 ‘비후성 심근병증‘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이후 김씨는 실신하는 등 부정맥 증상이 악화하자 2014년 7월 몸 속에 제세동기를 넣는 삽입형 제세동기 시술을 받았다. 김씨는 이번에 LVAD 삽입수술을 받았지만 최종적으로는 심장이식을 받아야 한다.

똑같이 '비후성 심근병증'을 앓았던 김씨의 선친이 삽입한 1세대 심장보조 장치(LVAD)와 김씨가 삽입한 3세대 심장보조 장치.

김씨의 선친도 1995년 비후성 심근병증을 진단받았고, 2000년 제1세대 엘바드(LVAD)를 삽입한 뒤 다음 해 11월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김씨의 선친은 이후 17년간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건강하게 지내다가 2018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엘바드(LVAD)는 이처럼 심장이식을 대기하고 있는 심장병 환자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심부전 환자는 심장이식을 받아야 정상 생활이 가능한데 이식을 받으려면 6~18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심장이식 대기 중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장 기능이 떨어져 콩팥ㆍ간ㆍ폐 등 다른 장기까지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씨의 주치의인 오재원 심장내과 교수는 “아버지와 아들 모두 유전성, 가족성 질환을 앓았는데, LVAD가 심장이식을 받기 전까지 생명줄 역할을 잘 할 것”이라며 “심근병증 환자가 가족 중에 있다면 다른 가족들은 증상이 없더라도 미리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